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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Aug 17. 2017

살아있는 여기가 지중해

먼지같게 느껴질 수 있을 일상을 어떻게든 밀도있게 만들기

"봐봐, 여기가 지중해야"

회사 입사하고 통근시간이 길어졌다.

틈틈히 책을 읽으며 출근하는 시간이라 참 좋았다.
그 중 첫 달에 읽었던 책 중에서, 나왔던 좋은 구절이다.


몇 년을 꿈꿔온 지중해 여행을 하려고 퇴사를 앞둔 작가,
그러다 문득 일상이 어떻게든 살아진다고 느꼈다.
그런 그녀에게 그녀의 팀장님이 말하더라.

"지금 행복하지 않은 자는 지중해를 누릴 수 없다"는 구절을 곁들여,
"민철아, 바로 여기가 지중해야*"라고.

그 구절을 읽던 순간을 기억해본다.

아, 여기가 지중해지. 라고.
주어진 일을 속도있게 해내고, 더 잘 하려고 노력하고.
회사가 끝나면 나를 차곡차곡 다지고 싶어 운동을 다니고,
그리고 통근시간 동안 책을 반 권씩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감사했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좋았고, 일의 기본과 생활의 기본을, 다 갖춰서 좋았었다.

첫 회사에서는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날들도 있었고,
퇴근 이후 돈 쓰는 재미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지만 안 되었다.
대학원에서는 앞뒤 안가리고 달려들다 제풀에 쓰러지기도 했었다.

그런지라 열심히 일하는 삶과, 재충전이 가능한 생활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했다.
(그 이후 내가 겪은 '일에 대한'고통은 다음 편에서.
즐거운데 만만찮다. 히히.)


살아만 있으면 돼

다음 달은 한편 힘들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결혼을 두 달 앞두고 남자친구가 접촉사고로 입원한 일 때문이었다.
차곡차곡 준비하던 일정들을 한 달 가까이 멈췄었다. 사진 촬영이라던가, 집, 혼수 구경하기 등등.
그래도 더 크게 사고가 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내 곁에 있어주는게 너무 기뻐서,
결혼 준비 중 발생할 다른 트러블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문병 가는 날 되뇌었던 말이었다.
"살아만 있으면 돼."
지금 어렵더라도 곁에 있으면 괜찮아.
완벽하게 해내지 않아도 될거야.

아니 식 안 해도 돼.
대신 버틸 수 있고 어떻게든 해내려 노력할 수 있어.
어떻게든 살아만 있으면.


그리고 지금 하루에 점수를 매긴다면?


입사 세 달 째, 결혼 한 달 전.
하루하루 정신없이 흘려보내지만, 아쉽진 않다.
살아만 있으면 되지 않는가?
이 가운데서 나는 해상도를 어떻게든 높이려 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 하루는,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에 딱 정곡을 찔려 바보가 된 기분도 들었다.
어제 야근도 했는데 결국 일을 마치지 못했다.
집을 구하러다니는 과정에서 난항을 겪었다는 비보를 전해들었다.
드레스 예쁘게 입어야 하는데 여전히 식욕을 조절하지 못했다.

뒤집어보면,
일을 하기도 했다.
좋은 질문을 받았고 거기에 대해 열심히 답을 찾으려 했다.
며칠 동안 생각한 결과물이 70%정도 정리가 되었다.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수줍게 축하받기도 했다.
그 가운데 행복하게, 사람들과 한입 디저트를 나눠먹었다.

회사에서는 "회고회의"를 한다.
한 주간 했던 일, 잘 했던 점 아쉬웠던 점, 그리고 총점.
스스로 내 하루를 돌이켜보면 나는 몇 점일까.

그 점수가 결국 나 자신이 느끼기에 달려있다면,
어떻게든 좋은 점을 보기 위해 해상도를 높이려 한다.
그 해상도 높은 순간과, 감정을 생각해본다.

그러면 오늘 내가 보낸 하루가 더이상 "먼지같은" 평범한 일상이 아니게 느껴진다.
첫 지중해 여행에서 받은 프로포즈날 만큼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다른 삶과 바꾸고싶지 않다.

그렇노라고, 오늘 하루에 대해 기도를 하듯 글을 쓰게 된다.

제목 일부와 인용한 책의 에피소드는 김민철 작가의 모든 여행의 기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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