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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Oct 29. 2020

여정을 되짚어보기

내가 가진 경험들을 연결해보려는 시도

지난 3년 반 동안 IT 회사에서 개발/디자이너/마케터가 아닌 다른 직군으로 일했다. 다양한 조직에서 다양한 일들을 겪었고, 그러면서 든 생각은 일할 때 어떤 것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가, 가 업무의 태도를 결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이 즐거운 일일 수는 없다.


하나의 프로젝트에는 늘 여러 태스크가 포함되고, 프로젝트 차원에서는 내가 원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 프로젝트 안의 모든 태스크가 즐거울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프로젝트일수록 그 안에는 반드시 괴롭고 어려운 태스크가 더 많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제현주, 일하는 마음


어쩌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 이면에는 소소한 일들의 반복일 수 있다. 어제는 전화기를 붙들고 거래처와 씨름하다가, 오늘은 몇십 장의 문서를 만들고, 내일은 프로그램을 일일이 클릭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개발/디자이너/마케터가 아니라면 대부분 "일이 되게 하기 위한"일들을 찾아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다종 다양한 일들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에 묻히다 보면 우리는 내가 무엇을 겪었는지 설명하기 어려워질 때가 있다. 뭔가 뒤섞인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빴던 것 같은데. 그동안 어떤 도메인에서, 조직의 레벨에서 무엇을 경험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동안 나는 나를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이런 직군에 대한 명칭 논란은 단골 떡밥이지만(못해도 5년 전부터 본 것 같다.) 더군다나 마지막에 내가 있었던 회사는 특이한 분야이기 때문에, 내가 무슨 일을 해왔고 무엇을 잘하는 사람이었는지 언어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실, 이렇게 언어화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일에서 벗어난 "지금에서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정확히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수치를 적었는지 기록을 뒤져봐야겠지만. 힘들었던 일들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어야 아마 일에서 벗어나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은 하루하루 걸음을 옮기기 바빠서 어지러운 발자국이었지만, 먼 곳을 바라보면 내가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보일 테니까.


지금까지 내가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재취업한 3년 반 세 개의 스타트업에서 일했다. 데이터 B2B 회사들, 그리고 잠깐 O2O 회사에 있었다.

-그동안 배웠던 것은 1) 완벽하게 정리하지 못하더라도, 우선 요점만 빠르게 공유하고 피드백받아 보완하는 것이 좋다는 점 2) 기술에 대해 모두 다 이해하지 않아도 일할 수 있다, 는 점이었다. 물론 나한테는 두 번째 부분이 가장 어려웠지만. 

-화면을 많이 그리진 않았다. 오히려 디자이너와 구두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용자의 화면에 보이지 않는 백엔드(내부) 로직을 살펴보거나, 엑셀과 문서로 정리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했었다. 구체적으로는, 이런저런 데이터들을 보는 일을 했었다. 본격적으로 데이터 분석을 한 것은 아니지만, 회사 내/외부의 API들을 보고 데이터를 캐내거나, 회사 내부의 DB를 뒤질 일들이 많았다. 프로그램이 동작하면서 데이터가 제대로 쌓이는지 살펴보곤 했었다.

-다양한 법률 검토를 할 일들이 있었다. 신사업의 법령 규제 여부를 살펴보고 이를 법률회사에 질의하거나, 약관/개인정보보호방침을 살펴보거나, 프로젝트 중 법령과 정책을 비교하고 기능요건과의 정합성을 맞추는 일들이 있었다.

-일반 사용자가 아닌 기업사용자/특수 도메인에서 사용하는 제품을 만들었다. B2B와 onpremise/SaaS를 곁다리에서 겪어보았다. 그러다 보니 가격정책/권한 설계 등을 살펴볼 일들이 있었다.

-낯설긴 하지만, 이 일들이 흥미로웠다.


아마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닐 것이다. 왕도는 없다. 나는 끝없이 이전의 메모를 뒤져가면서, 나의 경험을 꿸 나의 실마리를 꿰고 있을 것 같다. 내가 해왔던 일을 계속 기록하면서 일상을 챙길 것 같다. 이 외의 구체적인 일화들을 복기하면서. 너무 오래 끌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

배경 출처: Kevin Bluer from Unsplash

보통 IT에서는 이러한 솔루션들을 제품/프로덕트라고 부르는 추세인데, 우선은 일반론에 입각해 이야기하기 위해 대신 프로젝트라고 서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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