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얀 Oct 28. 2020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일하는 나를 되찾기 위한 여정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난 IT 분야에 있으면서 빠른 변화를 체감하고 따라잡는데 지쳤다. 사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기획자로서, 업무에 대한 "기민함"을 놓아버리려 하는 것은 큰 위기였다. 그리고 이 감정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몇 개월 동안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시도한 이런저런 것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우선 수행하는 일에 대해 전부 마감기한을 걸었었다. 나는 마감형 인간이니까, 하기 싫은 일인 경우 더더욱, 돈을 걸기로 했다. 그렇다, 나는 마감형 인간이고 의지를 돈으로 사는 도박형 인간.


다음주 캘린더 일부를 잘라왔다. 캘린더는 마감 리마인드용.

우선 계속 뉴스레터를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예 일과는 상관없는 것을 계속했던 것이다. 나는 3월부터 문장 줍기, 라는 뉴스레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매주 일요일 밤에 주제별로 고른 문장을 몇 개 보내는데, 내 생각을 짧게 붙인다는 콘셉트이었다. 33편의 편지를 쓰면서, 나는 여기서 많이 위로받았다. 문장을 고르고 단어를 만지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평소 하는 내가 쓰지 못하는 마음 근육을 쓸 수 있었다. 반년이 넘게 나는 꾸준히 뉴스레터를 썼고, 또 뉴스레터를 쓰는 내 마음에 대해 브런치에 계속 남겼었다. 진짜 힘들게 마감한 경우도 많았다. 쓰기 어려워 피하다가 마감 때문에 보낸 편지도 있었고, 과음한 날은 한 문단 쓸 때마다 토하면서 쓴 편지도 있었다. 그래도, 문장을 읽는 것을 꾸준히 좋아해 주는 독자님과, 자신의 문장을 소개한 것을 좋아해 주시는 작가분들이 계셨다. 나는 지칠 때마다, 일이 막막할 때마다 이 피드백들을 열어보곤 했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나의 글을 읽고 있다는 생각에 위로받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뉴스레터를 통해 자연스럽게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뉴스레터를 쓰는 만큼 읽는 것도 좋아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뉴스레터를 쓰는 분들과 만나 같은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이 브런치 북도 그분들과 함께 쓴 글에서 시작했던 것이었다. 뉴스레터를 통해 짧은 글을 꾸준히 썼지만, 한동안 브런치에 다른 글을 남길 수 없었다. 고민만 많은 내가 그럴듯하게 쓰는 글에 어떤 진정성이 있으려나, 싶어 져서 말이다. 그런데 이분들과 함께 에세이를 쓰면서, 나는 그동안 피해온 내 감정을 직면할 수 있게 되었다. 글 쓰는 "소얀"을 되찾았다.


이렇게 한동안 IT와 나를 한껏 멀리 떨어뜨려놓았다. 하지만 최소한의 관심은 유지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내가 참여하는 독서 모임 덕분에 최소한의 관심은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네 달째 온라인 독서모임을 참석하고 있는데, 정해진 참여 금액을 낸 뒤 인증을 하면 천 원씩 돌려받는 시스템이었다. 책의 종류를 막론하고 "계속 읽는데" 의의를 두는지라 나는 읽고 싶은 책들을 읽었고, 다른 분들이 제품/IT 책을 읽고 올려주시면 이 내용을 조금씩 읽어나갈 수 있었다. 한동안 IT 책은 읽기 싫었는데,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그냥 나 혼자 읽지 않고, 그분들과 함께 읽었던 이유가 사실 다른 분들의 "인증 내용"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천천히 내게 시간을 주자, 다시 IT에 대한 관심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요즘 좋은 서비스를 살펴보고 서로 공유하는 모임에 들어갔다(사진 속의 "힙서비"라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신박한 사용자 플로우를 인증하기도 하고, 비슷한 서비스들끼리 비교를 하기도 한다. 사실 의도했던 것보다 나는 자세히 인증을 하지 못하는데, 인증 내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서비스가 있구나, 싶어 진다.


이전에 썼던 포스팅처럼, 느슨한 모임이 나를 다시 일으켜주고 있었다.


+배경 사진 출처: 사진 줄리안 산타 아나 from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