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선명하다. 대학원 시절 식당에 갔을 때 7천 원짜리 밥값이 참 아까웠던 기억. 나는 그래서 주로 학생식당을 선호했었다. 바깥보다 밥값이 4천 원으로 반절 가까이 싸니까. 이렇게 밥 먹는데 고민이 심해진 나는, 직장을 등지고 온 나는 그만큼의 기회비용을 벌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많았으니까. 오히려 그 생각이 나를 잡아먹어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저 백반집 가는 걸 망설였던 기억이 너무나 인상 깊었던지, 나는 일하지 않는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수입이 끊긴다는 것은 꽤나 큰 공포였다. 절대로, 절대로 한 달 수입이 한 달의 지출보다 많아서는 안 되었다. 그러니 지출을 줄여야 한다. 일 못할 때 7천 원짜리 백반은 나한테 사치다. 어른이라면 밥값을 해야지. 어른이라면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하는 거야. 밥을 벌어먹지 못하는 사람이 삶을 누릴 자격도 없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러면 안 돼. 어느 누가 뭐래도, 나 스스로 용서가 안 돼.
그래서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혼자 버는 아내" 편에서 말한 기혼 여성 가장으로서 생계에 대한 책임감, 커리어 단절에 대한 공포감 외에도. 사실 지금 말하는 "밥값 해야지"라는 공포감이 훨씬 오래된 것이었다. 벌써 10년째 같이 하고 있는 감정이니까. 오래전부터 부모님과 (암묵적으로) 약속했었다. 대학 이후의 삶은 스스로 책임지기로. 부모님께 나는 참 받은 것이 많았고, 이제 나는 더 이상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나는 스물셋에 대학을 졸업하고 스물넷에 취업을 했었다. 나이로 치면 칼 졸업(나는 학교를 빨리 들어갔었다) 일단은 취업은 해야겠고, IT 업계로 가보자, 는 마음을 먹었었다. 어쩌면 취업 막차를 탄지도 몰랐다. 내가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12년도 후반, 나는 가까스로 최종 면접 두 개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후배들은 급격히 안 좋은 상황을 겪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싶어서 간 대학원에서도 나는 최대한 공백기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그 이후 다시 시도했던 재취업 시장도 난도가 높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웬만한 상황에서도 버티는 편이었다. 나를 챙기려고 넘어지는 것보다, 나를 깎아 적응하는 게 차라리 쉬웠다. 절대로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자리를 찾지 않았다. 지금 회사에서 상황을 타개하려고 하거나 다음 행선지를 정하거나. 그 과정에서 힘든 일도 있었고, 버티는 내 모습이 깔끔하거나 멋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도 아래 나오는 퇴사 짤처럼 다 벗어던지면 좋았으리라 생각하지만, 그 통쾌함이 나의 생계를 책임져 주진 않으니까.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종종 내게 "저라면 그런 상황에서는 나갔을 수도 있어요",라고 여러 번 말해준 적이 있었다. 한 번은 팀을 갑자기 옮기게 되었고, 한 번은 다 만들어진 프로젝트가 기약없이 홀드 되었으니까. 하지만 어떻게든 아무런 대책 없이 나가고 싶지 않았다.
퇴사 짤 보내는 통쾌함이 다는 아니니까.
이런저런 선택을 할 때마다 항상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어디서 돈은 계속 벌고 있는 것 같은데 밥그릇이 불안정한 딸. 아버지는 내가 다니는 회사를 따라잡으려고 여간 애를 쓰시는 게 아니다. 추석 때 겨우 지금 다니는 회사 브리핑을 해드렸는데 다시 리셋시켜야 한다니. 어머니는 내내 내 걱정을 하신다. 사실 좀만 더 있으면 공무원 준비를 넌지시 권하실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번에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그때 남편에게 위로받은 말이 있었다. "그래도 너를 가장 편들어주실 분"이라고.
설령, 부모님이 내게 실망할 수 있다고 해도 어른이니까 "부모님이 나에게 실망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정말로 지금의 내가 부모님이 나를 키우시면서 상상한 모습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부모님이 겪으신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무척 다르니까. 그렇더라도 이제 자립해서 한 사람의 가장이 된 지금은,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있으니까. 앞서 생각했던 것처럼 "어른이니까 밥벌이를 계속 해야겠"지만, 지금 내 모습이 내가 상상한 어른보다 비루하더라도, 그 모습이 누군가에게 실망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받아들여야 할 때지 싶다. 심지어는, 20대 초반의 나 자신까지 포함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