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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May 02. 2021

일에서의 책임감, 뭘까

주도성과 책임감만큼 무서운 단어는 없겠지

"항상 세션 멤버들은 보컬의 뒤에 있지만,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했기 때문에 Square 라이브가 빛났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들어 프로덕 매니저/기획자라는 포지션은 뒤에서 묵묵히 일이 되게 하는 자리란 생각이 듭니다. 일이 되게 하려면, 회사의 다른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을 챙기고, 모두가 낸 의견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수의 뒤에 서있지만, 더 좋은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세션같은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좋아하는 시와 노래, 가사로 나를 소개하는 에세이를 썼던 적이 있다. 면접에서 똑 떨어졌지만, 그 에세이에 나는 백예린의 스퀘어 초록 원피스 영상을 다루었다. 그리고 글을 마무리할때, 위 문장을 썼다. 뒤에서 자신의 연주에 최선을 다하는 세션에 마음이 갔기 때문이다.


사실 백예린 스퀘어에 세션 이야기를 쓰기엔 너무 관련없는 주제를 한번에 몰아쓴 느낌이다. 원래 내가 쓰는 에세이라면 저 문장은 제외했을테지만 에세이의 목적이 자기소개에 있다보니 저 부분이 꼭 필요했다. 하지만 저 글을 쓰면서 떠올린 "책임감"이라는 단어에는 진심이다.


내가 있는 IT 분야에서는 직군의 트렌드가 종종 바뀐다. 몇년 전에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였고, 그 이후에는 데이터 분석가와 퍼포먼스 마케터였고, 요즘엔 그 키워드가 프로덕트 오너(PO)라는 말에 쏠려있는 느낌이다. 실리콘밸리를 시작으로 쿠팡(링크한 아티클이 쿠팡 PO가 쓴 '프로덕트 오너'라는 책을 다룬 글이다.) 과 토스를 필두로 제품의 특정 부분을 맡아 미니 CEO처럼 성과와 임팩트를 위해 일하는 직무. 기획자는 가고 프로덕트 오너처럼 일해야 한다 할때의 그 프로덕트 오너. 나는 저 말에 함축된 업무의 범위가 얼마나 큰지 알기에, 제품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주도한다는 것"이 굉장히 큰 에너지를 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다른 업무적인 팁도 좋았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이 있었다. PO는 군림하지 않으며, 의사결정은 할 수는 있지만 따로 주어진 권위가 없기에 밀어붙일 수 없고, 대신 책임감을 가지고 팀원들을 차분히 설득해야 한다. 필자는 그걸 위해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술은 물론 커피와 좋아하는 초콜릿을 끊었다는 것. 개인적인 즐거움까지 끊으면 저게 사는건가, 싶다가도 그건 저분이 일에 대해 보이는 책임감을 간절하게 표현한 방식이라 생각했다.


새로운 조직은 무척 큰 곳이다. 함께 일해야 할 사람이 많고, 정신차리지 않으면 파편화된 업무를 따라갈 수 없다. 일할 과제가 훅, 하고 들어올 경우가 많지만 세부 업무를 누구도 시키지 않기에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안(못)하게 되는 곳이다. 여기서 일하는 내가 가질 수 있는 책임감은 무엇일까 다시 생각했었다.


이 주제에 대해 최근 한 달간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와 함께 일했던 선배는 내게 빌드업이라는 키워드를 말해주었다. 일을 주도한다는 것은 독단적으로 자기 결정을 하는것이나 이 일을 빠싹하게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대신 질문하기 시작하고, 필요한 것을 찾아 나가면서 차근차근 쌓아올리는 것에 가깝다고. 옆팀 팀장님은 내게 일의 접근방식을 말해주셨다. 결국 일이 달라보여도 내가 그 일을 어떻게 접근하는지는 변하지 않는다. 하는 일의 도메인과 대상은 바뀔지 몰라도, 그 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게 조직 내에서 나의 고유한 영역이 된다고.


우리는 모든 상황을 컨트롤할 수 없다. 내가 맡은 서비스가 하루아침에 출시도 못하고 죽어버렸지만, 그 녀석을 좀비처럼 필요할때마다 깨워야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깨워놨는데 내가 그 프로젝트에서 휙, 하고 쫓겨날 수도 있다. 내일 안 나오면 안 될것처럼 해서 내놓았더니 이게 아닐수도 있다.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당황스러운 일을 끌고 나가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무리 애를 써봐도 개발자가 부족해 과제가 밀릴지도 모른다. 그래, 프로덕트 오너님의 책에서라면 안 해야 할 실수가 맞다. 할 수 있다면, 모두가 해야할 일을 끌고 나가면서 동기를 부여하는게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어떻게 일을 굴려야 하는게 책임감이자 숙명 아닐까. 그 일을 해야 하는게 나라면 말이다.


개인적으로 한동안 일을 하면서 "이 일을 내가 하는게 가장 잘하는걸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내가 아는것이 없거나, 내 경험이 적어보이거나, 혹은 이 일에서 미숙함을 느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도, 어떻게든 일이 굴러가도록 애를 쓰는것만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그 생각을 덜게 되었다. 그 일을 포기하지 않고 대신 이 일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것, 최선을 다해 필요성을 설득하되, 여건이 안 되어 당장 실행할 수 없더라도 나는 이걸 잊지 않고 있는 것. 질문하고, 설명을 듣고, 오해를 좁혀나가는 것. 필요하면 다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 그리고 질문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것. 나는 그런 태도를 같은 직군의 동료들에게서 배우고 있다.


지금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게 업무의 80%라, 내가 나서서 논의를 이끄는게 서툰 나는 힘들 때가 있다. 그래서 옆 분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 그래도 퇴근하고 밤에 릴리즈를 앞두고 옹기종기 화상채팅앞에 있을때 하루종일 받은 스트레스때문에 소리지르듯 방 안에서 "인생~~~ "이라며 한탄하듯 요상한 단어를 섞어 노래하듯이 소리치다가도 시치미 뚝 떼고 마이크를 켠 뒤 "맥에서는 이상없이 동작합니다"라고 말하는게 나의 이상한 책임감인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마이크를 잘 꺼두었는지, 내 노래는 안 들렸다니 다행이다.


+이 글은 함께 화상채팅을 진행한 뉴스레터를 읽어줄 동료들을 생각하면서 썼다.(정확히 이번 화상채팅때 나는 테스트를 도와준 뉴비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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