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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준 Apr 11. 2017

펀경영(Fun Mgmt.)이 정말 좋은 것일까?

'펀경영(Fun Management)', 회사원들이라면 여러 번 들어본 표현일 겁니다. 지금도 국내 회사들 중에 일부는 펀경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미디어에 노출시키기도 하지요. 이 글에서는 펀경영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고찰하고자 합니다. 


image source = cmcacorner.com


우리나라에서 펀경영은 2000년 초반부터 집중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로는 크게 2가지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첫째, 98년 IMF를 거치면서 상당수의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단행하였습니다. 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한 후인 2000년 초반부터는 침체된 기업 문화를 다시 회복시키고,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펀경영, 또는 GWP(Great Work Place) 활동입니다. 


미국은 1990년 초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경제가 침체되고 다운사이징이 트렌드가 시작되는 시기였지요(Fleming & Sturdy, 2009;Collinson, 2002)

둘째, 경쟁이 심화되다 보니, 기업들은 차별화를 추구하면서도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에 하나는, 구성원 개개인들의 열정과 헌신이지요. 구성원들의 몰입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펀경영입니다. 


산업조직심리학, 조직행동 연구의 오래된 패러다임은 '만족한 종업원이 성과가 높다'입니다(물론,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만). 종업원이 회사 내에서 만족하고 즐거움을 느낄수록, 회사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가정이지요. 펀경영은 그와 같은 가정 위에 세워진 개념입니다.


성과주의 문화가 급격히 유입되어 발생하게 된 개인주의, 차가운 분위기, 메마른 문화 등을 경감시키고, 웃음을 회사에 퍼뜨려 '신바람 나는 직장' 분위기를 조성해야만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직장 내 활기가 넘쳐 회사의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본 것이지요(이연재, 채명신, 2008). 


image source = hdiresource.com


국내에서는 신바람 일터 만들기, 웃음경영, 유머경영 등 다양한 이름으로 여러 기업들에서 적용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GWP(Great Work Place)'라는 영어 약자로 종종 언급되기도 하지요. 

'펀경영'이라는 타이틀 아래 다양한 이벤트들을 인사 부서에서 기획하고 적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래는 미국 내 572개 기업을 대상으로 2003년에 설문을 실시한 결과로, 펀경영의 일환으로 실시되는 이벤트들의 빈도를 조사한 결과입니다.  

Ford, R. C., McLaughlin, F. S., & Newstrom, J. C. (2003). Questions and answers about fun at work. 


국내 기업들도 한국 고유의 이벤트들을 만들어서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들도 많고, 그러한 활동들만 별도로 모은 '모음집 자료'까지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그와 같은 이벤트들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언가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펀경영의 긍정적인 면은 크게 4가지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펀' 그 자체가 주는 긍정적 효과입니다. 조직 구성원들이 직장 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횟수와 그 지속 시간이 증가할수록 구성원들의 전반적인 삶의 질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image source = foxnews.com


둘째, 펀경영이 구성원의 몰입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사회적교환이론(Blau, 1964)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조직 내에서 어느 제도가 추진될 때, 조직 구성원들은 그 원인을 분석하려고 합니다. 펀경영을 시행하는 목적이 조직 구성원들의 직장 내 즐거움, 행복감을 증진하는 것이므로, 그것이 올바르게 그리고 적당한 수준에서 시행된다면, 구성원들은 '회사가 우리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구나'하는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회사가 나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하는 만큼, 나도 우리 회사에게 더 기여해야겠다는 태도를 유발하여 몰입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셋째, 펀경영이 조직 정체성을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즐겁고 행복한 직장이 될수록, 가족, 동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라 할 것이며, 그로 인해서 회사에 대한 정체성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회사에 긍정적인 측면이 많을수록 그 조직과 동일시하려는 성향이 강해집니다(Social Identity Theory, Tajfel, 1978). 자기 자신을 조직과 동일시할수록, 소위 말하는 '조직에 대한 로열티'가 형성됩니다. 유머와 위트를 장려했던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image source = wikispaces.psu.edu



넷째, 직장 내에서 즐거움을 자주 느낄수록, 회사와 업무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겠지요. 그로 인해 성과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image source = dapfor.com



그러나, 펀경영이 이토록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걸까요? 부정적인 측면은 없는 것일까요? 


펀경영에 쓰인 '펀(fun)'이라는 단어가 워낙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오랜 통념 중에 하나인 '만족한 종업원이 생산성도 높다'는 가정 아래, 그저 무비판적으로 도입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이를 크게 4가지 측면에서 고려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 '그 제도가 우리 회사의 산업적 특성과 전략 방향에 적합한가?' 입니다(external fit)


펀경영에서 '펀'과 '즐거움'은 직장 내에서 상당한 수준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을 때 생겨 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상황에서 생길 수 있습니다(Fleming, 2005).  


구글이나 IT 기업의 경우에는 종업원의 창의성과 헌신적인 탐험 태도가 산업의 핵심 성공요인이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부여합니다. 그만큼 '펀'이 자연스럽게 작동될 여지가 많습니다. 


그러나, 산업적 특성상 규율, 규칙, 규범이 엄격히 엄수되어야 하는 사업에서는 펀경영이 맞지 않을 수 있을뿐더러, 생산성에 저해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펀(Fun)'은 구성원에게 자유가 부여가 되어야 발현될 수 있는 감정입니다. 


구성원이 직장 내에서 행동할 수 있는 한계에 상당한 자유가 있어야 하며, 회사가 구성원 행동의 변동성(variability)을 상당히 용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성원 태도 및 행동의 변동성은 '다양성'을 증대하여 창의적 생각과 행동을 유발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엄격한 규칙 준수가 요구되는 사업에서 '변동성'은 생산성을 저해하고 불량/에러율을 높이는데 치명적입니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불량률 제로'가 핵심 요인인 산업에서, 의도적인 펀경영은 암적인 요소로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제도든지 그 기업의 산업적 특성과 전략에 맞는지를 먼저 검토해야 합니다. 돈이 별로 들어가지 않는 제도라고 해서, 남들도 다들 하는 제도라고 해서, 또는 단순히 인간적으로 좋아 보이는 제도라고 해서 무비판적으로 도입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둘째, 펀경영이 다른 제도, 또는 조직문화와 적합하냐 하는 것입니다 (internal fit). 

펀경영을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Fun을 '자발적으로 형성된 즐거움'과 '의도적으로 관리된 즐거움'으로 구분합니다(Lamm & Meeks, 2009; Bolton & Houlihan, 2009). 조직문화가 자유스러운 분위기라면 '자발적인 즐거움'이 싹틀 것이나,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이는 '관리된 즐거움'으로 전락될 수 있습니다 (Plester, 2009). 회사에서 펀경영을 실시했을 때, 구성원들은 전혀 즐겁지 않지만 억지로 즐겁다고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지요. 조직문화가 왜곡될 수 있습니다.


셋째, 펀경영이 정말 즐겁기만 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펀경영을 비판하는 학자들은 그 자체가 종업원의 노동강도를 심화하고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요인이라고 주장합니다 (Fleming, 2005; Fleming & Sturdy, 2009; Plester, 2009). 펀경영이 스트레스를 되려 증가시킨다고요? 


펀경영 활동 중에는 업무시간에 가능한 것도 있지만, 정규 업무 이후 시간에 해야 하는 활동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팀원 전체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소위 '무비데이'는 업무시간이 아니라 퇴근 이후 시간에 개인적 시간을 희생하면서 참여해야 하는 단체 활동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아이가 있는 직장인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집단과 동료의 압력이 강한 한국 문화적 특성 상 빠지기도 뭐하고... 참여하자니 집에 있는 아이가 울고... 일과 가정 간의 갈등을 더욱 증가시키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더 받게 되는 상황으로 전락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직장 내에서 즐겁게 만들자고 한 제도가 오히려 조직 구성원을 힘들게 할 수 있지요. 

image source = digitalistmag.com


넷째, 일부 학자들은 펀경영이 가정과 회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제도라고 주장합니다. 주로 영국의 학자들이 펀경영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막시즘에 영향을 받아서 노동자의 권익을 우선시합니다. 이들은 펀경영이 가정 내에서 느껴야 하는 즐거움을 직장 내에서도 조장함으로써, 일과 가정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여, 노동자들이 퇴근 시간이 지나서도 직장에 남아 편안하게 계속 일하도록 만들려는 '책략'이라고 주장합니다. 


지금까지 펀경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고찰해 보았습니다. 

인간에게 '즐거움'과 '재미'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직장 내에서 펀경영을 의도적으로 제도화할 경우에는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펀경영을 무조건 배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겠지만, 그 반대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도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 펀경영이 우리 회사의 산업적 특성과 전략에 맞는지, 그리고 다른 제도들 및 문화에 적합할 수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펀경영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많은 활동들을 나열하여 시행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펀경영을 수행하는 부서에서 자기네 성과로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여러 가지 화려하고 현란한 GWP 활동들을 기안하고 시행하는 현상들이 일부 있는 듯합니다. 어느 제도를 최초 시행할 때, 그럴듯해 보여야 먹어주긴(?) 합니다만... 펀경영과 관련된 여러 가지 발표 자료들을 보면, 일부는 활동들의 가짓수가 너무 많거나, 화려한 활동들을 집대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펀경영 관련 컨퍼런스 발표 사례들을 보면 '누가 누가 더 화려한 활동들을 하고 있는가?' 하고 회사들끼리 경쟁하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펀경영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과연 우리 회사에 적합한지를 조심스럽게 따질 필요가 있습니다.  


Fin.


[참고] 본 글은 2011년에 해외 학술지에 투고해서 2년여간의 Peer Review 끝에 Reject 당한 제 논문을 기반으로 보다 쉽게 각색한 내용입니다.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된 논문이 안타까워, 모 카페에 글을 썼다가 다시 각색하여 브런치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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