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얀 Oct 28. 2020

천천히 일상을 되돌리기

실직 후, 아픈 몸을 추스르기 위한 노력

두 달 동안은 숨만 쉬고 놀기만 해도 괜찮을까?
응, 아마 괜찮을 거야.

첫 주에 마구 채용공고를 뒤지다가 턱, 숨이 막힌 순간 남편에게 물었을 때, 남편이 내게 해 준 말이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딜지 의아하기도 하고,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채용공고를 보다 보니, 오히려 더 초조해졌다.

그래서 일을 그만둔 지 2주 차로 접어든 지금, 아직 구직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다. 대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잘 쓰려고 노력 중이다. 요리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려고 하면서.


사실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놨지만, 아픈 데는 장사가 없었다. 1-2분에 한 번씩 귀와 눈이 따끔거리고 입에 포진이 올라왔었다. 여행도 운동도 부질없어졌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과음을 했던 탓인지. 그럴 땐 집에서 쉬었다.  병원에서는 약 먹고 푹 쉬면 나을 거라 했지만, 그렇게 아프고 나니 기운을 차리는 것이 정말 소중한 것임을 느꼈다. 그렇게 아프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넷플릭스는커녕 책 한 장조차 펼 기운이 없었으니. 그저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유튜브와 브라우저를 오갈 수밖에 없었다.


아픈 게 조금 나아지자 헛헛한 마음이 나를 채웠었다. 대뜸 할머니가 보고 싶어 진다. 집 김밥이, 할머니가 해주셨던 만두가, 이모가 해줬던 피자처럼 추억이 담긴 음식이 먹고 싶다. 핑 눈물이 돌게 된다. 그래서인지, 아파서 잠을 설치는 와중에도 요리들을 해 먹었다. 일요일에는 토마토 바질 페스토 파스타, 월요일엔 토마토 카레, 화요일에는 대파 듬뿍 넣은 버섯 칼국수(사실 다 레트로트 써서 만들었다...) 나는 집요할 정도로 집에 있는 대파와 양파를 썰고 당근 껍질을 벗기고 상추와 토마토를 한 소쿠리 씻어둔다. 그렇게 집에 있는 채소들을 다 없애버릴 것처럼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하고, 빨래를 걸고, 또 요리를 하는 하루를 반복했다. 때때로 서랍을 쏟아부어 물건들을 반쯤 골라 버렸다. 그렇게 조금 기운을 차렸을 때, 나는 집안을 휘젓고 다녔다.


많이 호전되었을 때는 틈나는 대로 나가 걸었다. 키가 큰 아름드리나무와 물가가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반포대교 옆 잠원 한강공원에서는 강을 볼 수 있었고, 억새가 한가득이었다. 서울숲에는 키가 높은 나무들이 있고 언덕 끝을 따라가다 보면 성수대교를 마주할 수 있었다. 용산가족공원에는 영물처럼 보이는 소나무와 큰 연못이 있었다. 아직 끝내주는 여행은 못 갔지만, 날이 더 추워지기 전까지 구름과 나무를 찾아 걸어 다닐 것 같다.

오늘 다녀온 용산가족공원. 인파가 없어 매우 조용했었다.


그렇게 기운을 차리고 밀린 글을 써보고 있다. 글을 쭉 쓰고 있는 오늘은 이렇게 보냈다. 10시-11시에 둘이 같이 점심을 먹는다. 글을 쓰다가 날씨가 좋아 세 시간 정도 나가서 햇빛을 쬐고 왔다. 다시 집에 돌아와 저녁을 차려 먹었다. 계란을 얹은 상추 비빔밥, 대파를 죽어라 넣은 쇠고기 뭇국, 닭꼬치 등등을 부려놓고 먹었다. 자주 걷는다. 다니지 못했던 숲을 찾아, 나무를 찾아다니고 있다. 주말을 피해 산을, 한강을 하나씩 가고 있다. 사진첩에 넘치게 구름을 담고 있다.


앞서 남편이 두 달은 놀아도 된다고 했지만, 다시 마음이 돌아오도록 노력하고 있다. 내가 더 괜찮아지고, 빨리 나아질 수 있도록.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 북도 그 노력의 일환이다.

이전 07화 일상을 지키기 위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