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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파일럿 Dec 15. 2023

승무원 부인과 부기장 남편이 겪은 난기류



결혼한 지 꼬박 1주년 되는 기념일,

객실승무원인 아내는 일본 오사카로 가는 스케줄이었고, 나는 홈스탠바이 스케줄이었다.


홈스탠바이 스케줄은 아직 비행은 없지만, 다양한 이유로 어느 부기장에게 출근을 할 수가 없는, 혹은 근무를 지속할 수 없는 사유가 생겼을 때 자택에서 대기하고 있던 내가 대신 비행에 불려 나가는 스케줄이다.


먼저 출근하는 아내에게, 내가 오늘 스케줄이 불리지 않으면 퇴근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데리러 간다는 말로 배웅하고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아이패드도 충전해 놓고, 유니폼도 다려 놓는 등 기본적인 준비를 하고 있었다.


1년에 몇 번 맞힌 적 없는 나의 감에 의하면, 이상하게 오늘은 스케줄이 들어올 것 같았다. 우선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았고, 이따금씩 다른 비행기들의 스케줄을 찾아보면 기상으로 인해 딜레이도 많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나는 자주 감이 틀려왔기에 어쩌면 오늘도 불리지 않고 평화롭게 집에서 노래나 들으며 집안일하다가, 아내의 퇴근시간에 맞춰 꽃다발 하나 들고 공항으로 데리러 가는 그런 하루를 꿈꾸며, 슬슬 고파지는 배를 진정시키기 위해 짜장면 하나 시키려고 휴대폰을 들어 올리는데,


띠리리리리리링


회사였다.


"여보세요?"

"기장님, 오늘 연결 편이 지연돼서 근무시간문제로 스케줄이 변경되어 후쿠오카 가는 XXX 편으로 출근하셔야 할 것 같아요."

"그럼요, 바로 준비하고 갈게요. XXX 편이면... 출근시간이... 1시간 남았는데요?"

"네 기장님, 택시 지원 가능한 스케줄입니다."

"어우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택시 창문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빗줄기인지 나의 눈물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기분 전환을 할 겸 유튜브에 ‘퇴근길 노래’를 찾아들었다.


이건 꿀팁인데 출근길에 퇴근길 노래를 들으면 왠지 더 마음이 처량해지는 것이, 은근히 진정이 된다.


결혼기념일날 출근이라니,

하필 날씨도 안 좋다니.


그래도 너무 다행이었던 것은, 이런 궂은 날씨에 전우애를 불태우며 같이 비행할 기장님께선, 바로 전전 글의 주인공인 나의 최애 기장님 중 한 분인, 그 온화함의 끝인 기장님이셨다.


기장님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출근 한 시간 전에 불려 나오신 상황이었고, 서로 브리핑실에서 눈을 마주치자마자 설명하지 않아도 의미를 알 것 같은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브리핑을 이어갔다. 기상차트를 보는데 날씨가 좋은 곳이 없다. 승무원과 승객들의 부상 방지 차원에서 그나마 난기류가 조금 적은 고도를 찾아가자고 계획하고 비행기로 갔다.


결혼기념일날 출근


비행 중, 생각보다는 크게 흔들리지 않아다. 조금 안심하며 후쿠오카로 다가오며 강하 중, 항공사 들어와서 내 인생 처음으로 Severe Turbulence를 만났다.


관제사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한 조작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흔들리는 비행기와 그 진동에 맞춰 흔들리는 내 몸은 무선을 잡고 관제사의 지시를 readback 하는데 목소리 마저 같이 위아래로 흔들릴 정도였다. Seat belt를 매고 있지 않았다면 비행기 스위치들을 손이 아닌 머리로 눌렀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난기류 지역을 통과하기 위해 관제사에게 추가 강하를 요청했고, 지속적으로 내려가 어느덧 조금 덜 흔들리는 지역으로 들어와 비행기를 안정시켰다.


비행기가 안정됐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아내였다. 나와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지역을 통과했을 텐데 혹시 일을 하다가 비행기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지는 않았을까. 무방비에서 이 정도 난기류를 만났다면 비행기 천장이 뽀사질 정도로 튀어 올랐을 텐데.


후쿠오카에 도착하자마자 로밍에 연결하여 아내에게 연락을 남겼다


‘여보, 오늘 안 다쳤어?‘


승객 하기가 끝나고 사무장님께 다친 승무원이나 승객은 없는지 여쭤봤고, 다행히 기장님께서 난기류 만나기 전에 seat belt sign을 켜두었기에 다친 사람은 없다고 했다.


안심이 되면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걱정은 아내의 정수리였다.


기상으로 인해 조금 지연이 되어, 인천으로 돌아오는 항공기를 지체할 시간이 없었으므로 아내의 답장을 받지 못한 채 다시 이륙을 했다.


인천 공항의 날씨가 조금 짓궂었지만, 다행히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는 크게 흔들리진 않았다.


착륙하고 휴대폰을 켜니, 나보다 10분 전에 착륙한 아내로부터 연락이 와있었다. 하트 모양의 이모티콘이었다.


다행이다.

아내의 정수리는 무사했다.


둘 다 제대로 기념일을 챙기지도 못했는데 오늘을 그냥 보내기는 아쉬웠다. 케익을 사서 초라도 불자며 집 앞의 카페에서 작은 케익을 하나 샀다.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과 아내가 좋아하는 딸기가 올라가 있었다.



맛도 좋았다



같이 케익을 먹으며, 오늘 하루 서로 고생했다며

소박하게 맞이했던 1주년.


비록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평범하게 잘 끝마쳤고

하늘에서 난기류를 만난 것이

결혼생활에서 난기류를 만나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날인가.


물론 결혼생활에서 난기류를 만나도 괜찮다.

통상, 극심한 난기류는 그 지속시간이 10분에서 15분이다.


결혼생활의 난기류도 비슷하지 아니하겠는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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