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치아 Sep 04. 2021

한국에서의 장남 노릇중 하나. 벌초에 대하여

배경화면 출처 - <다음 웹툰 "퀴퀴한 일기" 중에서>


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
군자탄탕탕 소인장척척

군자의 마음은 평탄하게 넓고, 소인의 마음은 늘 근심에 차 있다.


-논어 술이편 36장 중에서



나의 외가는 말 그대로 콩가루 집안이다.

아들을 잘못 키웠고, 며느리가 잘못 들어왔다.


나의 큰 외삼촌은 원래 병약한 분이었다.


1970년대 중반, 군 복무 기간이 3년에 군대 내 의문사도 많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수많은 청년들이 이게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난 운명이려니 하고 영장이 나오는 대로 군대에 갔건만

외삼촌은 영장이 나오니 방에 처박혀 식음전폐하고 나오시질 않더란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대신

뇌물을 쓰는 방법을 택하셨다.


양계장을 운영하셨던 외할아버지는 동리에서 나름 유지였고

알음알음 소개를 받아 논산훈련소에 근무하는 장교에게까지 선이 닿아 뇌물을 어마어마하게 써서

외삼촌의 신체검사 결과를 현역에서 방위(지금의 공익근무)로,

방위도 못 가겠다는 외삼촌을 설득하지 못해 군대 면제로 신검 결과를 바꾸느라

외할아버지는 몇 년 간 가세가 기울 정도의 뇌물을 썼다.


어둡고 어리석은 세상이었다.


자식을 망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뭔지 아는가?

돈을 마음대로 쓰게 하는 것이다.


외삼촌은 그저 약한 사람이었다가 악한 사람이 되었다.

군대에 가지 않은 행운을 누리며 학습했기 때문이다.

떼를 써서 돈을 얻어내는 방법 말이다.


내가 모든 일의 내막과 흐름을 이해하기엔 어린 나이였지만, 외할아버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외삼촌과 외숙모가 집을 거덜 내가는 과정이 기억난다.


외갓집은 읍내 한가운데 가장 큰 마당을 가진, 거실에 흔들의자가 있던 이층 집이었는데

 

외삼촌이 서울 가서 무역사업을 한다 하며 외할아버지께서 자금을 대면서 방 2칸짜리 단층집으로 바뀌었고


또 외숙모가 처녀 적 했다던 옷장사를 해보겠다 해서 가게를 내주고는

딸들 몫의 전답마저 팔려 엄마와 이모가 외삼촌과 싸우던 기억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외할머니 작은 아파트에서 사시다가 더 이상 혼자 거동이 불편해지셔서 도움의 손이 필요한 순간

외삼촌 또한 전세살이를 하며 집안이 안정되질 못했다며 외할머니를 모시기 힘들다 하시기에

요양원에 가셨는데

요양원 비용은 우리 엄마와 이모 둘이서 돈을 냈다.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서 또 이모와 엄마는 외삼촌과 싸워야 했던 것은


부의금 들어온 것이 우리 아버지 직장과 이모부 직장에서 들어온 것이 거의 전부인데

외삼촌이 장례 끝나기도 전에 부의금을 따로 챙겨서였다.


그놈의 돈.

돈.


외삼촌이 그 수많은 돈들을 가져가 부유하게 살았다면 그냥 미워하면 될 것을.

왜 외삼촌은 계속 더더욱 가난해져 미워함과 동시에 동정을 하게 되는지...참 모를 일이다.


외할머니 장례식 이후로 외삼촌과 의절하다시피 한 엄마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기일이 추석 즈음인지라 외삼촌 네로 제사를 참석하질 않고 성당에 미사를 부탁하고 성묘를 하러 갔는데


할머니 돌아가신 지 3년도 되지 않아 외조부모님 묘는 벌초가 되지 않아 버려진 무덤처럼 되어버렸다.


그때부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묘는 둘째 사위인 우리 아빠 몫이 되었다.


우리 아버지는 당신 마음이 편하다며 장인 장모님의 묘를 성실히 돌보았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도 올해 69세이다.


내년 70세 때부턴 벌초 졸업하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하지만 엄마도 아빠도 아직은 할만하다며 자식들더러 신경 쓰지 말라하신다.


부모님 묘도 돌보지 않는 외삼촌의 허락 없인 외조부모님의  묘 이장이 힘들기에

사실상 우리 아빠도 어쩔 수 없이 벌초를 하는 면이 있다.


우리 외조부모님 묫자리가 사위복이 있는 자리인지,

딸만 있는 우리 아빠를 사위들이 줄줄이 따라가서 벌초를 도왔다.


우리 신랑도 1년에 한두 시간만 하면 되는 거, 장인어른 마음 편하시게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는데


나는 외삼촌이나 외사촌 오빠들이 해야 할 일을

우리 아빠가 하는 게 너무 싫어 요 며칠 마음이 불편했더랬다.


우리 신랑이 군자고, 나는 소인인가 보다.



논어 술이편 36장


子曰 자왈

君子 坦蕩蕩 군자 탄탕탕

小人 長戚戚 소인 장척척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성품이 호탕하고 호탕하다.

소인은 걱정이 늘어지고 늘어진다.


공자님은 성품이 溫良恭儉讓(온량공검양) 하다고 했다.
여기서 良(량)을 선량하다고만 풀면 아쉽다.
良(량)은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명랑한 상태를 말한다.
군자는 명랑한 사람이다.
마음이 평탄하고, 호탕한 사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가족이 되었지만 난 니가 너무 싫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