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소중하지만 가끔 개복치가 되는 자의 워라밸 고민기
회사 출근 한 달 되어가네요. 회사다니고, 집안일하고, 뉴스레터를 쓰면 끝이에요.
정말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이 말을 했다. 물론 일상 가까이 자잘한 이야기와 빛나는 순간들이 숨어있겠지만 그럼에도 요약하면 이 셋으로 나뉜다. 근데 돌이켜보면 이 셋을 다 잘했는지 모르겠다. 새로 시작한 일에 적응하느라 힘들어 끙끙 앓았고, 집안은 엉망에다 음식이 상해서 버렸고, 새벽 두시까지 뉴스레터를 썼는데 정작 수신거부자가 우수수 나오고 별다른 피드백도 없다.
그 중 내 마음을 괴롭힌 비중을 따지자면 첫 번째. 회사일 적응이 가장 비중이 컸다. 사실 나는 회사일에 정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글에서는 회사 일을 잘 말하지 않지만, 사실 내 일상 대부분은 회사와 관련이 깊다. 회사의 일이 잘 되지 않으면 초조함이 크다. 나는 그 스트레스를 직격으로 받는다. 탄산수 캔으로 탑을 쌓고, 간식 먹은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바탕화면과 다운로드 폴더가 엉망이 되고. 손거스러미를 계속해서 물어뜯고, 무엇보다 시간의 흐름을 귀신같이 맞추기 시작할때 아, 회사형 인간이 스트레스를 받는구나 절감한다.
이번주도 그랬다. 새로운 회사에서 일한지 얼마 안 되었고 여기에서 스트레스가 올 때가 있다. 금요일엔 그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올라 컴퓨터를 끄고도 끙끙 앓듯이 누웠다. 보통 이렇게 회사일에 몰입하게 되면 나는 굴에 들어간다. 사람을 만나기 싫다. 회사 불평을 하고 싶지 않고, 그런불평은 재밌지 않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또, 회사에서 힘들지 않고, 초조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힘들테니, 그런이야기는 서로 보탤 필요가 없지 않을까. 안 힘들어서 내 이야기를 도닦듯 들어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엎드려 절을 하고 싶다. 일을 잘하고 싶고, 잘 되게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불안함은 사서 고생인 것이다. 그래서 일에 대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소중하면서도 가끔은 버거운 녀석이니까.
문장줍기의 독자에게 사연을 받았다. 나에게 "워라밸"에 대한 문장을 골라달라는. 그래서 생각해본다. 누군가 나에게 워라벨을 묻는다면, 그건 "내일 더 잘 뛰기 위해 쉬는것"이라고 말할 것 같다. 내 일에서 좋아하는 구석을 찾고,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내가 지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것. 그럼에도 내일을 더 잘살기 위해서, 다음주를 달리기 위해서 나를 챙기는것은 필요하지 않는가. 마냥 참다 퇴근해서 행복한게 답이 아니라 말하고 싶다. 거북목이 되도록 집중하고, 해내고 싶은 감정은 충분히 소중하니까. 이왕이면 좋은 방향으로 머리가 돌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나 또한, 맘같에선 더 잘하고 싶고, 더 오래 고민하고 싶다. 하지만 통근시간이 길어졌고, 내일도 출근하려면 일단 오늘은 접어야할때도 있다. 이건 밀리지 않아야 하는 집안일같기도 하다. 설거지거리를 미뤄두면 새로운 요리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몸을 정돈하지 않으면 내일의 일상을 얹어둘 수 없다.
내일 더 잘뛰기 위한 방법은 뭐가 있을까. 먼저, 하루를 공허하게 날리지 않기 위해 자잘한 이야기와 빛나는 순간을 돌이켜 본 것. 이번주의 보약같은 순간이 뭐가 있을까, 지지난주 심었던 당근에서 새싹이 무럭무럭 자란것. 날씨가 좋았던 것. 팀원들과 함께 먹은 점심이 맛있었던 것. 뿔뿔히 흩어진 전 직장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한 일이다. 아, 맨 앞에 말한 회사 출근 한달 소회도, 그분들에게 말한 것이다. 날씨가 좋아 마음속으로 사진을 찍어두었던 것. 인연에 인연이 겹쳤던 일.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만날지 모르니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작은 다짐 하나.
그리고,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것. 요즘 의도적으로 출근시간을 앞당겼다. 아침 8시 45분에 판교에 도착할 수 있도록 조정해두었다. 몇 번의 치밀한 계산 끝에 6시 45분에 일어나 한 시간동안 준비 후 호다닥 나간다. 준비 시간은 다음과 같다. 아침 약과 영양제먹기(1분) - 20분 스트레칭 - 15분 아침식사 - 옷입고 준비하기 15분 등. 시간남으면 10분짜리 집안일 하나. 이러다보면 몸이 예열되는데, 저걸 지키다보면 퀘스트를 빠릿하게 하는것같기도 하고 재밌다. 재택을 하는 날에는 조금 느긋하게 자고, 부족한 걸음수를 채우려 부러 산책한다. 일이 쉽게 끝나지 않아 보통 밤 산책이 되곤 한다. 물론 이 노력은 무너지기 쉽다. 이번주엔 지인 만나고 와서 늦게 잔데다 일때문에 마음이 바빠지니 며칠동안 노력따윈 집어치웠다. 금요일의 울적했던 기분은 그 탓인지도 모른다. 기분이 울적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으니까. 당분간 진짜 조심해야겠다. 앉아있는 자세가 좋지 않아 허리가 아픈데, 움직이고 스트레칭할 시간도 더 늘려야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일이다.
토요일 아침에 나를 움직이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잔뜩 몸을 움직였다. 전날 온 야채박스를 정리하고 간단한 샐러드를 만들어두었다. 상해버린 음식을 버린뒤, 몇 번에 걸쳐서 설거지를 하고, 며칠동안 널브러져있던 빨래를 정리했다. 핸드폰에 잔뜩 열어둔 브라우저 탭을 치우고 책상 앞에 서있다 보니, 걸을 수 있는 나, 글을 쓸 수 있는 나로 돌아왔다. 오늘은 날이 좋으니 산책을 갔다가, 어떻게 일을 정리할지 고민해봐야지... 여전히 월요일 회의는 스트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