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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Oct 31. 2019

갑자기 찾아온 주말부부



"다음 주부터 제주로 출근하게 됐어."


어느 목요일, 남편의 전화 한 통으로 우리의 인생은 완전 달라졌다. 급하게 비행기표를 구했고 당장 입을 옷가지 몇 개와 이불만 챙겨 들곤 아무 준비도 없이 제주로 날아가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나의 소망은 제주에서 사는 것이었다. 처음 찾았던 제주는 나에게 당혹감을 주었고, 두 번째 제주는 나에게 남편감을 주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계절마다 달라지는 제주에 반해 틈만 나면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끊곤 했다. 아이를 낳고는 잠시 뜸하긴 했지만, 아이가 조금 크고 나서는 여전히 제주를 좋아했다.


“제주에서 아이 키우면 참 좋겠다.”


그런 바람으로 남편이 제주사업소로 발령 나는 것을 소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로 제주로 가게 되었다. 지인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제주, 제주 하더니 정말 가네?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더니 진짜인가 보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한편으론 꿈같기도 했고,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이토록 갑작스러울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남편 회사는 공기업인데 모든 공기업의 본사가 지방으로 옮겨지면서 수도권에 남은 사업소가 몇 개 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수도권 희망자는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근무연한이 제한되기 시작했다. 정확한 규정은 모르겠지만 수도권에서 최장 10년까지만 근무할 수 있다고 들었다.  


남편은 당시 사업소에서 근 10년 가까이  근무했는데 약 1년 정도를 남기고 제주로 가게 되었다. 10년을 꽉 채우면 근무 희망지역과 관계없이 대부분 본사 발령이 나기 때문이다. 이전 전의 본사라면 너도나도 가고 싶겠지만 현재의 본사는 그야말로 오지여서 기피지역 중 최고이다. 따라서 그전에 뜨는 게 남편에게 유리하겠단 판단이 설 때쯤 제주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다행히 남편은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던 터라 오라는 곳이 많기는 했다.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홀몸이 아니기에 근무지의 위치는 아주 중요했다. 결혼 전부터 언젠가는 주말부부로 살아야 하는 숙명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이 가장 먼 땅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발령이 나기 전부터 제주에 대한 제안은 여러 차례 오고 갔었다. 물리적 거리가 어마어마한 곳이지만 우리 부부 모두 제주에 대한 선망이 있었기에 어차피 주말부부로 살 거라면 기왕이면 제주가 낫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몇 번 상황이 안 맞아 제주행이 물 건너갈 때도 있었는데, 이를테면 상사가 안 놓아준다든지 해서 못 가게 될 때면, 놓친 고기가 더 아쉬운 마음과 같이 제주에 대한 아쉬움 더 커져갔다.



남편은 처럼 갑자기, 이토록 먼 땅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예상했던 '주말부부 생활권' 중에서 가장 먼 거리에서 주말부부 생활을 시작했다.  


제주에 자리잡기까지 3개월간은 나의 남은 휴직을 탈탈 털어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익히 들어왔던 타지인에 대한 텃세라든가, 가족끼리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삶에 남편도 우리도 적응기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미래에 혹시라도 내 삶의 터전이 전혀 연고 없는 이 땅으로 옮겨와도 괜찮은지, 아이를 키우며 살기에 적합할지에 관해 알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3개월을 실험기간으로 두기로 했다. 멀쩡한 직장을 당장 그만두고 완전히 타지로 옮길 만큼의 용기는 없지만, 살아보면서 확신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주말부부 혹은 주말 가족. 때에 따라서는 월간 부부, 월간 가족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후에 대한 해답은 없었다.  


우리의 삶은 모포 위의 윷들처럼 그 자리에 그냥 던져졌다. 앞으로 일어날 운명은 어찌 될지 모르는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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