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끝나고 회사의 상황이 급작스럽게 어려워졌고, 내가 제안받은 옵션은 두 가지였다. 무급휴직과 실업급여를 챙겨 받는 퇴직(일명, 권고사직). 나는 그중 후자를 택했다. 나는 먹여 살려야 할 배우자가 있으니까. 망연자실한 마음이 많이 들었고, 참 많이 울었고, 나는 차라리 넘어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물살 위를 버텨오다, 이제는 그냥 버티지 않고 넘어져도 된다고 누군가 말해준 것 같아서.
파도를 싫어해서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서핑 영상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파도를 향해 헤엄쳐가고, 멋지게 파도를 가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영상을 반복해서 보면서 알게 된 것은 사실 많은 연습이 필요하고, 만 번을 넘어져야 겨우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운동 신경이 매우 둔해서, 땅바닥에서도 한 발로 서는 게 힘든데 흔들리는 파도 위를 딛고 서려면 얼마나 단단해져야 하는 것이었을까?
그리고 서핑을 하려면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것도 그저 신기하게 느껴졌었다.
회사에 있던 마지막 세 달은 계속 거센 물살에 휩쓸리는 기분이었다. 제자리를 유지하기만 하면 다행인. 방향과 높낮이가 이리저리 계속 바뀌는 커다란 파도. 다양하게 바뀌는 역할과 상황을 계속 따라잡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들과 달리 나는 서기는커녕 계속 구르며 바닷물을 먹느라 인상을 쓰고 있는 꼴찌 서퍼다. 일 년을 꼬박꼬박 해봐도 안 느는 꼴찌 학생.
그동안 바닷물을 먹은 것처럼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바닷물을 먹으면 눈물 콧물 흘린다는데 사람들 앞에서 펑펑 울어본 적도 있었고 남들은 일을 하면서 강점과 좋아하는 것을 안다고 했는데, 나는 "싫어하지 않는 것"과 "정말로, 도저히 못하겠는 것"을 안 시간이기도 했다. 나의 한계도 존재하고, 열심히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도 느끼기도 했다. 살면서 무언가를 읽고 쓰는 게 좋았는데, 관련된 주제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래서 "다음 주까지만 나오는 걸로 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을 비유하자면, 넘어져있어도 된다는 것처럼 들렸다. 파도로 비유해볼까. 겨우 마지막 파도가 크게 덮쳤고, 파도에서 미끄러졌고, 이제 물을 잔뜩 먹은 채로 서핑보드를 붙들고 망망대해에 앉아있다. 마지막 힘을 풀자, 차라리 다시 바다는 잔잔해졌다. 새로운 파도가 오는 먼바다로 헤엄칠지, 아예 뭍으로 가 몸을 말릴지는 모르겠다. 당분간은, 그저 치는 파도를 바라보며 멍하니 지켜보려 한다. 그 속에서 남겨진 사람들이 힘들지 않을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그동안 나는 왜 버티려고 했을까? 어떤 감정이 나를 괴롭히려고 한 것일까? 사람들은, 왜 옆에서 나를 보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라고 했을까?
엎어진 김에, 넘어진 김에 나는 이 실마리들을 풀어나가보려 한다. 바쁘게 돈을 벌고 취업을 하느라, 외면했던 3년 동안의 시간도. 누군가에게 술자리 푸념처럼 지나가듯 말하기도 했고 누군가에겐 말할 수조차 없어 끙끙 앓았던 생각들을. 그러다 보면, 다시 한번 머릿속에 하고 싶은 일이 피어오르지 않을까? 다시 한번 파도를 올라탈 자신이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