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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Nov 26. 2019

새 책을 좋아하지만.



새책을 좋아하지만.


빳빳하고 구김이 없는 석유 냄새가 나는 새 책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간 헌책이 좋은 순간도 있더라고.


누군가를 향한 소중한 메시지로 두 사람의 관계를 추측하도 하고, 나도 그런 적이 있노라고 피식 웃게 되는 헌책이 좋은 순간도 있더라고.


운이 좋게 친필 사인이 든 헌책이 손에 쥐어질 때면 새책보다 더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면서 호들갑을 떨 순간을 허락하는 헌책이 좋은 순간도 있더라고.


예쁘게 말려보겠다고 가을의 잎사귀를 끼워두거나 비상금을 감춰두고 까맣게 잊은 먼지 쌓인 새책보다 말야. 나에게로 떠나는 추억여행의 재미만큼이나 누군가가 일궈놓은 역사를 몰래 들여다보는 기분도 꽤 재미지더라고.


너도. 그렇더라고.


괴로움도 슬픔도 없이 말간 얼굴로만 살아온 사람과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두꺼운 눈 아래 눌려 허우적거렸던 시절의 이야기, 너만 넘어졌다는 이야기, 믿었던 누군가가 너를 할퀸 이야기, 그래서 너덜너덜해져 더 이상 보잘것없다는 너도 말야.


나도 그런 적 있다고 맞장구치며 깔깔거리고, 너만 그런 거 아니라고 위로를 담은 너그러운 미소를 보내고 싶은 순간도 있더라고.


너만의 시그니처가 있는 네가 더 알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순간도 있더라고.


나는 말야.

새책보다 네가 더 좋은 순간도 많더라고.



친필사인이 든 책을 받았다. 온라인 중고서점으로부터. 심지어 내가 고르지도 않았는데. 이 얼마나 횡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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