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 마누? 걔 아르헨티나에선 거의 마라도나급 아니냐? (사진 많음 주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박지성을 좋아하는 건 단순히 그가 2002년 월드컵에서 골을 넣고, 4강 신화를 쓰고,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엔 2000년부터 2011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기 전까지 11년간 대한민국을 위해서 해왔던 헌신에 대한 존경의 의미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도 우리나라의 박지성 같은 아니 그 이상의 국민 영웅이 있다. 흔히 아르헨티나 하면 남미, 축구, 메시, 마라도나 등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라도나나 메시 얘기가 아니다. 그들이 존경하는 영웅은 이번 리우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무려 20년간 뛰었던 국가대표 유니폼을 반납하는 농구 선수 마누 지노빌리이다. 몇 가지 키워드로 그에 대해 알아보자.
1.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에서 마누 지노빌리(이하 마누 or 지노빌리)의 위상은 거의 축구계 레전드 마라도나에 필적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인지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는 이런 말로 마누를 극찬하며 존경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메시는 말이 필요 없는 선수지만 아르헨티나 자국 내에서는 저조한 국제대회 성적으로 많은 욕을 먹었고 (은퇴발표를 하니까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며 태새를 전환했지만) 반면 지노빌리는 이미 동상이 있을 정도로 그 업적과 국민들의 사랑에 대한 부러움과 존경의 의미가 함께 담긴 멘트이지 않을까. 그럼 어떤 업적을 세웠길래 아르헨티나는 동상까지 세워줬을까?
2. 2004년
아마 아르헨티나가 그를 사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마 2004년은 아테네 올림픽이 있을 것이다. 당시 올림픽에 진출한 미국팀은 앨런 아이버슨, 팀 던컨 등 NBA 스타들로 구성되어있었고 거기엔 2003년에 데뷔한 르브론 제임스와 드웨인 웨이드, 카멜로 앤써니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4강전에서 아르헨티나와 미국이 만나게 된다. 이로써 던컨과 마누는 한솥밥을 먹던 동료에서 싸워야 할 적으로 만나게 된다.
이 혈전의 결과는 마누가 이끈 아르헨티나가 미국을 89:81로 격파하며 결승에 진출, 이탈리아마저 꺾으며 조국에게 금메달을 선사한다. 게다가 4년 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따며 국제무대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증명해냈다. 게다가 2008년에는 부상을 안고 있었음에도 본인의 의지로 올림픽에 출전을 감행하며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건 미국은 결국 3,4위전에서 승리하며 동메달로 만족해야만 했는데 미국이 이렇게 저조한 성적을 보인 건 이때 팀 구성이 스테판 마버리나 앨런 아이버슨은 본인이 공격을 시작해야 하는 스타일의 포인트 가드였기 때문에 팀케미스트리가 살아나지 않는 조합이었고 골밑을 맡아줄 선수가 팀 던컨뿐이어서 파울트러블에 걸렸을 때 골밑을 사수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이야 카멜로 앤써니, 드웨인 웨이드, 르브론 제임스가 리그 탑급 선수들이지만 당시는 이제 막 데뷔한 지 2년 된 젊은 선수에 불과했다.
3. 신뢰
국대에서의 박지성에게 우리는 많은 응원을 보냈고 사랑했지만 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빅클럽의 일원으로 다른 슈퍼스타들과 함께 자신만의 역사를 써내려 갈 때마다 우리는 역시 열렬히 그를 응원하고 그의 팀을 사랑했다. 아마 아르헨티나 사람들도 우리처럼 마누가 뛰고 있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맥주를 꺼내 들고 그를 응원할지도 모른다.
마누는 세계 최고의 리그인 NBA의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도 빅 3의 일원으로 2002년부터 현재까지 뛰고 있는데 (아마도 16-17 시즌이 77년생인 그의 NBA 마지막 시즌이 되지 않을까 싶다.) 리그 내에서도 팀원들과 감독 그렉 포포비치의 신뢰는 특별하다. 이는 아래 경기 중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경기에서 마누는 부진하고 있었는데 3 쿼터에서도 마누를 계속 쓸 거냐는 질문에 폽 감독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는 마누니까.'
폽 감독이 원체 친절하고 길게 답하기보다는 짧고 굵은 인터뷰 스타일을 가졌긴 하지만 이 한마디로 마누에 대한 신뢰를 여실히 드러낸 건 분명하다. 그가 부진하든 어떻든 그를 출전시키는 이유는 그가 마누 지노빌리니까.
4. 오비완
NBA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슈퍼스타들에게 별명을 지어주곤 한다. 이는 현지, 국내 팬들 할 것 없이 공통된 현상인데 아무튼 마누의 여러 별명중에는 오비완이라는 별명이 있다. 오비완은 '스타워즈'시리즈에 등장하는 제다이로 천재이며 성품이 곧다.
한 팬은 마누가 왜 오비완인지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받았다고 한다.
'오비완을 스타워즈 시리즈 내에 등장하는 제다이 중 최강자에 놓지는 못하지만 그들 역시 오비완을 쉽게 이기긴 힘들다. 마누 역시 내로라하는 슈팅가드들 중에서 최고로 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 어떤 슈퍼스타 슈팅가드라고 할지라도 마누를 쉽게 압도하긴 힘들 것이다.'
마누와 오비완의 공통점이라면 천재라는 것이다. 오비완이라고 불리던 전성기 시절의 마누는 그야말로 코트를 누비는 한 마리 야생마였다. 지금은 휴스턴 로케츠의 에이스이자 리그의 넘버원 슈팅가드인 제임스 하든이 잘 사용하는 유로스텝은 본래 마누의 장기였다. 전성기 시절의 유로스텝 레벨만 따지자면 오히려 마누의 유로스텝이 한 수 위다. (슈팅가드이고 유로스텝을 잘 쓴다는 것 외에도 왼손잡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유로스텝 : 일명 지그재그 스텝이라고도 불리는 이 스텝은 급격한 방향 전환을 기반으로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는 스텝으로 무릎 나가기 딱 좋은 기술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일단 보자.
이 유로스텝은 스텝을 지그재그로 밟기 때문에 두 번째 스텝에서는 속도가 떨어져 점프력도 함께 낮아지기 마련이지만 전성기 시절의 오비완은 오히려 두 번째 스텝에서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5. 마시스트
마누는 슈팅가드지만 소수의 포인트가드만의 전유물이던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어시스트 능력을 갖췄다. 팬들은 그 기가 막힌 어시스트를 가리며 마누만 할 수 있는 어시스트라 하며 마시스트라 부르기 시작했다. 잠시 감상해보자.
포인트가드가 아님에도 저런 창의력 만빵의 패스는 아마 마누만의 유니크한 면 중에 하나일 것이다. 마누는 강력한 돌파와 정확한 3점 슛, 마시스트를 무기로 14년간 NBA팬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해 왔다.
6. 유니크함
간혹 NBA에서는 예상치 못한 해프닝이 벌어져 화제가 되곤 한다. 마누에게도 본의 아니게 경기 외적으로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특이한 경험이 있다. 2009년 10월 31일 킹스와의 경기 중간에 경기장 안으로 박쥐 한 마리가 난입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저공비행하는 박쥐를 마누가 맨손으로 잡는(!) 사건이 있었다.
이후 잡았던 박쥐는 구장 밖으로 날려 보냈고 마누는 손 소독 뒤에 다시 경기에 복귀했다는 후문. 이 사건은 마누의 순발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해프닝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 번은
경기 도중 신발이 찢.. 아니 터진다. 당시 팬들은 하도 상대 수비를 찢다 찢다 못해 자기 신발마저 찢었다는 반응. 요즘은 노쇠화로 인해 예전만 못한 활약으로 팬들의 마음을 찢... 그래도 가끔 중요한 순간 3점을 성공시켜주며 클래스를 입증하곤 한다.
7. 식스맨
하지만 이런저런 해프닝보다도 마누의 유니크함을 더 증가시켜주는 건 그가 주전이 아닌 '식스맨'이라는 점이다. 식스맨이란 벤치멤버 중에서 가장 먼저 출전하는, 주전 선발 멤버는 아니지만 팀의 핵심 멤버를 뜻한다. 그래서 2008년 식스맨상은 마누의 차지였다.
사실 마누는 무늬만 벤치멤버였다. 선발로 나오지 않는 전술상의 식스맨이었을 뿐 출전 시간이나 기량은 항상 정상급 슈팅가드와 비교되곤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토니 파커, 팀 던컨과 함께 빅 3으로 불리지 못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누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일단 먼저
이렇게 잘생겼던 마누가 지금은 탈모로... 현재는 아예 삭발을 한 상태ㅠ 아마 마누에게 있어서 눈에 띄는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이뿐만 아니라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감독과 팀원,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아졌다. 본인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빅 3의 일원이었던 든든한 버팀목 팀 던컨은 은퇴를 했고 (본인 역시 다음 시즌이 아마도 본인의 마지막 시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팀의 중심은 카와이 레너드와 알드리지로 이동하고 있다. 어쩌면 이미 넘어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 아마도 다음 시즌을 마지막으로 선수로써 농구 코드에서 뛰는 천재, 야생마, 오비완, 아르헨티나의 농구 영웅 마누 지노빌리는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더 이상 옛날의 그를 볼 수는 없어도 팬들은 머릿결 찰랑이며 코트를 누비던 마누 지노빌리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또 한 명의 레전드를 보내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