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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Oct 28. 2020

일상을 지키기 위해

실직 전, 하루를 소중히 하려던 노력들

일을 그만두기 전, 지친 마음을 지키기 위해 일상을 지키고 싶었다. 미라클 모닝을 한다고 4시 반에 일어나는 것도, 명상을 꼬박꼬박 하는 엄청난 일은 절대 지킬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하루하루 나에게 기운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자꾸만 과거를 곱씹는 나를 붙들어 오늘 "하루"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에 하나씩만 나에게 좋은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좋아하던 만화인 후르츠 바스켓에서 "어마어마한 빨래 더미에 얽혀서 넘어진 느낌이 들 때는 주변에 있는 빨래들부터 해결하라"는 비슷한 말을 했으니까. 아니, 설령 더 좋아지지 않더라도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하니 말이다.


그래서 진짜 딱, 하루에 하나라도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 예컨대 아침을 먹기 전 스트레칭을 하려고 노력한다. 10분 동안 하늘을 보며 팟캐스트를 듣다가, 하루에 다섯 쪽씩만 책을 읽을 수 있게 7분 정도 잠시 책을 들여다본다. 지하철이 한강을 지날 때면 꼭 눈을 맞추려고 한다. 가끔 내 앞에 아무도 앉지 않으면 한강을 붕 떠가는 특급열차를 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날씨가 맑으니 조금 더 걸어갈 수 있는 길을 걸어간다.


어떤 날은 부러 걸어 노을을 보러 갔다. 유달리 하늘이 맑고 예뻐서 한강의 다리가 평소보다 세 배는 가까운 것처럼 보였다. 같은 길이면 조금이라도 더 걸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아무리 퇴근이 늦어도 열한 시 반까지 지하철 역으로 갈 수 있다면, 택시 대신 지하철 막차를 잡아타려고 했다. 자정의 공기도, 아침의 공기도 더 자주 마시기 위해 노력했다. 8월과 9월은 구름이 정말 예뻤고, 나는 "구름구름하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래서 자주 걷고, 하늘을 보고, 높이서 사진을 찍고 감탄했다. 조금씩 돌아갈 수 있는 길을 가는 것, 아무리 퇴근이 늦어도 열한 시 반까지 지하철 역으로 갈 수 있다면, 택시 대신 지하철 막차를 잡아타는 것. 자정의 공기도, 아침의 공기도 더 자주 마시기 위해 노력하는 것.


출근길마다 일부러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솔직히, 이 모든 걸 다 하고 산 건 아니었다. 사실 시간이 부족했다. 일몰 한 시간 전에 잠시 나가 한강 노을을 보겠단 다짐은, 하루 만에 무색해졌다. 여유롭게 걸어간 출근길보다, 맘속에 정한 출근시간을 어기지 않고 싶어서 달려간 적이 더 많았다. 아침만 먹고 스트레칭을 연달아 이틀을 빼먹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일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정확히는 일에 대한 무력감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나는 하나씩 알약을 먹듯 나에게 하나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견뎌갔다. 나의 자원을 깎아먹거나, 돈을 들이지 않고도, 무엇인가를 지나치게 많이 먹지 않고도 나를 돌볼 수 있도록.


+배경은, 회사 사무실에서 직접 찍었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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