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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May 12. 2021

깨어있지 않을 권리

커피를 끊고, 6일간의 기록


“당분간은 커피와 술은 드시면 안 돼요.”

“디카페인 커피도 안 돼요?”

“네 디카페인에도 소량의 카페인이 들어 있잖아요. 절대 안 돼요.”


커피를 끊으라니,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술은 어차피 즐기지 않기에 2주 정도는 끊을 수 있다. 하지만 커피는? 직장인에게 커피는 그냥 커피가 아니다. 하루를 살게 하는 생명수다. 많이도 필요 없다. 딱 한 잔. 출근 후 책상 위 노트북을 키는 동시에 투샷의 아메리카노 한 잔을 탁 마셔줘야 비로소 일 할 맛이 난다. 그런 커피를 무려 2주나 끊으라니, 평소라면 의사 선생님의 처방을 한 귀로 흘리고 몰래 커피를 마셨겠지만, 이번엔 병이 병인 만큼(방광염)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끊어야 한다. 아아, 삶의 낙이 사라진 기분이다.


NO커피 1일 차

출근길, 단골 커피숍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원 샷 커피는 연하니까 괜찮지 않을까? 아님 딱 두 모금 정도만 마신다면? 커피숍으로 들어설 뻔한 마음을 겨우 부여잡고 사무실로 올라간다. 커피가 없으니 영 잠이 깨지 않는다. 텀블러 한 가득 냉수를 따라 들여 마셔본다. 결론은? 금요일이고 비교적 여유로운 날이어서 망정이지 중요한 업무를 맡았으면 큰일 날 뻔. 하루 종일 비몽사몽 했다.


NO커피 2~3일 차

아침잠을 깨우는 엄마의 커피 드립 향이 야속하다. "  마셔볼래?" 하는 엄마의 달콤한 유혹에도 이를 악물고 거절한다. 독하다는 말을 들으니 약간 뿌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커피의 맛과 향이 그립다. 바삭한 토스트랑   어울렸는데 이런 바람 부는 날엔 따뜻한 아메리카논데 모금만 모금만... 커피를 마시지 못해 찾아온 허기짐을 폭식으로 달래 본다.


NO커피 4~5일 차

커피 없는 출근 길이 조금 익숙해졌다. 사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니 밤에도 잠이   아침이 개운한 것도 한몫했다. 매일 3~4 원씩 지출하던 것이 사라지니 이득인 것도 같다. 하지만 점심 식사 후엔 언제나 잠과의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냉수를 들이켜고, 허벅지를 꼬집는 것도 먹히지 않자 어쩔  없이  모금 커피 동냥을 한다. , 살겠다.


그리고 드디어 6일 차. 

2주 간의 카페인 금지 명령 이후, 약 절반이 지났다. 여전히 아메리카노의 그 구수한(다크 블렌드를 좋아한다) 맛과 은은하고도 묵직한 향, 그리고 정신이 벌쩍 들게 하는 각성 효과가 그립지만 한편으론 매일 같이 마시던, 정확히는 들이붓던 카페인을 멀리함으로써 얻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고등학생 이후 경험해본 적 없는,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지는 경험. 덕분에 아침도 가뿐한 듯한 기분. 입이 덜 마르고, 왠지 수분 충만 건강한 느낌. 바이럴 광고도 아니고 고작 5일 커피 끊고 오버가 심하다 싶겠지만 성인이 된 이후 쉽게 잠에 들어본 기억이 없기에 개인적으론 놀라운 경험이었다.




조금 덜 깨어 있으면 어떠한가?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고 했을  가장 두려웠던 것은 ‘깨어있지 못할  같다라는 것이었다. 커피가 없이는 하루를, 특히 업무시간을 비몽사몽  채로 보낼  같았다. 그러면? 당연히 업무 능률이 떨어질 테고 회사에서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깨어 있으면 어떠한가? 하는. 물론 이전보다는  하지만   일을  해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보면 대학 시절 시험 기간에도 정신이 번쩍 들게 하기 위해 수많은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때려 부었다. 잠깐의 각성 효과는  달의 불면의  그리고 언제나 깨어있는 그래서 피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삶으로 되돌아왔다. 


우리에겐 '깨어있지 않을 권리'가 필요하다


최근 시청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헤드스페이스:숙면이 필요할 >에서는 구의 발명을 예로 들며, 인공 빛의 등장과 함께 우리의 수면 패턴과 생체 리듬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분만실의 밝은 불빛을  우리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는 세상일 테지만 생각해보면 인공의 빛이 없던 시절엔 해가 뜨면 밭을 매고, 해가 지면 잠에 드는 소위  몸이 원하는, 생체 시간에 맞춰 움직였을 테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겨울철 컴컴한 하늘 아래 몽롱한 정신을 뇌까지 쨍해지는 듯한 밝은 형광등으로 깨우고, 진하게 내린 커피를 마시며 일어나라고 스스로를 흔들고  흔든다. 물론 전기나 커피 같은 문명의 발전이 우리에게 주는 이익은 명백하며, 그렇다고 유용한 전기를 버리고, 내가 사랑하는 커피를 뒤로한  산속에 들어가 원시의 삶을 살자-라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그러나 정신을 깨우기 위해 한두 잔의 커피를 마시고,  마시기에 앞서  번쯤은 생각해  필요가 있지 않을까?  몸과 마음도 가끔은 몽롱하고 느긋한 휴식의 시간, '깨어있지 않을 권리'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70% 정도의 깨어남 상태로 적어보는

NO커피 6일 차의 시답잖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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