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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 Sep 03. 2024

게으름에 대한 소고(小考)

이스탄불에서 세 번째 여름을 보내고

 소고 1小考  

1.     명사 체계를 세우지 아니한 단편적 고찰.   

2.     명사 조금 생각함.   

3.     명사 자기의 생각을 낮추어 이르는 말.   


 사전을 꺼내 괜히 라디오에서 들리는 단어를 찾았다. 아들을 지난 유월 중순에 시작한 이스탄불의 긴 여름 방학을 끝내고 드디어 아들은 학교에 갔다.


 올여름 열 시 즈음까지 한참을 이부자리에 함께 뒹굴던 시간을 지나고, 아침식사라고 시작한 밥이 남들이 점심 나절 한창 땀을 흘리며 일할 시간까지 게으름을 부리며 밥을 먹던, 낮 12시 배철수 음악캠프를 틀어놓고 아들에게 여섯 시간 빠른 한국은 벌써 퇴근해서 저녁 먹을 시간이라며 우리의 늦은 아침을 반성하곤 했다.

 늘어지게 자는 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신나게 노는 게 제일 좋은 건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라 나 또한 아들과 함께 여름의 엿가락 마냥 늘어져 방바닥의 차가움을 즐겼다.


 지난 한국행에서 보따리장수 마냥 싸 온 국어, 수학, 영어 문제집을 펼쳐, 매일 각 두 장씩 풀자며 여름을 시작했지만, 아들이 수학 한 장을 푸는 데  두 시간을 걸리는 날 머리에 불꽃이 일어난다. 잠깐 안 보면 서로 좋으련가.

 학교에서 이런 일을 많이 봤건만 그 여름 나는 친자식 인증을 하며 제 머리의 열기와 아들의 심통을 냉동실의 냉찜질기로 달랬다. 그리곤 다음 날 비슷한 문제들을 몇 분만에 다 푸는 녀석을 보며 같이 화낸 나에 대한 반성을 했다.


  " 역시 공부는 학습동기다."


 아이와 다소 철학적인 논쟁을 시작했다. 내가 아들과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습관이니 두 장은 무슨, 딱 한 장씩만 하자며 모자(母子) 대 타협을 하고, 매주 주중 하루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이스탄불 나들이도 가자고 정했다.

 아들과 쇼핑몰에 가서 그 어느 누구도 안 살 거 같은 아들 취향의 책도 사고, 유명하다며 맛있다는 아이스크림도 먹고, 인플레이션으로 작년 여름보다 패티 크기가 반으로 줄어든 치킨 버거에 놀라고, 만원 버스에 퇴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럭키비키'라며 버스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앉아서 집까지 가는 우리의 작은 행복을 축하했다. 버스 환승을 하고 내려서 아들이 먹어도 될 만한 식당에서 이것저것 물어 음식을 시키고, 둘의 여행을 걱정하는 남편에게 괜히 둘의 사진을 보낸다.


 난여름은 그랬다.


 아들과 나는 서로가 없으면 못 사는 연인 사이처럼 끌어안고 '엄마 안아줘!'를 달고 살다가, 때론 철천지 원수지간처럼 '엄마 밉다.'를 연발하는 아들에게 험한 말이 나올까 남편의 늦은 퇴근 후, 그 사람의 저녁을 차려주곤 집 앞의 쇼핑몰에 가서 멍하니 혼자 앉아있다 오곤 했다. 아마 누가 보면, 너는 아직 신생아 육아를 하냐했을 것이다.


 우린 너무 가까워서 그랬던 걸까. 


 그래도 지난 방학 아들은 한 달에 한 권씩 수학 문제집을 풀어냈고, 나도 원했던 자격증을 취득했다. 내가 시험을 보는 그 순간도 아들에게 '조용히 있어라.'를 말하고, 내가 시험을 못 쳤다고 풀에 죽어있으니 '이미 지나간 것은 잊어버려.'라며 다음을 생각하라고, 이전에 내가 아들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하는 녀석을 보며 다시 위로받았다.


 방학이 끝나갈 즈음되자 아들은 말했다.

" 엄마, 이제 학교 가고 싶어. 정말 심심해."


 아이는 학교에 정말 너무 가고 싶단다. 한국이라면 절대 느낄 수 없을, 아쉬움이라곤 없는 이 절대적인 게으름의 결과, 방학이 두 달이 넘어가자 아들이 정말로 학교에 가고 싶어 했다. 아하하.

 세 번째 맞은 아들의 긴 여름 방학의 끝은 마치 한국을 떠나고 나서야 그곳을 그리는 나의 심보와 같나 보다.


이 여름의 끝.

아들은 말했다. 학교 가고 싶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한국 가고 싶다.


아마 이곳을 떠나고, 한국에 있으면 나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이스탄불 가고 싶다.


 이 여름, 그렇게 게으름 덕분에 우리는 잘 살았다.





 안녕하세요? 지난여름 잘 보내셨나요? 혹시 제 글을 기다리고 계셨나요? 아하하. 그러셨다면 왜 그러셨어요? 아하하. 농담입니다.

 가끔 브런치의 글쓰기 재촉과 구독자분이 한 분씩 생기는 것을 보고, 사실은 열심히 글을 써야 하는데 하고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쓸수록 뭔가 답답한 마음이 계속 이어져서 이 우울들이 글로 나타날까 글을 적고서 다시 저장 버튼만 누른 채 발행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저의 우울을 던지는 기분이라, 쓰고 싶은 마음을 일부러 눌렀습니다.

 혹시 제 글을 기다리셨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늘 고맙습니다. 저는 두 달 반의 여름 방학을 끝내고 다시 연재를 시작하겠습니다.


 작년에는 방학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글을 쓰니 결국 연말에 병이 나더라고요. 저의 체력이 정말 아하하. 멈춰있는 여행기와 이스탄불에 관한 글들을 다시 쓰도록 하겠습니다. 9월이네요. 건강하세요.:)


'이스탄불 모던', 목요일이면 우리는 그 곳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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