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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Oct 28. 2020

다시 한번 바다로 갈 때까지

이 글이 나를 가볍게 해 주길

소얀님은 왜 글을 쓰세요?

글쓰기 모임에서 지난주에 이런 질문을 했었다. 글을 좋아하고 오랫동안 써온 사람들이, 글을 좀 더 잘 쓰고 싶어서 서로 간단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모임이었다.


그때는 "글을 쓰는 것은 업무와 분리된 소중한 나만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나는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에세이들에 흔히 달리는 감상은 "일기는 일기장에"다. 사람들이 이렇게 일기 같아 보이는 시시콜콜해 보이는 글들을 굳이 남기고, 사람들이 찾아 읽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공감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에세이를 쓰는 이유는 공감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글을 쓰더라도, 디테일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내 문제점을 털어놓고 싶지 않아, 반짝이는 남의 문장에 기대 나의 힘든 감정을 숨기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 모르게, 에둘러 말하곤 했다. 공감을 받고 싶어 쓰던 글에서 나는 더 이상 솔직해지지 못했다. 사실, 이건 남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와 비슷했다.


사실 내 이야기가 재미없을까 싶어 내 이야기를 하기 싫었다. 여전히 나는 에세이스트가 매력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해야 재밌는 글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스펙터클한 스토리는 없는 사람이다. 퇴사에 사이다는 없고 고구마를 버티는 쪽에 가까웠고, 스타트업의 무시무시한 성장 스토리의 주인공도 실리콘 밸리의 슈퍼 워커도 아니다(그런 스토리는 EO 채널과 TVN 드라마 "스타트업"을 보시면 좋습니다). 대신 그저 주변에 있는 평범한 직장인 1이다. 아, 일을 더 잘하고 싶은데 고민이 많은 사람. 어쩌면 "내 이야기야"라기보단 "이건 나도 쓰겠다"는 반응이 튀어나올지 모르겠다.


또, 내 글에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무서웠다. 내 걱정은 나를 잡아먹을 정도로 크고 힘든 일이었는데, 써놓고 나면 하찮은 걸까 봐.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은데 내 고민은 하찮은 것으로 여겨질까 봐. 그래서 작은 일에도 징징거리는 사람처럼 느껴질까 봐 걱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정말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글을 읽고 파생될지 모르는 불이익들이 무서웠다.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이의 있소!"라며 문제 제기하면 어떡하지? 지금 내가 써둔 내용이 나중에 내 발목을 잡으면? 구직할 때 누가 혹시 이 브런치를 보고 태도가 별로군, 이렇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사실 모임 사람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주절거렸고, 다들 내 고민을 덜어주었다. 괜찮아요, 평범한 사람 에세이가 오히려 대세일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독자들은 고민들을 공감하고 싶을지도 몰라요. 괜찮아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리 글에 관심이 없어요. 이런 다정한 사람들.


그렇게 모임 사람들에게서 용기를 얻어서였을까? 나는 이번에 느낀 감정을 직면해보기로 했다. 솔직히 이런 글을 쓰는 일은 어렵다. 쓰는 내내, 스스로가 참 쪼잔하구나 느껴진다. 내가 3-5편의 "버텨야만 했던 이유"를 쓰면서, 이 감정이 이렇게까지 쪼잔한 일이었나 싶어 몇 번은 도망가고 싶었다. 게다가 일하면서 깨달은 것들은 아직 잘 정리가 안 되는데 어떻게 마무리를 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느낀 감정을 직면하지 않으면, 내가 일을 하면서 내가 어떤 가치를 중시하고 어떤 것을 잘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느꼈던 것을 마무리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에 이 감정들을 묻어둔다면, 내 글이 다시는 솔직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적당히 예쁘고, 적당히 읽기 좋은 문장만 쓰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동안의 문장줍기와 브런치의 다른 포스팅이 예쁜 자수가 놓인 손수건이라면 이건 어쩌면 눈물 콧물이 잔뜩 배인 구겨진 티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딘가 내가 느낀 이 감정을 공감해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번아웃에 지쳐, 실직에 괴로워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내 글을 읽으면 "아, 나도 힘들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다"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만약 이 감정들을 다 털어놓게 된다면, 나는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파도를 타러 가고 싶을 테니까.


+배경 사진 출처: Linus Nylund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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