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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Jul 31. 2021

집에서 일하려는 몸부림

코시국 재택 한달차에 다시 만든 홈 오피스(브이로그 느낌)

원래 회사는 순환재택제도였고, 나는 주로 월/금요일에 재택을 병행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전면재택재택을 한 달 가까이 지속했다. 어떻게든 재택을 지속해보려는 의지를 소소히 남겨본다. 누군가가 자신의 업무 공간을 설명하는 브이로그를 시청하는 것처럼 읽어주시길. 아늑하다기보단,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일하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라 생각해주시면 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재택근무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을때는 출퇴근에 드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어 좋지만, 출근과 퇴근의 경계가 모호하고, 페이스 조절이 힘들다. 기를 쓰고 더 일하게 된다. 아니면 종종 집중이 안될 때는 집안일로 도피하는 경우들도 있다. 그동안은 업무 후 산책겸 가볍게 장을 봐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날이 더워지면서 산책갈 수 있는 거리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열시 넘어서 5천보를 걸을 수 있으면 다행일 지경이다.


재택 4주차가 된 지금, 요즘들어 점점 삶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비슷한 거리만 맴맴 도는 느낌이라 갇혀서 사는 느낌이다. 지인이 나에게 한 말 - 집과 주변만 맴맴 돌다보니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 는 말에 공감이 간다. 퇴근해도 즐거운 일이 많진 않아서 노잼시기를 보내고 있다. 나는 반려인(남편)과 둘이 사는데, 그와도 떨어지는 시간 없이 둘이 하루종일 있다보니, 부딪힐 일이 전보다 많아졌다.

어쨌든 재택을 해야 하는 환경이니 선택의 여지 없이 일은 해야겠지. 일에 집중을 잘 못하는 편이라 여러가지 노력을 한다.


아침에 집중이 잘 되는 편이라  6-7시에 기상한다. 아침에 몸이 좋지 않으면 스트레칭을 조금한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아침을 먹고, 빨래나 설거지 등 밀린 집안일들을 한다. 대부분 9시에서 9시반에 업무를 시작하는데, 아침에 더 빨리 업무를 미리 정리하고 싶으면 더 일찍 출근모드로 바꾼다. 몸이 좋지 않으면 10시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회사는 소정근무시간을 채우면 되는 편이라 중간중간 몸을 펴거나, 30분 이상 휴식을 취한 경우 팀원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해당 시간을 근무시간에서 제외해둔다. 일을 마치고 7-8시쯤 퇴근한다. 


주로 회의를 하거나, 혼자 일을 한다. 회의를 할 때는 화상 회의를 자주 하는 편이다. 현재 앉은자리에서 냉장고 등 살림살이가 다 보이는 위치라 다양한 필터를 사용할 수 있는 스냅카메라를 쓴다. 조금 캐주얼한 회의면 개구리 모자 필터를 쓰고, 조금 진지한 회의라면 가상 오피스 배경을 뒤집어 씌운다. 회의 시 이야기를 더 잘 하도록 회의 주제를 미리 정리해서 이야기하고 메모장에 협의 내용을 같이 볼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작성하거나, 관련 문서들을 미리 보내 리뷰를 요청한다. 각종 협업 프로그램 -  구글 닥스 / 공동으로 디자인/와이어프레임을 그릴 수 있는 피그마/ 피그마에서 만든 회고 방식인 피그잼을 사용한다. 사실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 회의밖에 없어서, 가끔은 소소한 잡담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업무에 집중하긴 쉽지 않다. 수시로 메신저가 울리고, 집안에는 왠지 치워야 할 물건들이 눈에 밟힌다. 혼자 일하고 있는데 낮잠을 자고 있는 반려인을 보면 심통이 나서 한번 물어뜯으러 다녀온다. 업무 집중도가 종종 떨어지면 종종 나는 다른 문서를 읽거나 주어진 일을 회피해 결과적으로 야근하게 되고, 일과 삶의 구분이 모호해지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한 가치 규칙을 도입했다. 40분 집중근무 -20분 휴식 법칙을 변용했다. KMN 방법론에서 따온 것인데, 집중근무 단위인 KMN을 전부 쓰기엔 귀찮아서 Y를 단위로 줄여 쓰기 시작했다. Y는 별 뜻은 없다. 회사 닉네임(Yan)의 앞글자이다. KMN도 처음 해당 방법을 제안한 번역가 김명남 선생님에서 왔다고 하니까. 나는 KMN보다 조금 더 느슨한 방법을 사용한다. 꼭 정시에 시작하진 않는다. 집중근무를 의미하는 Y 40분이 될 수도, 45분이 될 수도 있는 일을 해내고, 이후 10-15분 정도 쉬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몇시부터 출근했는지를 쓰고, 업무일지를 노션에서 뒤적거리며 오늘은 몇 Y를 해치울지 정리한다. KMN 방식에 의하면 8번의 집중근무가 가장 이상적이며, 많더더라도 10개까지는 하지 말라고 한다. 그에 맞춰 나도 Y의 갯수를 구성한다. 예컨데 회의가 한두개정도라면 날이라면 6Y, 회의가 많은 날이라면 2Y정도만 하겠다고 생각한다. 각 Y를 진행하며 Y의 목표, 집중도를 기억해둔다. 이걸 적는다고 집중도가 점점 향상되는 건 아니지만, Y의 갯수와 집중도가 좋은 날이면 조금이라도 기분좋게 퇴근할 수 있다.

업무 노트의 재구성. 악필주의. 대부분 잘 되는 날이 많지 않긴 하다.
자체적으로 구성한 업무 일지의 변형이다.프로젝트를 여러개 관리하는지라 이런 식으로 기록해둔다.

재택을 하면서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건 내 책상을 꾸리게 된 점이다. 자기만의 방은 아니지만 자기만의 책상은 가지고 있다. 전면 재택이 시작되기 전, 반려인과 나는 책상을 구분하지 않고 둘이 번갈아 쓰고 있었다. 종종 서로 일이 있으면 비켜주어야 했고, 서로의 짐이 뒤엉켜서 영역다툼이 생겼다. 가끔 내 키보드와 마우스를 치워두었을땐 버럭 화가 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전면 재택이 시작되기 전 주말, 우선 책상과 공간의 분리를 하기로 했다. 원래 방 안에서 한 개의 스탠딩 책상을 나눠쓰던 도중 책상 하나를 더 사두고 내버려 두고 있었다. 날이 더워진 만큼 그래서 에어컨이 있는 거실에 안 쓰던 책상을 하나 들고 나오기로 했다.


내가 꾸려놓은 이 공간에서 나는 일하기도 하지만, 컴퓨터를 탁 덮어 퇴근을 하면 그 순간 책상이 나의 놀이터가 되어주기도 한다.  모니터를 tv삼아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낙서를 하는 공간이 되어주기도 한다. 누워서 노는것보다 책상에서 멍때리는게 정신건강에도, 허리에도 좋으니까. 지금도 노잼시기지만, 책상이 없었으면 대노잼시기였을거다. 소소하게 책상을 묘사하면서 글을 마쳐볼까 한다.


글을 쓰는 현재 내 책상. 인스타감성은 아니고, 극 실용주의다. 주중에도 비슷한 풍경.

구성 요소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스탠딩 책상/모니터/모니터암 - 원래 목과 허리가 좋지 않아 여러 장비를 사용하겠다고 결정했다. 스탠딩 책상이 필요하다. 높이 조절이 가능한 책상인데 두 시간정도 서있는듯하다. 거북목을 낫게 하려면 목을 숙이는 자세는 쥐약이라 하니, 모니터암을 연결해두었다. 멀티태스킹을 매우 많이 하기 위해 작은 모니터를 쓰기보다는 큰 모니터를 사용한다. 개인 컴퓨터에서 하는 작업은 간단해 디스플레이가 컴퓨터와 모니터가 똑같하지만, 회사 컴퓨터에서 일을 처리하는 경우 화면이 더 많이 필요해 별도 분리해두었다. 조만간 모니터를 하나 더 사고싶어질도 모르겠다.


컴퓨터 /마우스 / 키보드 - 작업을 할 때 타자도 많이 치고 마우스로 일도 많이 하는 편이라 별도로 구비해두었다. 모두 블루투스 연결이 가능해서 개인 컴퓨터 / 회사 컴퓨터에 번갈아가면서 연결하고 있다.


배터리/무선이어폰 - 왼쪽에 전선이 연결되어있고 에어팟이 대기중이다. 화상회의를 하려면 이어폰을 쓰는게 깨끗하게 들릴 때가 있는데, 안타깝게 회사 컴퓨터의 이어폰 잭이 망가지면서 블루투스 연결만 가능한 상황이다. 한시간 반 정도 회의하다보면 배터리 수명이 다하기 때문에 번갈아가면서 충전하고 있다. 여러 개 연결이 가능하므로 가끔 모니터 충전이 가능하기도 하다.


스탠드 - 조명이 조금 어두울 경우 추가로 켜둔다. 아래는 고무오리가 있다. 전 회사 동료에게서 선물받은 녀석이다. 이름은 덕덕이. 개발자분들은 종종 코딩하다 머리가 막히면 오리한테 코딩 관련해서 설명을 하면서 생각 정리를 한다고 한다. 나는 주로 스트레스 받을때 오리를 눌러서 삑삑 소리를 내곤 한다. 나대신 대신 화내주는 오리에게 감사하는 마음.


타임타이머 - 타임타이머는 줄어지는 시간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어서 편하고 시간이 지나면 바로 알림이 울리는 시계인데, 집중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애용한다. 위에서 설명한 Y에 맞춰 40분을 잡을때 사용한다. 시간이 헷갈릴때가 많아 타임타이머를 요긴하게 쓴다. 점심시간에도 타임타이머를 맞춰두고 쉰다.


업무 노트 - 기획자로 화면 정리 전 생각 정리가 필요할때 그림을 마구 그리거나, 체크리스트를 써둔다. 아침에 일어나면 주로 여기에 출근시간과 업무 진행한 "Y"가 몇 개였는지 작성한다.


귀덮개/귀마개 - 음악 듣는걸 좋아하지만 집중이 필요할 때는 듣지 않는다. 특히 요즘 청소기와 에어컨 소리가 시끄러울땐 귀마개를 쓴다. 바로 옆이 주방이라 식기세척기가 돌아가는 경우엔 바로 귀덮개를 장착한다. 사진 왼쪽 책더미 위에 얹혀진 게 바로 귀덮개다.


안경집 - 난시가 있어 안경을 끼고 일한다. 필요할 때마다 바로 안경을 닦을 수 있도록 위에 놔둔다.


물컵 - 평소에도 몸의 온도 조절을 물을 마시며 하는 편이다. 몸이 차거나 덥다고 느낄때 모두. 요즘은 날이 더워 남는 티백들을 냉침해서 냉녹차 형태로 마신다. 뭔가 사고싶을때마다 잔뜩 사둔 티백들이 많은데, 한 달 뒤 이사 시점까지 부지런히 마셔 없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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