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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자 Nov 22. 2015

우울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커서는 깜빡이고 있고 나는 Y 혹은 N을 선택할 수 있다.

패기롭게 브런치에 글을 발행해놓고 글을 다시 펼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워드프레스나 블로그, 트위터에 글을 끄적일 때는 그 아무도 읽어주지 않았는데, 이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정기적으로 유입되는 구독자 수에 비해 발행되는 전체 글 수가 적은 모양이다.

제대로 된 글을 시작하지도 않았고, 단지 예고편만 올렸을 뿐인데 하루는 조회수가 몇 백건이 넘어서 놀라기도 하고 걱정을 하기도 했다. 혼자 써내려갔던 우울 일기를 여기에 옮겨 적자, 정도의 가벼운 맘이었는데, 피드를 장식하는 유려한 글들을 보며 마음을 졸였다. 늘어가는 구독자 수에, 하얀 편집 화면은 먹먹하게 다가왔다.


우울에 대응하고자 취한 행동이 또 다른 우울을 불러 오고 있었다.


이 순간에 사람들의 선택은 크게 두 가지다.

1.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거나

2. 그렇기 때문에 글을 접는다.


나는 2번의 사람이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 '나에겐 주제 넘치는 일이었다. 역시 나는 안 돼.'


이 결론에 도달하게 된 로직은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의 글을 나의 글과 비교한다 - 다른 사람의 글은 우수하고 내 글은 열등하다 - 글을 쓰는 것이 부담된다 - 글을 쓰지 않는다 - 글을 쓰지 않은 자신에 불만족한다 - 자기부정 강화 - 우울 - 의욕 상실 - 더 우울 - ...(무한 반복)


그런데 잘 보면, 첫번째와 두번째 사고의 연결고리부터 엉성하다. '다른 사람의 글은 우수하고 내 글은 열등하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봐도 참일 때도 있고 거짓일 때도 있으며, 주관적으로 봐도 판단하기 나름이다. 그러나 나는 확정적으로 단언하고, 이것은 우울이라는 결론에 빛보다 빠른 속도로 도달한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는 말처럼, 앞의 사고들은 우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고도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것을 '자동적 사고'라 부르는 것 같던데, 나는 이미 '우울해야지'라고 맘을 먹었기 때문에 실제와는 상관없이 어떻게든 우울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 자동적 사고가 악순환의 근원이고, 싹부터 끊어버려야한다고 말을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내 우울을 폄하할 생각이 없다. 그에게 건방을 떨 생각도 아니다.


위와 같은 사고의 회로를 가진 내가, 그래서 내가 만나게 되는 우울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동적 사고를 멈추는 것은 여기서 시작한다.


나같은 사람이 전문가의 글을 읽고 자동적 사고를 멈추는 훈련을 시작하면 다음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한다.

(우울) - '어, 또 자동적 사고가 발동했네' - '어디서 발동했지?' - '아 이러면 안되는데 또 그랬어' - '역시 나는 안돼' - 더 우울 - ...(무한 반복)


따라서 내가 자동적 사고를 대하(고자 노력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그것이 자동적 사고임을 알아채는 것

2. 따라서 우울에 대한 선택권은 내가 가지고 있음을 주지하는 것

3. 설사 우울에 Y라고 답해도 문제되지 않음을 아는 것


핵심은 2번과 3번이다.


8년이란 세월을 함께 했음에도 나는 우울을 잘 모른다. 이 글을 써내려가는 게 맞는 지도 의문이다.  자신이 없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글을 다시 쓰기까지 꽤 많은 날들을 우울하기로(혹은 우울에서 아예 고개를 돌리기로) 택했다.

하지만 오늘은, 우울의 부름을 무시하지도 않았고, Y/N의 선택지에서 N을 답했다.

Y이라 답해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다만, 나는 나를 위해, 그리고 혹시 모를 누군가를 위해 우울을 기록하고 싶었고 그것을 해내기로 했을 뿐이다.


그렇게 이 글은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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