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발전의 원동력이었을꺼야
왼손 약지에 낀 반지가 어색하다. 살면서 처음으로 그 자리에 반지를 꼈다. 그저 반지 하나 끼웠을 뿐인데 책임감이 두툼해진 기분이다. 약속이란 개념이 반지란 매개체로, 이젠 눈으로 볼 수 있는 단어가 됐다.
오랜 기간 동안 만나면서도 우리는 커플링을 맞추자 한 적도, 하고 싶다 생각한 적도 거의 없었던 적 같다. 일상적으로 '누구나 하는 것을 나도 해야 한다' 라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나는 '기념일이 되면 커플링을 맞춰야해.' 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여겼다. 그녀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녀가 가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든다. 근 10년을 만나온 기간 동안 커플링 하나 가지지 못한게 미안하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그 시간 뒤에 가진 반지라 그런지 애틋함과 감사함이 더 큰 것 같다.
한 사람과의 인연을 약속한다는 것. 짧은 단어 몇 마디로 압축하긴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자리잡고 있는 고귀한 영역인 듯 하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개똥철학으로 누군가와 떠들었던 지난 날의 쑥스러운 대화들이 떠오른다. 약혼이라는 이름 만으로도 내 생각의 위치와 무게감이 달라지는 것인데, 하물며 결혼 이후의 나, 가정을 이룬 뒤에 먹여 살려야 할 자식이 생긴 뒤의 나를 감히 내가 어떻게 상상하고 평가할 수 있었을까? 아마 내 손가락에 이 반지가 껴지는 의식이 있기 전까지는 절대로 유연해질 수 없었을 것 같다.
목표 설정 이후의 전략, 전술 기획이 없었던 '부모님의 도움 없이 결혼하기'는 내가 내게 저지른 가장 큰 사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부모님이 내게 해주시는 재정적인 도움 없이 스스로 벌고 저축하여 (사업 안정을 이뤄내) 독립적인 결혼을 하고 싶다라고 생각은 했었으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가 있었으나 중구난방의 실행이었을 뿐이다. 재정적인 목표와 그에 맞는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무조건적으로 순간에 충실한 선택을 반복해왔던 20대의 나는, 30살 마지막을 앞둔 모은 돈이 거의 없는 빈털터리 꿈청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 반지는 내 인생의 가장 무책임한 목표로 설정해 놨던 그 장대한 서사시의 시작과 중심이 되어줄 행복한 잔소리가 될 것 같다. 지금 같은 효력이 있어준다면 나에겐 그 어떤 것보다 큰 선물이다. (역시 생각하는 건 언제나 이기적이다.) 하지만 이게 나인 걸 어떡하겠나. 인류의 발전이 결혼이라는 제도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까지 해보게 되는데... 먼훗날 내 가정을 생각해봐도 나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얏호;;)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아는 것은 해보지 않은 것과 해본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 그것을 지키고 아낀다는 것을 가슴으로 알아가는 시작점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