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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Jan 16. 2022

구렸던 나 용서하기

외면해왔던 기억을 다시 마주하기

원래 브런치에 일 이야기하고 싶어서 개설했는데 정작 아주 오랫동안 브런치에서 일에 대한 이야기는 잘 못 썼다. 그래서 아주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만 작성했다. 기획자 초반 - 2017년, 2018년- 내 모습은 정말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왜, 글로 쓰면 실제의 나보다 더 멋져지지 않는가. 하지만 실제의 내가 얼마나 일을 못했는지 여실히 알기 때문에 그 차이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서비스 기획자로 일한 지 벌써 5년 차. 이젠 “미숙하다”는 핑계를 댈 수 없는 시기다. 그리고 내 일상에서 가장 크게 차지하는 “일”을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 출근을 하다가" 매거진을 만들고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기획 일”자체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다.


그동안 쭈욱 외면해왔던 초짜 기획자 시절


기획자로서의 나의 커리어를 돌아본다면, 나는 균등하게 성장하기보다는 좌충우돌했다. IT 업계에 있어보긴 했는데 아주 얕은 지식들만 있었다.


처음 기획자로 취업하고 싶었던 당시 2년간 SI 업체에서 일하고 UX 관련 대학원을 갔다고는 하지만 실전 경험은 없었다.


중고신인인 나는 기획해본 경험이 없었고, 그만큼 압도적인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를 믿고 써줄 회사는 아주 작은 스타트업들이었다. 어디든 감사합니다,라고 들어갔다.


하지만 사수 없던 초짜의 기획은 엉망이었다. 내가 그린 화면은 삐뚤빼뚤했고, 데이터 처리에 대한 고민을 못하고 만든 서비스는 대용량 데이터를 연동했을 때 버티지 못하는 구조였다. 개발자들의 고민을 잘 캐치하지 못했고, 결정을 내려주기보단 같이 표류하는 사람이어서 프로젝트의 일정이 지연되게 만들기도 했다. 어제의 말과 오늘의 말이 달랐다.


그래서 기획자로서 일한 첫 회사에서도 두 번째 회사에서도 평가가 좋지 않았다. 특히 두 번째 회사에서는 개발자 모두가 나와 일하고 싶지 않다는 평가를 들었고, 그래서 다른 부서로 옮겼던 적이 있었다.

아직도 그 시간들은 내게 악몽처럼 기억된다. 나도 누군가의 악몽이었을 거다. 그때 동료가 레퍼런스 체크를 한다면 이직 못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의 상황이 가끔 꿈에 나올 정도고, 나는 아직도 개발자들과 이야기할 때 속으로 벌벌 떨면서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하면 종종 “저 기획 왜 저렇게 구려?”라고 나를 참아내는 사람들의 기분 상한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도 나 그때 참 못했네,라고 받아들이니 예전만큼 무섭진 않다. 그렇게 순순히 받아들이게 된 것은 이번 회사 구직 타이밍 때였다. 그동안 하도 급하게 이직해서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 정리를 못했다. 그때의 순간들을 외면하고 앞으로 나간 셈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이직”을 준비해보자 결심하니, 기획자들에겐 포트폴리오가 필수였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에 대한 객관적인 수치와 효과를 제시했어야 했다. 그러면서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돌이켜보는 시간들이 있었다.


아, 그때 참 나 못했었지. 그렇게까지 갈등을 회피한다고 될 일은 아니었는데 나도 참 미숙했지. 그때 나는 참 못났다. 그래서 이젠 갈등은 피하지 않기로 결심했어요.라는 말을 하기까지 3년 정도 걸렸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더라


그렇게 다시 한번 "나 구려" 모드를 디디고 어떻게 계속 일할 수 있었을까. 몇 가지 순간들이 생각난다.


사실 두 번째 회사에서 팀을 옮기면서 기획자는 다시 안 한다고 결심했었다. 새로 옮긴 팀은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나름 거기서 SQL을 조금 다뤄서 데이터를 뽑아주니 팀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다. 거기서 자신감을 얻어 제품 분석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해봐야겠다 결심했다.


하지만 SQL 하는 걸 눈여겨본 선배가 세 번째 회사로 나를 꼬셨다. 다시 한번 기획자 해보자고. 너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나를 꼬신 선배는 6개월 만에 창업한다고 나가버렸지만.. 그래도 반년 동안 선배의 이런저런 트레이닝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선배.. 좀만 더해주시지...ㅠㅠ)


세 번째 회사에서는 선배 말고도 고마운 일들이 많았다. 고민을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는 기질이 많았던 내가 사람들에게 조금씩 애정을 표현하고, 어려운 점에 대해서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쿠버네티스나 몽고 DB 너무 어렵다고 술 먹다 울기도 해봤었고, 팀원들과 함께 새벽까지 릴리즈가 안 되서 머리를 쥐어뜯는 경험도 해봤다. 11시까지 어려운 리포트를 정리하는 과정도 힘들고 즐거웠다.(브런치 북 5화가 이 이야기다)


언제였더라, 동료들에게 위에 언급한 이야기를 넌지시 꺼냈는데, 그때 단호하게 "그때 못했다고 지금도 못하는 거 아니다"라고 말해준 분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르다. 개발자 출신이셔서 더 마음 치유에 도움이 되었나 보다.


이직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나를 지켜본 IT 소모임 동료들의 격려도 큰 도움이 되었다. "IT 분야에서 어떻게든 그 정도 버텼고, 무언가 제품이 세상에 나오게 한 거라면 잘한 거다"라는 격려도 “업무에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목표를 지정해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드백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할 일은 많지만 마음이 좀 평온해졌다. 지금 회사는 큰 회사고,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그만큼 의사결정이 느리기도 하지만, 내 기획이 좋은지 검토해줄 수 있는 동료가 훨씬 많아지기도 한 거겠지.


기획자 동료들에게 애정 어린 피드백들을 많이 받으니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물론 일할 때는 혈압 팍팍 오르는 순간들이 매우 많고 “아 씨 X 때려치울까?”라는 마음을 꾹꾹 누르고 일하지만.........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돌아보자면


초반보다는 나아졌겠지만, 아직도 잘하는 기획자는 아니라 생각한다. 내가 기획한 화면은 뭔가 확실히 구리고 매주 이슈는 항상 빵빵 터지고, 고려하지 못했던 것들은 열 배쯤 더 큰 덩어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머리를 굴린다고 굴렸는데, 물음표 살인마 분들의 크리틱을 보면 작아지기도 한다.


일단 지금 바라는 건 딱 하나다. 그저 일의 병목이 되지 않는 기획자이기를.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힘들지는 않기를. 필요한 일을 딱 해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람이기를.


내가 만드는 게 세계 최고로 멋진 프로덕트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혹은, 연말에 화제가 되었던 트리 사이트, color my tree처럼 빵 터지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슈퍼스타 기획자로 나의 레퍼런스를 공유하면 천 명씩 들어오고 실리콘밸리 MAGA(메타(구: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애플의 줄임말이다)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끊임없이 받는 기획자... 는 바라지도 않고, 개발자들이 같이 일하기 좋아해 주는 기획자가 되는 건 욕심 같기도 하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이젠 돌아 돌아 여기까지 온 나를 용서해주고 싶다. 좌충우돌로 알아낸 지식보다 여기서 알아낸 게 더 많아서 그동안의 순간들이 낭비 같다고 생각하는 나를.


한 가지 덧붙이자면 혹시나 이 글을 읽는 기획자를 꿈꾸는 사회 초년생이 있다면, 신입이 어느 조직에 “홀로 기획자”로 가는 상황을 추천하지 않는다. 물론 부딪히며 성장할 수 있기야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다. 쉽지 않겠지만, 놓치지 않아야 할 것들을 잘 짚어주는 사람이 있는 곳에 가길 바란다.


글을 쓰면서 생각났던 구절들

내 민낯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 그렇게 두 려운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변화와 개선의 여 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 그 순간에 찾아오는 불 안 함과 두려움. 하지만 포기가 아니라 인정을 하고 나 면 그때부터는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는 사실도 점차 알게 되었다. '척' 하느라 무리하지 않아도 되고, 억지로 괜찮다고 자기 합리화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나아질 거라는 희망만 가지고 간다. 어쩌면 그게 모든 공부와 변화, 성장의 시작점 인지도 몰랐다.


일과 나의 자아를 동일시하며 대단한 사명감을 갖거나 진정한 나 자신과 동떨어진 밥벌이로 비하 하기보다는 내가 세상과 만나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즐겁고 감사한 기회로 여기면 어떨까 싶어요

-언젠가 보았던 황선우 작가님의 인스타 답변


간략한 용어 설명(느낌만 봐주세요.)

-SI 업체: 고객사의 요구사항에 맞춰 프로젝트를 수행해주는 업체를 의미합니다.

-SQL: 데이터베이스에서 데이터를 뽑을 수 있는 언어입니다. 시퀄이라고도 불립니다.

돌이켜보면 아주 잘한건 아니고 근근히 남의 코드를 수정하는 정도였지만 그것만 해도 박수를 받았던 고마운 상황이었습니다.^^;...지금은 그것도 까먹었네요.

-쿠버네티스, 몽고 DB: 쿠버네티스는 서버나 클라우드를 올리는 방식의 한 가지, 몽고 DB는 위에 말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성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봐주시면 돼요. 일반적으로 데이터들이 엑셀 비슷한 형식으로 저장된다면 좀더 자유로운 형식으로 큰 데이터를 정리할 수 있다... 하는데 저도 몽고DB SQL은 끝까지 못 익혔어요. 자세한건 서버 개발자분들에게 마이크를 넘겨봅니다.

마지막건 너무 어려워서 링크 붙임

https://kubernetes.io/ko/docs/concepts/overview/what-is-kubernetes/

https://ko.wikipedia.org/wiki/%EB%AA%BD%EA%B3%A0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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