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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Aug 28. 2022

대체할수 없고 싶은데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이야기

이전에 썼던 후라이팬 이야기 이후 다시 예열하나 싶더니, 다시 멈춤 상태가 되었다.


지지난주 팀 이동이 있었다. 입사 이후 1년 남짓(즉, 3월까지) 있었던 팀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내가 맡았던 프로젝트들이 대부분 재검토의 도마 위에 올라가 있다.

내 역할에도 변경이 있을 여지가 있어, 잠시 멈춰있다.


차라리 바쁘면 잡생각이 없을텐데, 이런 와중에 멈춰있어야만 한다는게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한 발짝 물러서 있다보니,

일에 과몰입해 있을때는 자꾸 잊어버렸던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일은 내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은 가치가 없으니 태만하자는 뜻이 아니다.

내가 대체되더라도, 나와 함께 일하던 사람이 대체되더라도 일이 굴러가야 한다는 뜻이다.


팀의 업무 조정에 의해서 내 일을 남에게 넘겨주거나, 다른 일을 남에게서 받아오더라도, 미국처럼 극단적으로 당일 해고 통보가 있어서 짐만 겨우 챙기고 황망하게 그만두게 되더라도.

그게 협업하는 사람에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게 굴러가야 한다. 내 암묵지에 의존해 프로젝트가 돌아가지 않도록 하려면 가급적 각 의사결정마다 근거와 히스토리를 명확히 남겨두어야 한다.


사실 일터에서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걸 머릿속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고유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건 꽤나 마음아픈 일이다.


내가 피땀흘려 고생한 프로젝트라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오랫동안 고생하다 살려낸 프로젝트라도. 어느 순간 그 일은 훌쩍 내 손을 떠나버릴수 있다. 몇 번 겪어봤고, 머릿속으론 알고 있다. 하지만 종종 공허하고 상실감이 커진다.


프로젝트를 넘겨주기도 하고, 받아오기도 하면서.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이런저런 상황들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나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 일을 어떤 식으로 하는가가 내게 남는 거에요.


팀장님에게 입사 초 들었던 피드백(주1)인데, 새삼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일은 생각보다 자주 바뀔 수 있다. 하지만 그 일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는 없어지지 않는다.

일에 나를 의탁하는 건 위험한 일이지만, 그 일이 내게 남긴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음 일에서 촉이 되어줄 것이다.


일을 할 때마다 나의 존재를 확인받으려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일까.

외려 글을 쓰면서는 욕심이 난다.

나라는 작가가 고유한 작가이길 바라는 마음.

지금 내가 쓰는 글이 독자들에게 사랑받을만큼 공감을 사면서도,

나만이 줄 수 있는 감동으로 고유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이런 마음때문에 요즘 오히려 더 글을 쓰기 어렵나보다.



주 1)이 말을 처음 들을 당시엔 옆 팀 팀장님이었고, 3월부터 5개월 남짓 팀장님이 되었다. 그 말이 인상깊어 아래 글에 피드백을 남겨두었는데, 팀장님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참 좋았었다.

"옆팀 팀장님은 내게 일의 접근방식을 말해주셨다. 결국 일이 달라보여도 내가 그 일을 어떻게 접근하는지는 변하지 않는다. 하는 일의 도메인과 대상은 바뀔지 몰라도, 그 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게 조직 내에서 나의 고유한 영역이 된다고."

https://brunch.co.kr/@whaleyeon/87

내가 의존할 수 있는 건 결국 내가 그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는가, 라는 나만의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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