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나온 여자

성모 마리아는 나라구!!

by 알마리브레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보면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해서 못 해본 것들이 많다.

대학 재수,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 등등. 그 이유는, 당시 3살 터울의 삼남매를 교육시키기엔 우리집 형편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맏이였던 나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고, 한번 하지 말라고 하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선지원 후시험으로 대입을 치르고 입학했으나 다른 학교, 다른 학과에 가고 싶어 재수를 하고 싶다 했을 때, 아빠가 "서울대 갈 수 있으면 하고, 안 그러면 안된다. 그라고 어디 여자가!!"라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그냥 깨갱깽 두번 다시 '재수'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중학생 때에도 영어회화 테이프를 판매하는 사람이 학교에 와서 영업을 했는데-그 시절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당시 영어를 너무 좋아했던 나는 왠지 그 영어회화 테이프를 사면 막 외국인이랑 프리토킹을 잘할 거 같은 생각이 들어 진짜 사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부모님께 꺼내지도 못했다. 몇 십 년이 흘러 부모님과 술자리를 하며 과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영어 테이프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날 밤 아빠는 당신이 무능력해서 자식이 원하는 공부를 못하게 했다고 자책하며 울었다고 하셨다. 다음날 7장이나 되는 장문의 편지를 아빠로부터 받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 사연이 있는 내가 유치원에 갔다니 너무나 신기했다. 그것도 삼남매 중에서 유일한 아들인 남동생도 못 간 유치원을 내가 갔다니!!


"엄마, 옛날에 내가 학원에 가고 싶다 해도 돈 없다고 안 보내줬는데, 유치원은 어떻게 보내줬어?"

"그거? 기억 안 나? 니가 하도 유치원 보내 달라고 몇날 며칠을 울고불고 떼를 써서 할 수 없이 보내줬지."


난 정말 내가 유치원에 갈 수 있었던 그 전후 사정은 전혀 기억 나지 않는다. 더구나 내가 졸업한 유치원은 비싼 사립 유치원이었고, 졸업 앨범을 보면 그당시 변두리 작은 동네에서 내로라 하는 부잣집 자제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지금처럼 유치원비 지원도 없던 시절이고, 각종 체험학습이니 재료비니 해서 알뜰히도 추가 경비를 내야 했던 때다.


유치원 앨범을 보다가 크리스마스 행사 때 찍은 사진을 보며 한 가지 사건이 떠올랐다.

난 엄마가 따로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서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에 이미 한글을 다 뗐었다. 스스로 가고 싶어 갔던 유치원이니 정말 신나게, 열심히 유치원 활동에도 참여했던 것 같다. 그런 내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선생님들은 나를 예뻐하셨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학예회에서 나는 몇 개의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스토리로 만든 연극이었는데, 처음에 나는 성모 마리아를 맡기로 했었다. 열심히 대본도 외웠고, 아기 예수를 안는 법도 연습했다. 그런데, 어느날 내 친구 미희 엄마가 다녀간 이후 선생님은 갑자기 나에게 천사2를 하라고 하셨고, 미희가 성모 마리아 역을 맡게 되었다. 영문을 몰랐던 나는 선생님께 이유를 물었지만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미희는 성모 마리아 대사를 연신 까먹었고, 우리는 몇 번이나 같은 장면을 연습해야 했다. 더더욱 내가 성모 마리아에서 잘린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불만과 속상함으로 울던 나를 달랜답시고 선생님은 나에게 다른 코너인 합창 때 가운데 서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내 유치원 사진 중에서 크리스마스 학예제 때 찍은 사진은 죄다 입을 삐죽거리거나 울먹이는 표정이었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내가 성모 마리아에서 잘리고 대사도 제대로 못 외우고 까만 얼굴에 못 생기기까지 한 미희가 그 자리를 대신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당시 미희네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부자였고, 미희 어머니는 유치원 학부모회 회장이었다고 한다.


유치원을 비롯해 초중고 교육비까지 무상으로 제공되고 각종 복지제도가 발달한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개인의 소질과 능력이라는 것도 시대를 잘 타고 나거나 돈이 있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씁쓸함을 느낀다.

그때 나는 다행히 가고 싶었던 유치원에도 가고, 대학교도 갈 수 있었지만, 대부분 삼남매 이상은 되는 대가족에 남아선호사상이 발달하여 장남이나 아들을 위해 대학뿐 아니라 많은 것을 양보하며 살아야 했던 내 친구들은 얼마나 서운하고 억울했을까 싶다. 나는 그깟(?) 성모 마리아역, 연극의 주인공 하나 뺏겼을 뿐인데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상처로 남아 있는데, 인생의 굵직한 선택의 기회를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던 이들은 어떤 기분일까?


귀여운 병아리 같기도 하고, 싱그런 초록잎 같기도 한 유치원 아이들을 볼 때마다 이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병아리색이면 더 좋았겠지만, 초록초록 귀여운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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