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견디는 시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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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다른 종류의 태도였다는 걸 알게 된다. 숨구멍 같은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언제든 의심하고 도망칠 준비를 하거나 여지를 남겨놓고 ‘거리’를 둔 채 관계맺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거리를 좁히며 서로에게 스며들어가는 삶이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된다. ‘함께 살아감’이라는 걸 위해 집요하게 서로를 이해하면서, 타협하고, 맞추어나가고, 서로를 고쳐나가면서 더 나은 삶으로 ‘같이’ 가야 하는 삶의 방식이 도래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제 삶은 내 것 또는 네 것 사이의 거리 조절이 아니라, 우리의 것을 함께 만드는 일이라는 걸 말이다.
그러면서 차차 알게 되는 진실은 인생이란 사실 가역적이라 믿었지만 그 본질은 비가역적인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도망치면 돼, 다른 걸 선택하면 돼,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야,라는 태도로 언제까지 살아가기보다는. 오늘의 선택은 번복할 수 없이 몇 년 뒤의 삶이 되고 그렇게 삶이 쌓여간다는 걸 받아들일 때 어쩌면 ‘진짜 삶’이 시작된다는 걸 말이다. 매일의 선택을 책임지면서 감내하고자 할 때 삶의 완전히 다른 측면이 드러나고, 그것이 ‘진짜 삶’으로 가는 여정일지 모른다는 걸 말이다.
- 정지우, <그럼에도 육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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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찬스로 (갑자기) 선물처럼 받게 된 자유시간. 목적없이 그냥 가방만 들고 나와 동네 공원에서 고요히 책을 읽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 나는 ‘산후우울증’으로 명명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올 줄 몰랐다. 언제까지고 갇혀 있어야 할지 막막했는데 요 근래 이전과 다른 결의 행복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느낀다. 그게 무엇일까?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언어로 정의할 수 없어 답답했는데 이 책에서 정확히 대변해주고 있었다.
나는 걱정이나 생각이 많은 사람이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걸 경험해보는 것도 좋아하는 성향이다. 그래서 시도와 선택에 크게 주저함이 없었다. 커리어는 잘못 들어섰다 생각하면 그 경험을 기반으로 이직하며 나아갈 수 있었다. 어느 곳에서든 배움은 있으니까. 취미나 운동도 마찬가지다. 해보고 나랑 안 맞다 싶으면 중단하거나 혹은 힘들면 잠시 쉬었다가 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해온 선택들이 내 삶을 크게 뒤흔들 만큼의 변화를 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육아는 달랐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어떤 존재와 내 선택에 대해 오롯이 책임지며 살아야 하는 일이니까. 도망칠 구석도 물릴 여지도 없었다. 나라는 사람이 살아온 방식과 살아가야 할 방식의 간극에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바라보는 삶의 자세를 다시 고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자연스레 ‘힘든데 꾸역꾸역 굳이 버텨야 하나?’라고 생각했던 나의 가치관도 서서히 무너지는 중이다.
일단 선택 후 여지를 두며 살아가는 자세 말고 버티고 견뎌야 하는 시간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살아오며 가장 기억에 남는, 그러니까 내가 가장 많이 성장한 시간들은 도망칠 수 없던 환경에서 꾸역꾸역 해내려고 할 때였던 것 같다.
대학교 시절 복수전공 수업이 끝나고 매일 복습하러 도서관에 들락거리던 시간, 신입 시절 무식하게 IT용어를 적으며 달달 외웠던 시간, 이직 준비를 하면서 용감하게 이력서를 넣던 시간, 새로운 프로젝트 중 매일같이 야근하던 시간. 그리고 무식하게 100일간 카운팅하며 모유수유를 해낸 지금까지.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더 성장하게 해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당시엔 전투같았지만 돌아보면 엄청난 깨달음과 뿌듯함으로 점철된 시간들.
그러니까 당장은 힘들어 보여도 주어진 인생의 과업을 ‘버티고 견디며’ 하나씩 극복해낼 때 또다른 인간으로서의 성장도 있을 것임을 믿는다. 이런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나를 좀 더 나은 어른으로 만들어 줄 거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