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소얀 Oct 28. 2020

혼자 버는 아내가 되어버려서

내가 넘어질 수 없었던 이유, 첫 번째

내가 먹여 살릴게, 넌 글을 꼭 쓸 수 있을 거야.

결혼 직전, 남편은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통보받고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남편에게 교통사고까지 났었다. (살아만 있으면 여기가 지중해, 편에 쓴 것처럼 나는 이 사태를 겪으면서 남편이 살아있어 준 데 감사했었다. 정말이지 더 크게 다치지 않은게 어디인가 싶어져서)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다시 취업을 하면 너를 먹여 살릴 수 있을 테니 글을 쓰라고. 나는 조직에서 일하고 돈을 벌고 싶어. 너는 확실한 스토리를 쓸 수 있는 사람이니까 나는 기다릴게. 대학원을 다닐 동안 네가 나를 도와준 만큼, 나도 너를 도와주겠다고.


그래서 결혼 이후부터 이번 실직을 겪기까지, 쭉 내 정체성은 "혼자 버는 아내"였다. 언젠가 절약/재테크 관련 카페에 가입할 때 썼던 아이디인데, 아마도 쭉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혼자 버는 아내입니다. 그래도 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래오래 계속 일하고 싶어요.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근데 왜 인터넷에 혼자 버는 아내를 치면 청소년 유해 검색 결과가 나오는 걸까.....


그땐 몰랐다. 그의 데뷔가 생각보다 오래 걸리리란 것을. 그는 회사생활 마지막에 허리가 꽤나 아팠는데 이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좋다는 운동을 해 보아도, 여러 병원을 전전해도 증상을 찾을 수 없었다. 실비가 있었기에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병원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을 거다. 결혼 1년 차 때는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그는 말라갔다. 끼니를 잘 챙겨 먹지 못하고, 누워있을 수조차 없이 아파하는 모습에 속이 많이 상했다. 주변에서 "요즘 남편은 뭐해?"라는 질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혹은, 그런 질문을 받을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픈 것은 그의 탓이 아닌데, 이런저런 구박을 자주 했었다. 낫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이건 사기 결혼이지 않냐고. 투자금 언제 회수하냐는 농담도 섞어서. 결혼한 지 3년이 지나서야 그는 나아졌고 이제야 본격적인 글쓰기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땐 몰랐다. 나도 직업적으로 계속 방황하게 되리라는 것을. 2017년 이후 나는 직장을 세 번 옮겼다. 고용보험 상실 항목이 빼곡히 메워진 걸 보면서 한숨 나온 적도 있다. "정말로 그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일했던 것이 맞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다. (뭔가 내가 자주 옮기는 것과 더불어 지나가던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후려치는 소리가....) 직장을 옮길 때마다 나름의 확실한 이유는 있다. "손에 잡히는 확실한 서비스를 하고 싶었다.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와 같이 일하고 싶었다." 등등. 결국, 이번 회사에서는 예기치 않게 이런 선택을 하게 되어버렸지만. 그렇다 해도, 결과적으로 나는 여러 직장을 오가는 사람이 되었고, 불안은 가중되었다. 내가 안정된 직장에 있었더라면, 내가 제대로 번다면 덜 불안해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마음고생이 심할 줄 알았다면, 나는 그리 선뜻 "널 먹여 살릴게!"라고 외치지 않았을 것이다.


면접 때 "결혼하셨다고..."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나는 그래서 밝게 대답했다. 전 환갑까지 일할 거예요. 제가 외벌이거든요. 남편이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고 싶기도 하고, 계속 일하고 싶어요. 그리고 오래오래 잘 일하고 싶어요.


그래서였을까? 이번 실직 사태 때 내가 외벌이라는 부분은 회사에서 가장 나를 걱정했던 부분이었고, (1화에서 말했던 데로) 외벌이 가장인 나는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직접적인 수입이 없다는 것은 내게 굉장히 큰 공포이자 책임감을 지우는 일이었다. 한 명도 아니고, 외벌이 2인 가구이니까.


게다가, 나에겐 혼자 버는 "아내"로서 공백기를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기혼 여성으로서 공백기를 갖는 게 두려워졌다. 인터뷰 때 내가 이 말 저말 주워 삼긴 이유는, "나는 열심히 일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을 절박하게 어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40대 이상의 기혼 여성이 조직에 오래 남은 사례를 본 적이 없었다. 첫 직장은 여성이 다니기 좋은 대기업이라고 했지만 내겐 와 닿지 않았다. 전 세계를 누비던 유능한 선배가 직군을 바꾸어 스텝 업무를 하고 계신 걸 보았고, TF 조직에서 가장 유능하셨던(속으로 존경했던) 거래처 차장님이 육아휴직을 끝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있었다.


재취업한 조직은 IT 스타트업들이었고, 스타트업에서는 성별과 결혼 유무를 묻지 않는다고 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조직에서 기혼 여자 선배를 볼 일이 더더욱 없었다. 직원들의 연령대가 어린 편이었고, 30대 초반인 내가 처음으로 결혼한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결혼을 하고도, 여러 회사를 옮기면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추구하는 사람을 상상하기 정말 힘들었다. 그런 두려움이 없으려면, 소위 말하는 [여성이 하기 좋은 직업]을 선택해야 했을까? 아직까진 IT 분야를 떠나고 싶지 않은 나로선, 어떻게든 내가 헤쳐나가야 할 길이리라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경력이 끊기면, 쉽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리라는 절박함이 내 안에 있었다. 그러므로 공백기 자체가 내게 큰 두려움이었다. 내 공백기가 길어지면,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 다들 곧 엄마가 될 사람으로 나를 생각할까 봐. 그래서 나는 원래부터 아이를 갖고 싶지 않은 딩크라 해도, 내가 아무리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 주장해도 그 주장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봐. 다시 사회에 돌아오지 못할까 봐. 내가 아마도 일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계속 찾아 헤매는 이유는, 내 절박함을 덜어내고 싶어서일지도 몰랐다.


요즘 들어는 이런 분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제현주 님의 책에서, 내가 가입한 IT 여성 커뮤니티들에서, 만난 적 없지만 내적 친분을 느끼는 여러 SNS 이웃분들에게서. 비록 나와 같은 조직에 있지 않지만, 기혼 여성임에도 오래오래 일하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안심하곤 한다. 어디엔가 그런 분들이 계속 일하고 고민하겠지, 라는 생각 그 자체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몇 번 했을 때 딱히 공감받은 기억은 없다. 어쩌면 내가 너무 크게 불안함을 느껴 그동안 열심히 일하는 기혼 여성들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생각보다 공백기가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가능하면 오래오래 조직 안에서 일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 그렇게 십 년쯤 자리하다 보면 내가 상상하기 어려워했던 40대 기혼 여성으로 조직에 남아서, 내 뒤를 따라올 사람들의 두려움을 조금은 덜어주고 싶으니까.


+배경 사진 출처:  Josh Appele from Unsplash


덧붙이자면.

오랫동안 해왔던 생각이지만 정리해서 말해본 적이 없는 내용입니다. 그런지라 제가 하는 생각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사정과 고민 끝에 한 선택을 한 누군가를 비난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결혼을 했다고, 하지 않았다고. 육아를 한다고, 육아를 하지 않는다고. 외벌이를 선택했다고, 맞벌이를 한다고 말이죠.

또 누군가를 위한 희생이 개념인,으로 포장되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뒤에 서술하겠지만, 저도 도움받은 게 있으니 퉁치는 것(업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전 02화 나도, 넘어지고 싶어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넘어진 김에 엎어진 김에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