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 Apr 29. 2021

갑작스러운 휴가가 마냥 기쁘지 않은 이유

휴가에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다음 주에 휴가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일이 언제 생기고, 또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내 업의 특성상 사전에 계획하고 휴가를 가는 것은 대체로 불가능한 일이다. 비교적 계획적인 인간인 나로서는 참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휴가에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빼곡하게 시간 단위로 할 일을 세워 휴가를 가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빼곡하게 잡힌 휴가 스케줄은 하나씩 업무를 처리하는 기분이라 거부감이 든다. 평소 여행을 떠날 때도 사전에 가보고 싶은 곳 몇 군데만 찾아놓고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이동하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마음 준비'는 다르다. 업무 모드에서 휴가 모드로 마음을 전환하는 일은 여행을 떠날 때 짐을 싸듯 그렇게 신속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음의 모드 전환을 위해서 적어도 나는 일주일의 시간은 필요하다.


어떤 휴가를 보낼 지에 따라 필요한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냥 회사를 가지 않고 쉬면 좋은 거지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고. 모르시는 말씀. 휴가라고 다 쉬는 것은 아니다. 어떤 휴가는 신체적 소모를 동반하고 어떤 휴가는 정신적 소모를 유발한다.


예를 들어,

 상황 : 주말을 포함하여 총 4일의 휴가가 주어진 경우(토요일~화요일)
 휴가 유형별 에너지 소모 예시
 Ω 근교 여행 : 신체 에너지 소모(자차 직접 운전 시 추가 소모)
 Ω 자택 휴식 : 대청소 시 신체 에너지, 가족과 풀타임 머무름 시 정신적 에너지 소모
 Ω 문화 생활 : 도심 외곽의 전시관 방문 시 신체 에너지 소모 가능성
 Ω 병원/은행 : 금전적 손실로 인한 정신적 에너지 소모 가능성

이렇듯 (내 머릿 속) 휴가 유형은 다양하기 때문에 사전에 나와의 철저한 협의를 통하여 지금 이 시점 내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는 무엇이며, 나는 이번 휴가를 통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소비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밑그림이 필요하다. 참 피곤하게 산다.


쉽게 떠날 수 없는 자의 결론 : 퐁당퐁당


하지만 대부분의 케이스는 이번처럼 예상치 못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보통의 경우 나는 가장 보수적인 계획을 잡는다. 이름하야 퐁당퐁당 휴가전략. 리프레쉬가 되는 근교 여행이나 문화생활에 휴가의 절반 정도를 할애하고 나머지 절반은 온전히 마음을 정돈하며 다시 회사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시간을(주로 집콕하며 요가를 하거나 넷플릭스를 본다) 갖는 것이다. 이 경우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가를 날렸다는 아쉬움에서도, 분명 즐겁게 놀다 왔는데 회사 복귀 후 더 피곤한 기분이 드는 아이러니함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가장 만족하는 휴가 방법이다. 아마 갑작스럽게 주어진 이번 휴가도 이렇게 퐁당퐁당 보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예전 나의 회사 동기는 갑자기 주어진 연차에 곧장 비행기 표를 끊고 해외로 떠나 출근날 아침 맨 얼굴로 회사에 나타나곤 했다. 나는 상상만 해볼 뿐 실천은 못 할 일이라 내심 그런 친구의 자유로움과 추진력이 부러웠다.


나 역시 그렇게 "떠나라"란 말에 아무런 계산 없이 소박한 배낭 하나 가볍게 짊어지고 훌쩍 떠나, 출근 전날 밤 여행의 먼지를 묻힌 채 귀가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지만 어쩌겠나. 머리는 5G여도 몸과 마음은 버벅 대는 2G에 머물러 있는 것을. 내 마음이 불러오는 속도에 맞춰 조금 답답해 보이더라도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아무튼, 휴가다.








작가의 이전글 놰향적 인간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