네덜란드어를 거울 삼아 나와 우리를 발견하다 -
네덜란드에 산다.
네덜란드어를 읽고, 듣고, 말하고, 쓴다.
하루도 빠짐없이.
혼자 알고 있기 아까운 표현이 눈에 들어오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원과 어근, 상용 구문 등 언어를 해설하며
때로는 조심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때로는 네덜란드 사회에 대한 통계와 연구 결과, 단상을 펼쳐 놓는다.
성급한 일반화와 과장을 경계한다.
딱 내가 생각하고, 찾고, 경험하고, 해석한 만큼.
이 곳 단어와 표현에 드러나는 만큼.
오늘의 주제는 '신뢰'이다.
한자로 신뢰는 믿을 신, 의지할 뢰이다. 상대방의 선의를 믿는 일말의 믿음, 또는 상대방에게 내 부탁을 거절할 권리가 있지만 혹시 그래도 내게 호의를 베풀 여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가 없이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내 요청 없이 그가 건네는 도움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굳게 믿고 의지한다' 뜻의 '신뢰'는 마땅히 모든 '주고받는 관계', '협동의 기초'이다. 보통 신뢰가 무너진다는 것은 관계가 깨진다는 것과 거의 동의어이다. 불신이 팽배하면 거래비용이 높아져 한 사회 내에서의 협동은 물론 분업과 생산에 장애가 많아진다. 그래서 보통 신뢰를 지키는 것이 좋은 사회생활의 기본이라 이야기한다.
'신뢰'에 관해서 경제학자 정태인은 한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신뢰는 양의 상호성(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을 촉발시킨다. 일반 신뢰(generalized trust)란 잘 아는 사람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도 믿는 것을 말한다. 일반 신뢰의 사회는 협동이 사회규범으로 뿌리내린 사회다." (2012년 12월 18일. [착한 경제학] 신뢰의 정치인. 주간경향 1005호.)
또 "협동의 경제학"이란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일반적 신뢰가 높을수록 사회 구성원들은 협동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일반적 신뢰는 인간의 본성인 상호성을 협동으로 유도한다." (정태인 & 이수연, 2013: 143)
2011년 OECD 31개국 '다른 이들에 대한 대한 높은 신뢰도를 표현하는 인구 비율(percentage of peopel expressing high level of trust in others)'을 측정해 비교한 OECD 통계에 의하면 네덜란드는 80%로, 북유럽 4개국에 이어 상위 5위를 기록한다. 한국은 그에 반해 46%로 15위이고, 끝에서 6번째이다. 통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네덜란드인 10명 중 8명이 타인에 대한 높은 신뢰도를 표현한다. (여기에서 '신뢰'에 대한 정의와 조사 방법, 신뢰 척도 최저 1에서 최고 10까지의 문항, 분석, 해석 방법 등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높은 수준의 신뢰'가 '낮은 수준의 소득 불평등'과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발견이다. 가구소득이 대체로 높으면서 소득 불평등도도 낮은 나라에서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는 답변 비율이 높았다.
내 해석은 이렇다. 개개인의 차원에서 소득이 높으면 미래에 대한 통제효능감과 예측가능성이 높아져 인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타인에게 예고된 언행을 하기 쉬운 것 같다. 이것이 확대되면 타인에게 신뢰를 줄만한 언행을 지속하게 되어서, 그 집단군 내의 상호신뢰도가 높아진다고 볼 수 있겠다. 한편, 소득불평등도가 높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원초적으로 '저 사람이 내 것을 빼앗아 가지 않을까?', '내게 불리한 것을 숨기고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취해가지 않을까?'란 의심이 커질 것 같다.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남의 밥그릇 쳐다보지 않아도, 또는 내 밥그릇 지키려고 방어적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 기본소득운동가인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은 '가난은 성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현금이 부족해서다(Armoede is geen gebrek aan karakter; het is een gebrek aan geld)'라고 주장했다. 언뜻 보면 동어반복 같다. 현금이 부족한 상태가 바로 가난이니 말이다. 풀어 말하면 가난한 사람이 게으르고, 소비에 무절제하고, 막 살아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자원을 선용해 열심히 살면(노력), 형편이 나아질 거란 전망(노력에 대한 보상의 확실성)'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안목에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의 반복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불확실성과 희소한 자원에 대한 갈등이 큰 상태에서 내리는 결정은 기타 사정에 대한 주의분산과 유혹 때문에 최적의 결정이 될 가능성이 낮다고 한다 (Mani et al, 2013).
어쩌면 내가 타인에게 예측 가능하고 믿을만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작은 호의를 나눌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내가 일상 생활에서 실감하는 그 이상으로 제도의 영향을 받은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맥락에서 다른 사람을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해도 믿을 만하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은, 선의를 입은 경험이 축적되어서이고, 그런 선의를 나눌 여유를 가능하게 한 환경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사람들은 공적인 영역, 사회생활에서의 '신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정부 정책을 위한 학술연구위원회(Wetenschappelijke Raad voor het Regeringsbeleid)'에서 진행한 연구보고서 중'서로에 대한, 그리고 사회에 대한 신뢰(Vertrouwen in elkaar en in de samenleiving)'가 있었다. 연구 결론 중 하나는, 저학력자에 비해 고학력자에게서 사회와 정치에 대한 신뢰도가 더 높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치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투표 행위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사회와 정치에 대한 신뢰도가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는 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다 답할 수 없는 질문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일단, 불특정 타인에 대한 신뢰지수에서 OECD국가 중 상위 5위, 전반적으로 높은 일반 신뢰를 보이는 네덜란드에서 '신뢰'란 과연 무슨 의미인지 알아본다. '신뢰'에 대한 생각, '신뢰하는 문화'가 어떻게 그 단어 속에 녹아 있을까?
'신뢰'에 해당하는 네덜란드어 명사는 가장 기본적으로 vertrouwen(het)이다. 이는 trouw에서 파생되었다. trouw는 (de)명사로는 진실(troth), 충성(loyalty), 믿음직스러움/충실(faithfulness), 믿음(faith), 정절(fidelity)을 뜻한다. 형용사로도 쓰인다. De Trouw는 1943년 창간된, 네덜란드 최대 일간지 중 하나의 이름이기도 하다.
TROUW를 네덜란드어 대표 사전 Van Dale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trouw (bijvoeglijk naamwoord, bijwoord) / 형용사*부사
1 iem. niet verlatend, ook niet in moeilijke omstandigheden / 누군가를 떠나지 않는 혹은 내버려두지 않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2 zijn plichten nauwgezet vervullend / 그 의무를 정확히 제때에 지키는
nauwgezet은 nauwkeurig와 동의어이다. 정확한(juist; stipt), 주의를 세심히 기울인(zorgvuldig)이란 뜻이다. nauw는 좁은, 가까운, 엄격한의 뜻이다. keurig는 깔끔하고, 주의를 많이 기울였고, 뭔가 굉장히 잘 정돈되고, 제대로된 것을 뜻한다. keuren에 질이나 적합성을 평가하다, goedkeuren에 허가하다, 좋게 평가하다, 적합 판정을 내리다란 뜻이 있기 때문이다. keurig는 netjes와도 바꿔 쓸 수 있다. Hij ziet er altijd keurig gekleed uit. - 그는 항상 옷을 깔끔하게 입어. Je ziet er keurig uit in je pak. - 너 양복 입으니 인상이 깔끔해 보이는 걸!
trouw (de; v(m)) / 명사
1 het trouw-zijn: te goeder trouw zonder kwade bedoelingen / trouw 한 상태, 즉 신의를 지키고, 믿음직스럽고, 헌신적이고, 충성스러운 상태 : 악한 의도가 없는 선의의 상태.
2 gehechtheid / 애착, 믿음, 지지 (무언가에 연결되어, 붙어있는 상태)
hechten에는 애착하다, 붙이다(attach)의 의미가 있다. gehecht는 그 동사의 피동형인데, gehechtheid는 애착(attachtment), 헌신(devotion; toewijding), 믿음을 행하는 데 부지런하고 열성적임(vroomheid)이란 뜻이 있다.
trouw 자체는 그 의미가 본질적으로 관계에 관한 것이어서인지, 문어체를 제외하고는 일상 대화에서 마주치기 쉽지 않다. 성서에서 '하나님은 신의를 지키신다/ 약속을 지키신다/ 믿을만하다'란 뜻으로 'God is trouw'라 한다. 교회에서는 'Gods liefde en trouw ervaren',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직함을 경험하기'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또는 공문서에서 이런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Tevens misbruikte u een ambtshalve en te goeder trouw toegewezen macht.' '또한 당신은 공무를 위해, 선한 의도로 맡겨진 권력을 악용했습니다.' Te goeder trouw = in good faith이다.
그렇지만!
이 'trouw'(충실, 신의, 충성)에서 수많은 일상 단어가 파생한다.
trouwen으로, trouw에 동사화 접미어 -en을 붙이면, '결혼하다', '결혼 계약을 하다'란 뜻의 동사 원형이 된다. 시제 변형은 trouwen (trouw; trouwt) - trouwde - getrouwd이다.
'Ik ben al vijftig jaar getrouwd.' 나는 결혼한 지 이미 50년이야.'
- 즉, 결혼의 본질이 서로에게 진실되고 믿음직스러우며 신의를 지키는 것이란 가치관을 드러낸다. 한자 결혼(結婚)에는 '인연을 맺음', '(부부) 관계를 맺음'이란 묶임, 결속의 의미가 더 강조되지만 말이다. trouwen에는 상대를 떠나지 않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고, 선의를 다하는 것이 '결혼'이란 의미가 들어있다.
- 한편, 이혼은 네덜란드에서 'scheiding van tafel en bed', 식탁과 침대를 더 이상 같이 쓰지 않고 따로 쓰는 것, 즉 식탁과 침대를 나누는 것으로 정의한다.
Ik blijf je trouw는 'I'll stay loyal to you - 내가 너한테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될게'란 의미이다.
결혼하다란 동사로 huwen - gehuwd(married)도 있다.
결혼식이나 혼인잔치는 (de) trouwerij, (het) huwelijksfeest이다.
trouw에 행위의 본 의미를 강조하거나 추상화하는 be란 접두어와 -able 할 수 있음을 뜻하는 baar란 접미어를 붙이면, 'betrouwbaar'란 '믿음직스러운, 신뢰할 만한'이란 형용사가 된다.
Wat vind je van hem? Hij is wel betrouwbaar! 그 남자 어떻게 생각해? 응, 신뢰할 만해.
ver-라고 하는 형용사를 동사화하는 접두사를 붙여 trouw를 vertrouwen으로 동사화하면, '신뢰', 또는 '신뢰를 하다'란 뜻이 된다.
여기서 vertrouwen(het)란, '다른 이가 선의를 가진 것과 약속을 지킬 것이란 것에 대한 믿음, 다른 이의 정직함에 대한 믿음(geloof)'이라고 길게 풀이할 수 있다. 즉, '신뢰함'이라는 보다 더 적극적인 의미이다.
이를 hebben(갖다; have) 동사와 결합하면, '확신을 갖고 기대하다', '(누군가에게) 믿음을 갖다'란 뜻이 된다. 믿음의 대상 앞에 꼭 in을 붙인다.
Ik heb geen vertrouwen in andere mensen.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어.
Ik heb geen vertrouwen in de commissie. 난 그 위원회에 대한 신뢰가 없어/ 그 위원회 못 믿겠어.
Ik heb vertrouwen in het nieuwe kabinet. 난 새 내각을 믿어/ 난 새 내각을 신뢰해.
그래서 '난 자신이 있어/ 난 자신감이 있어/ 난 나를 믿어'는 Ik heb vertrouwen in mezelf이다.
이 vertrouwen에서 파생된 형용사도 일상생활에 매우 유용하다!
vertrouwd는 vertrouwen의 피동형 형용사로, '신뢰받는'이란 뜻이 된다.
Hij is een vertrouwde persoon. 그는 신뢰받는 사람이야!
한편, 신뢰받고, 기댐 받을 만하니 익숙하다(familiar), 잘 알려지다(well-known)라는 뜻도 된다. 그래서 zich vertrouwd maken met은 숙지하다, 익숙해지다, 알게 되다란 뜻이다.
Ik heb niet eerder de tijd genomen om mezelf vertrouwd te maken met het gebied. 나는 그 지역에 익숙해질(적응할) 시간을 진작에 내지 못했다.
vertrouwelijk = confidential, 비밀의, 비밀스러운, 신뢰(vertrouwen)를 줄 수 있어야 하니 즉 '공개되지 말아야 할, 기밀의(niet voor openbaarheid bestemd; confidential)'란 뜻이 있다
Zou je met dit document vertrouwelijk omgaan? 이 문서/서류/증서를 기밀로 취급해줄래? (omgaan met~은 ~을 다루다, ~와 어울리다, ~와 관계하다란 뜻이다.)
물론 vertrouwen은 동사로도 쓰인다-! vertrouwen - vertrouwde - vertrouwd.
We vertrouwen erop dat ~을 확신을 갖고 기대하다. Wij vertrouwen erop dat de internationale hulporganisaties zullen doen wat ter plekke nodig is. 우리는 (그) 국제원조단체들이 현장에 필요한 일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Hij is niet te vertrouwen = hij is niet betrouwbaar. 그는 신뢰할 만한 이가 못 된다.
반대로 불신은 wan-이란 '반대' 또는 '나쁨'을 나타내는 접두사를 붙여 wantrouwen(het)라고 한다.
역시 동사, 명사로 다 쓸 수 있다. 정확히는 신뢰가 부족한 상태, 전적으로는 신뢰할 수 없거나 신뢰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의심, 회의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1 wan·trou·wen (het; o) / 명사
1 gebrek aan vertrouwen; achterdocht, argwaan / 신뢰가 부족함; 의심함, 악의를 추측함
wan·trou·wen (wantrouwde, heeft gewantrouwd) / 동사
1 geen vertrouwen hebben in / (어느 대상에) 신뢰를 갖지 않다
on- 어떤 것을 취소하거나 반대로 하는 것을 뜻하는 접두사를 붙이면 ontrouw(de) '배신'이란 명사, 또는 신의를 저버리는 상태를 뜻하는 형용사, 부사가 된다.
자, 불신은 wantrouw이다. 배신은 ontrouw이다.
얼마 전 이사 갈 집주인과 이야기할 일이 있었다. 그 집에 입주하기 전 필요한 개보수 공사를 위해 필요한 수치와 정보를 확인하고자 주택품질인증 기술자와 집주인과 셋이서 집구석 구석을 둘러보았다. 난 집주인에게 공사를 맡아줄 좋은 기술자를 소개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말하길, 이사올 때 남편이 직접 다 공사했어서 모르겠다며 마땅한 지역 기술자를 모른다고 했다. 내가 여러 군데 견적을 받아서 비교해보고 싶어서 묻는다고, 바가지 쓸까 봐 겁난다고 하니, 집주인이 이야기했다.
"Naja, je moet gewoon vertrouwen hebben."
의역하면, "어쩌겠니, (일일이 확인이 불가하니) 믿고 맡기는 수밖에...".
직역하면, "그 사람들을 믿어야지...".
바가지 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길이 없으니, 그 도급업자의 정직성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 집주인도 생짜 모르는 우리한테 집을 내줄까 싶기도 했다. 처음에 집주인이 내놓은 가격이 너무 높지 않은지 의심하기도 했지만, 지금껏 집을 유지 보수하는 데 집주인이 들인 비용과 주택 사양과 입지를 다른 여러 주택들과 비교해보니 그 가격일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26년 전 본인들이 처음 입주할 때 남겨둔 공사 과정 일지와 전기, 수도 배선 등을 모두 사진으로 남긴 노트를 통째로 전해주겠다는 집주인.
그래. 따질 건 따지고, 비교도 해봐야 하지만,
일을 맡길 때 기본적으로 신뢰의 자세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 중의 기본. 상대방의 선의를 믿는 것.
그렇다고 계약서를 대충 쓰자는 말은 아니다. 실제 그 후에 목수를 찾아 필요한 공사를 맡겼을 때, 목수와 피곤할 정도로 세세히 협상하고, 작은 것까지 묻고, 중간에 수시로 확인하고, 사후 검사해야 했다. 공사 발주일만 계약서에 써놓고 완료일을 빼먹었더니 일을 제 때 안 하고 미루면서 비용을 추가 청구하기만 하여, 선계약금을 날리면서까지 계약을 해지했어야 했다는 사례를 지나가다 읽기도 했다.
일을 맡길 때는 믿고 맡기더라도, 그 일의 내용이 무엇인지, 어떻게, 얼마나 하기 바라는지는 명문화하자! 일에 있어서는 서로의 기대를 명시화하고 지키는 것이 신뢰를 키우는 길인 것 같다. 상대방이 기대에 대해 명시화하기를 꺼리고 모호하게 흐리려는 태도로 나오면, 오히려 '의사소통이 투명하지 않구나. 왜 일까?', 의심이 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섣불리 추측해서도 안 되지만. 그럴 때는 질문하면 된다. 질문하고 나서 그 대응을 보면 된다. 말은 말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계약서는 중요하고, 일의 '완결'이 아니라, 바른 일을 위한 '시작'이다.
'때때로 상대방의 선의를 너무 쉽게, 빨리 믿어 손해보고 산 것은 아닐까?'
'또 상대가 나의 선의와 믿음을 이용하지 않으리란 것을 어떻게 확신할까?'
뒤통수도 맞아보고, 이런저런 일 겪으면서 위와 같은 생각이 머리 속에 찾아오곤 했다.
불완전한 내가, 남에게 받은 호의는 쉽사리 잊고 내 선의는 앞세우다 보니
때때로 과하게 날을 세우기도 했을 것이다. 인정한다.
선의에 대한 불신, 이용당함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기억하는 말이 있다.
관계에서 재고 따지던 내게 어느 분이 그러셨다.
'신뢰할 만해서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신뢰하기로, 믿어보기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다칠 수 있다.
신뢰는 실은 상대방에 의해 내가 행여 해를 입을 상황까지도 감수하는, 의탁이다.
물론 이 의탁의 대상이 아무나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사람이 연약하기에 오히려 성숙하지 않은 이에게 쏟은 신뢰와 의탁은
그에게 권력을 남용할 기회를 허락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분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아무도 안 믿고, 마음대로 살래'도 답은 아니다.
내가 먼저 타인이 믿고 의탁할 수 있을 만한 사람으로 서기 위해 노력하고, 또 타인에게 '신뢰받을 기회'를 나 스스로에게 허락해 보고 싶다. 상대방이 나의 신뢰를 저버린 상처, 또는 상대가 나의 선의를 신뢰하지 않아서, 또는 내가 딱 그 수준으로 헌신하지 않아서 받은 상처를 과장하거나 거기에 매몰되어 있지 않고 새로운 관계, 보다 더 성숙한 관계로 나아가고 싶다. 내 주위를 둘러싼 관계에, 내가 맡은 일과 내게 허락된 사랑할 이들에게 기본적인 신뢰로 화답하고, 또 나도 신뢰를 줄 수 있을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도록 내 맘대로 하고픈 성질을 절제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나도 행복하고 상대도 행복할 결과를 지향하고,
타협도 배려임을 잊지 않는다면,
신뢰를 주고받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신뢰를 주고받는 데서 오는 기쁨, 호혜성.
신뢰의 선순환.
신뢰하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
내가 먼저 불신의 고리를 끊는 한 사람,
신뢰를 이자 불리듯 불려 신뢰의 선순환을 이루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신뢰관계 속에 협업하는 것,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각자 역할을 다할 것을 기대하고 서로에 대한 기대를 조율하면서 협업하는 것, 그래서 지킬 약속만 하고 한번 한 약속은 지켜서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역설적으로 내가 다 지키지 못한 약속이 찾아와 나를 괴롭힌다.
신뢰는 기본적으로 긴 안목에서 온다고 믿는다. 결국 돌아 돌아오리라, 사필귀정,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을 믿긴 믿는데, 그 시간 범위가 영원까지 이를 수 있음을 믿으면서까지 지금 여기서 철저하게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선택을 주체로서 내리며 살아가는 것?! 그러나 나 홀로 옳음에 대한 확신 이전에 지극히 약한 '사람이란 존재'에 대한 지극한 연민과 '사람으로서의 동질감'을 갖길.
긴 안목으로, 쉽게 지쳐 나가 떨어지지 않을 긴 호흡으로 사람을 신뢰하는 이들이야말로, 서로가 서로를 좀 더 신뢰하고 협동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쓸 수 있고, 실질적인 제도의 변화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다음 인물들이 떠오른다.
- "개인이 자기 자신을 계발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꿈꾸는 삶을 이뤄 갈 자유를 갖기 위해서는 사회가 기본적인 것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신념을 실천하는 정치 활동을 통해 정치에 대한 신뢰를 높인 스웨덴 총리 올로프 팔메 (하수정, 2012).
-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그 사람이 평가받는 사회, 인종에 상관없이 아메리칸 드림을 믿고 꿈꾸고 실현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꾸며 그 날을 앞당긴 미국의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 쉽지 않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완주하며 1%와 99% 사이의 불평등 완화를 우선순위로 내세우며 꼼꼼하게 준비된 정책 분석과 공약을 내놓았던 버니 샌더스.
- 죽음의 위험 속에서도 독재에 맞서 싸우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확대하려고 애썼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발걸음을 내딛었던 전 김대중 대통령.
- 시장이란 단지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집단의 선택을 통해 인간 발달에 보다 더 건설적이고 공정하게 작용하도록 만들어 가야할 제도라는 점, 시장 환경 속에서 사적 지대 추구를 제어하고, 공교육의 질을 높이며, 기본적인 사회 기반시설을 공급하여 사회적 협업을 고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파해 온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이들이 뿌린 신뢰를 기억하며, 새해에는 좀 더 나아져 보리라! 내 할 일도 열심히 하고, 약속도 잘 지키고,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읽기, 후원, 청원, 글쓰기, 알리기와 같은 작은 실천도 이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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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스티글리츠, 조지프 (2012) <블평등의 대가>. 이순희 역. 열린책들.
정태인 & 이수연 (2013) <협동의 경제학>. 레디앙.
킹, 마틴 루터 (2000)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킹 자서전>. 카슨, 클레이본 편. 이순희 역. 바다출판사.
하수정 (2012) <올로프 팔메.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후마니타스.
Bregman, Rutger. 2013. Waarom we iedereen gratis geld moeten geven. De Correspondent. https://decorrespondent.nl/10/waarom-we-iedereen-gratis-geld-moeten-geven/384450-0b1c02bd
Mani, A., Mullainathan, S., Shafir, E. and Zhao, J. (2013) Poverty impedes cognitive function. science, 341(6149), pp.976-980.
OECD (2011) Society at a Glance 2011: OECD Social Indicators (Korean version). OECD/Korea Policy Centre, Seoul. http://dx.doi.org/10.1787/9789264167070-ko. (English version), http://dx.doi.org/10.1787/soc_glance-2011-en.
Schmeets, H. (2017) Vertrouwen in elkaar en in de samenleving. Working paper 26, Wetenschappelijke Raad voor het Regeringsbeleid, Den Haag. www.wrr.nl/publicaties/working-papers/2017/07/05/vertrouwen-in-elkaar-en-in-de-samenle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