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블유 초반에 나오는, 주인공 배타미(임수정)의 대사였다. 20대와 30대를 모두 보낸 회사는 그녀에게 인생 그 자체였다. 저 대사 이후 "일은 일이어야 하는데 제가 너무 감상적인가요"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애정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나는 타미처럼 임원도 아니었고, 13년은 커녕 터무니없이 짧은 16개월밖에 안 있었지 못했지만, 타미처럼 귀신같이 똑똑하기는커녕 일개 멍부 직원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심정에 공감이 가서 볼 때마다 눈물이 똑, 하고 떨어진다.
나는 항상 회사 사람들과 예의 바르게 거리 두는 입장이었는데, 마지막 회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작은 회사였고, 팀원들과 밀착해서 일한다. 감정적으로 매우 가까워 벅찬 순간도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안에 다양한 감정이 피어오를 수 있음을 느낀 시간이었다. 감정적인 희로애락이 가장 뚜렷한 시간이었다. 다른 이를 챙겨주고 챙김 받는 따뜻함을 느끼기도 했고, 펑펑 울기도 하고, 버틸 수 없이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다. 살면서 가장 술을 많이 마신 회사였는데, 아무도 강권하지 않아도 이상하게도 많이 취했었다. 필름이 세 번 끊겼고, 두 번 토했다. 다행히 사람들이 필름 나간걸 눈치챈 건 아니었고, 집에 얌전히 귀가해서 토했던 거라 다행이었다. 새벽까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릴리즈를 기다리던 어두운 복도도 생각난다. 함께 일하는 게 버거워 벽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도 문제를 해결하면 뿌듯하기도 했다. 무척이나 고마웠고 미친 듯이 원망하기도 했다.
이 회사를 정말 좋아했다. 이 회사에는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를 따라왔는데, 입사 후 3개월 동안 후다닥 무언가를 만들 수 있었던 기회를 잊지는 못할 것이다. 선배와 함께 새벽 한 시에 불을 끄고 가면서도 뿌듯했었다. 짜증 나게 피곤했지만. 솔직히 내가 맡은 일이 워낙 어려웠기에 "마냥 즐겁다"라고 말할 순 없었지만. 어떤 의사 결정이 있을 때 최대한 정보를 공유받으려 노력하는 점을 좋아했다. 함께 샌프란에 가기도 했었다. 다양한 기업들을 보고 만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지금도, 누구보다도 빠르게 잘 만들 능력자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사적으로도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안 주고 안 받기"원칙을 고수하던 내게 누군가를 챙기고 챙김 받는 감정-상반기 회고 때도 이야기했던-을 알려준 사람들이 있는 곳. 그 따뜻함을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보고 싶다. 위에 느낀 바에 애정 한 스쿱 담아 "참 이상한 회사야"라고 했었는데.
이 회사에 일하는 내가 싫어지는 순간이 많았다. 1화에서 언급한 "바닷물 먹고 눈물 콧물 짠" 순간이 이것이기도 했다. 내가 일하는 회사는 개발 도메인 지식이 아득히 높은 곳이다. 비유하자면, 운전면허가 없는 내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는 프로그램을 설계하게 된 느낌이랄까.(솔직히, 면허 없는데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만 만들라 해도 어려울 것 같은데!!!) 원체 초반부터 녹록지 않은 프로젝트를 했지만 프로젝트가 발전하면서 회의 때 나오는 기술적인 용어들은 무척 낯설었다. 혹자들이 이런 IT 지식 책을 추천할 텐데, 물론 이 책도 좋았지만 회사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그 이상이었다. SSL, Git, Mongo, 쿠버네티스. 단순히 개념만 알아서 될 일이 아니라 세밀한 동작이 모두 기획과 연관이 있는지라 마냥 모른 체하기엔 마음이 불편했다. 사실 모두 내겐 너무나 낯선 이름이었다. 이 문제로 회사 사람앞에서 술 먹고 펑펑 울어본 적도 있었다. 마지막 주에 내가 눈물을 보인 분이 내 앞에서 울어서, 나는 그분에게 저희 서로 비긴 셈이네요,라고 말해드렸다. 살면서 내가 딱히 똑똑하진 않지만 멍청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데 정말이지 멍청했다. 더군다나 회사의 여러 상황들이 바뀌면서 나는 팀원들 사이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고, 내가 맡은 직무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조차도 업무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맡은 일들을 이렇게 저렇게 해봤지만 방황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버티고 싶었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꿈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회사는 이랬다더라, 하고 불평불만을 단 사람이 되기 싫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내가 모든 것을 알지 못해도 필요하다면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지금 내가 너무 지치더라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보탬이 되고 싶었다. 잘할 수 있는 것의 70%만이어도 하고 싶었다.
게다가 회사에 내가 아직 기여하고 싶은 게 많았었다. 초반에 맡았지만 오랫동안 추진되지 못한 프로젝트가 이제야 계약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기존 서비스가 갖고 있던 한계-지나치게 복잡한 설정-를 극복할 수 있는 신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역할이 바뀌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이 회사와 함께 가고 싶었다. 그래서 바로 추석 직전까지도, 녹록지 않고 진짜 바쁜데, 잘 되었으면 좋겠고 진짜 기대가 많이 된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렇지만 추석이 끝나고, 나는 이 모든 것에 매듭을 짓고 퇴장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다른 성공담처럼 “이런 역경에도 저는 열심히 버텨서 파도 위에 잘 서게 되었고, 뛰어난 팀원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끝이 나면 참 좋았을 텐데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회사를 나가게 되었고, 두고 나가는 것에 대한 매듭을 지어야 했다. 일에 대해서는 매듭을 (대충) 짓고 나왔지만 감정들은 아직 버려지지 않는다.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미련도, 애틋함과 버거움도. 회사 상황으로 인해 내가 겪었던 마음속의 상처들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안쓰러움도. 춤을 추다가 끊긴 꼭두각시 인형이 되어버린 감정도. 이것들은 갑자기 뚝, 하고 끊긴 것들을 정리해야 하는 것은 나의 몫이 되었다.
그중 무엇을 중심으로 내 과거를 이야기로 엮을지는 내 선택이다. 내 이야기에 대한 편집권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
마지막 출근을 했던 주에 어떻게든 좋은 생각을 하려 노력했다. 위에 내가 서술한 모든 감정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곳에 있었던 시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싶어서. 가급적 좋았던 기억들을 가져가고, 힘들었던 기억들은 잘 봉합해두고 싶었다. 그래서 퇴사 짤 날리는 대신 최선을 다해 정중하게 이별하고, 일의 맥락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노력하고 싶었다. 비록 저 내용을 뉴스레터로 보낸 이후 정작 중요한 정보는 깜빡했다는 걸 알고 이불 킥을 했지만.(거래처 담당자가 내게만 문자로 보냈던 파일 비밀번호.....)
이제는 넘어진 이후의 내가 깨달은 것들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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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사진 출처: 글과 동일한 제목, 뮤지의 "떠나보낼 수 없어" 앨범 재킷. 노래도 추천합니다. 연애와 이별노래인데 참 지금 심정과 비슷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