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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Jul 06. 2021

엄마가 집에 있어주길 바라는 아이들의 나이는?

엄마가 직업이 없다고 말하기 부끄럽다고 말하는 10살과 9살

나는 현재 내가 가정주부인 것을 부끄러워한다.

... 고 말하면 다른 가정주부 분들께 너무 실례될까. 

하지만, 아무리 완곡히 표현해도 지금의 내 상황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진 못한다.


다른 엄마들은 탄탄한 직장도 다니며 아이들도 잘 돌보는데 

나만 돈도 못 벌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도 안 하면서 요리도 그다지 잘하지 못하고, 아이들 교육에도 딱히 도움을 못준다는 생각에

괴로울 때가 많다.


내 존재가 쓸모없다는 느낌은 누구한테나 제일 괴로운 감정 아닐까.

"쓸모없다"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남들과 비교해서 "열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이토록 "비교"란 위험한 것이다. 스스로를 하찮게 만드니까)


이런 나의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달된 것일까

아니면 진짜 아이들도 내가 직업이 없는 것이 부끄러운 걸까.


올해 초만 해도 아이들은 나더러 엄마가 일하지 않고 집에 있으니 너무 좋다고 했다.


엄마랑 매일 같이 살고(3년 전까지만 해도 평일에 시댁에 아이들을 맡기고 주말에만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었다.)

학원 끝나고 오면 엄마가 간식을 챙겨주는 일상이 너무 행복해서

엄마가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작년부터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나 또한 아이들을 돌 볼 여력이 있는 상황이 소중했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꿋꿋이 버텨내고 있는 모든 워킹맘분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하지만 어제! 딸아이가 느닷없이 2학기 임원 선거에 입후보했다고 선언하며 선거 연설문을 작성해야겠다고 하는 바람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다른 후보자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다가 어쩌다 보니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 얘기까지 나와


"아라 엄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니까 이런 거 많이 봐서 잘 도와주실 텐데."

"채율이네 엄마는 치즈 연구하는 분이라 전에 치즈도 갖고 와서 나눠주셨어요."

"이지형 그 까불대는 놈. 걔네 엄마는 우리 학교 옆 대학교에 근무하셔서 가끔 만나요."


등등의 얘기를 들으며 "와~ 대단한 엄마들 많다. 멋지시네"라고 대답해줬더니


갑자기 아들램이 "아 그러니까 엄마도 취직 좀 해요. 내가 부끄러워~"라고 말하는 거 아닌가!


이어 딸도 "엄마 집에 있다고 말하기 나도 부끄러워서 그냥 요즘도 '학원 해요'라고 거짓말한다니까~"라는 게 아닌가!


충. 격.


나 [너네 학원 끝나고 집에 와서 엄마 없어도 되겠어?]


아들 [상관없죠. 내가 생라면 꺼내먹을 수 있고, 간식 어딨는지 다 아는데]


나 [딸. 나 전에 취직한다니까 박물관은 주말에도 일해야 해서 안 된 대고, 떡집은 아침에 등교할 때 없어서 안 된 대고, 00 회사는 너네 저녁까지 혼자 있는 거 무서워서 안된다고 극구 말리더니 이젠 엄마 없어도 괜찮아?]


딸[응 이젠 혼자 있어도 안 무서워요. 취직이나 빨리 해요.]


...


내가 입버릇처럼 거의 매일 '아, 엄마도 취직해야 하는데~ 돈 벌어야 하는데~ 엄마 백수로 있기 너무 부끄러워서 안 돼, 취업준비 열심히 할 거야' 등등의 말을 하긴 했지만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 딱히 날 따라 한다기보단


진심으로 내가 '명함'이 생겨 학교에서 친구들이나 선생님께 "우리 엄마 xxx 다녀" 라던가 "우리 엄마 000야."라고 자랑스럽게 엄마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듯하다.




대부분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예민한 면이 있지만

내 딸은 좀 더 유별났다.

많이 울고, 사람들 간의 관계에 늘 촉을 세우고 관찰하며,

타인이 자신을 대하는 자세에도 섬세하게 반응해서


시어머니께서는 공정하게 아이들을 케어한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제일 큰 애인 딸에게 좀 더 냉정하게 말씀하실 때마다

딸은 상처 받고 나의 부재를 너무나 크게 느끼며 약한 분리불안에 늘 시달렸다.


그래서 내가 일을 그만두고 온전히 아이들을 돌보게 되면서 

딸의 예민한 감성을 돌볼 수 있어 안심이 되었고, 아이의 분리불안도 많이 완화되는 게 보여 뿌듯했다.


하지만 우리 같이 살 게 된 지 1년 반 만에 날 다시 사회로 보내고 싶어 안달하는 건 너무 급발진 아냐?


게다가 겁쟁이 아들놈. 

내 아들은 뭐든 잘 먹고, 머리 대면 잘 자고, 어디서든 적응 잘하는 둥글둥글한 녀석이지만

겁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세상 1등 겁쟁이다.

그래서 눈앞에 누군가라도 있어야지 절대 혼자 있는 법이 없었다.

환한 대낮에 거실에서 잘 놀다가도 내가 화장실만 가면 장난감 다 끌고 와서 화장실 문을 열고 내가 볼 일 보는 앞에서 놀아야 하는 녀석이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혼자 있을 수 있다고 선언하고

게다가 엄마가 직장이 없는 것이 부끄럽다니!!!


이렇게 아이들은 금방 자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힘드신 워킹맘분들. 

아이 낳아 8년만 버티시면 여러분의 세상이 온답니다.

아이가 만 8세, 9세가 되면 직업이 없는 엄마를 부끄러워하고 바쁜 엄마를 자랑스러워해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저도 힘내서 재취업(혹은 재창업) 꼭 성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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