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소설 그리고 표절, 저작권 그리고 다시 찬란한 청춘을 위해
밤 열 두시, 자정(子正)의 시간. 그 시절의 어둠은 어린 내가 혼자 견디기엔 너무 깜깜하고 두려운 존재였다.
어스름한 달빛이 어렵사리 우리 집 창가로 내려오던 시간, 괜히 무서움에 라디오를 켜고 허허 소리를 내며 집 안을 걸었다. 이른 새벽에 나서는 아버지는 이미 한 잠이었고, 엄마는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오는 큰 딸을 위해 현관 앞 계단을 비출 조명등을 켜두었다. 노랗고 붉었던 등은 언니와 내가 함께 잘 방에 어른거렸다. 이른 새벽부터 나서는 남편을 챙기느라, 늘 새벽잠을 쫓던 엄마는 나이 어린 막내아들을 안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이부자리에 누워 구르다, 미룬 수학 숙제를 풀었다. Blonker의 'travelling'이 라디오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 음악 소리가 천천히 줄어들고 'FM 음악도시 유희열입니다.'가 들린다. 그 순간 뿌옇고 불투명한 현관 유리창 너머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미네야. 언니야."
"응, 언니, 나 간다. 기다려."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서는 아버지를 따라 다른 가족은 모두 잠들어버린 시간, 나는 소곤거리며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언니를 맞이했다. 단발머리를 한 여린 소녀가 또 다른 소녀를 바라보던 순간, 그 뒤에 내리던 노란 달빛과 빨갛고 샛노랗던 조명등 아래의 계단, 그 때 라디오에 흘려 나오던 음악. 지금의 내가 여전히 사랑하는 청춘을 기억하는 음악과 책은 모두 그 시간에 만들어졌다.
열두 시, 다시 그 시간이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어두운 밤 낡은 조명 아래가 아닌, 하늘 위 꼭대기 짙은 태양이 너울거리는 한낮이다. 마흔이 넘은 나는 이스탄불에서 다시 오롯이 앉아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라디오를 듣는다. 내가 가장 어렸던, 아니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내가 있던 방, 그곳에 그의 목소리가 있었다. 유희열, 'TOY'.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이것이라고 처음으로 분명히 말할 수 있던 시절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2025년 4월 18일, 낮 열두 시가 되었다. 배철수 음악캠프의 스페셜 DJ로 3년 만에 돌아온 그의 방송을 듣는다. 타국이라 여섯 시간 늦은 나의 밤은 이제 낮이다. 라디오의 애플리케이션 방송 댓글은, 평소와 달리 그에 대한 차가운 비난과 따뜻한 환영이 공존했다. 예전 라디오를 진행하던, 이전에 그가 가진 유쾌함은 사라지고 사뭇 잔잔하고 조심스러운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린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펜을 잡던 때가 떠올라 괜스레 슬픔이 몰려왔다.
내 청춘의 시간, 라디오 속에서 그가 추천하는 음악을 찾아 들으며 신경숙 작가의 소설을 읽던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갑자기 가슴이 저릿한, 나는 어느새 혼자 있던 그 밤에 서 있는 듯하다.
2022년 6월, '아주 사적인 밤'이라는 곡이 발표되고, 사카모토 류이치의 'AQUA'와 유사하다는 논란으로 시작된 작곡가 유희열의 표절에 대한 공방은 해당 곡뿐만 아니라 그가 이전에 발표한 다른 곡들에도 이어지며, 창작자로서의 도덕성과 그의 음악성에 대한 비판은 이어졌다. 그로 인해 유희열은 결국 출연하던 모든 방송을 하차하며 3년 동안 방송에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해당 곡에 대한 유희열과 사카모토 류이치의 인터뷰 및 AQUA의 원작자인 사카모토 류이치가 유희열, 그의 음악이 표절이 아니라고 말하는 과정에서 현재 '저작권법'이 가지는 취약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작권 침해 행위는 저작권법상 범죄로 규정되어 있다. 즉, 저작권 침해는 범죄다. 다만 저작권법에서 저작권 침해는 친고죄이므로 이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저작권자의 고소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일반적인 표절은 철저하게 저작권을 주장하는 고소인과 피고소인 당사자 간의 문제가 된다.
즉, 저작권은 창작물을 만든 이가 자신이 만든 저작물에 대해 가지는 배타적인 법적 권리다. 모든 창작물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지만, 친고죄에 해당하므로 이를 처벌하기 위해선 저작권자인 '사카모토 류이치'가 고소하지 않으면, 대중의 무수한 논란이 있다 하더라도 유희열의 '아주 사적인 밤'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작품 'AQUA'에 대한 표절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는 결국 저작권법은 창작물에 대한 창작자 본인의 자정(自淨), 결국 창작자 스스로의 자기 검열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한참을 라디오 속의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청춘 속에서 나를 웃고 울게 했던 그의 목소리와 라디오의 댓글들을 읽어본다. 나의 가장 어두운 심연의 달빛이 다시 까맣게 칠해졌다. 결국 나는 라디오를 끄곤, 이제는 세상을 떠난 사카모토 류이치의 'AQUA'를 재생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사카모토의 피아노 건반 하나하나에 천천히 눌러쓴 그의 편지가 다시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다행히 그 시절 어두운 그 밤, 뽀얗고 하얗던 달은 밝은 날에도 여전히 떠 있는 듯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돈벌이를 시작한 그때, 빨간색 표지가 서점에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책을 넘기며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가 나를 뻔히 쳐다본다는 것도 잊은 채 그곳에서 코를 팽팽 풀며 책을 읽었다. 마치 사연이 있는 사람처럼, 청춘의 나는 그렇게 순정을 다했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여성 작가로서의 삶을 생각했다. 돈벌이 안 되는 글을 쓰는 일론 먹고살기 힘들다며, 그럼에도 나는 글을 읽고 창가에 앉아 무언가를 썼다. 그리고 2015년, 이제 제 몫의 소임을 다 한다고 생각한 어른인 나는 신경숙 작가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논란'을 보며 다시 좌절했다.
‘나란 존재는, 온전한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을까.’라고 되물으며 나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스스로 합리화하고, 글을 쓰지 않고 먹고살기 위한 일을 했다. 그리고 가끔 내가 좋아하는 것에 파묻혀 지냈다. 다행히 세상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계속 나타났다. 비슷하지만 다른 것들이 무수히 태어났다. 그리고 나 또한 나와 비슷하지만 참으로 다른 아이, 제3의 인간인 아들을 낳았다. 청춘의 나의 결심처럼, 멋진 소설은 아니지만 묘하게 나와 비슷하지만 다른 무언가를 생산해 냈다. 아이는 이제 나의 청춘의 음악을 같이 듣는다.
래퍼런스(reference) 그리고 때론 오마주(hommage) 등. 우리는 무수한 자기 또는 타인 복제를 한다. 어쩌면 오늘도 우리는 같은 나를 통해 또 다른 복제를 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정보에 대한 반복적인 기사와 그에 따른 재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비슷한 보고서, 유사한 의견을 가진 논설문, 유명한 특정인을 공격하는 기사들이 반복되어 가득한 AI의 시대, 현대 정보 기술이 오히려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고, 체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 정보가 재생산 가능한 것이 현재 시대다. 마치 마녀 사냥을 하던 중세의 사람들처럼, 현재의 우리는 무수한 정보 중에서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인지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는 삶 속에 놓여있다.
하지만 이 무수한 정보 속에서도 우리는 누군가가 나의 소중한 창작물을 읽고 기억하는 가장 소중한 그 한 사람을 위해 창작자,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더욱 엄격한 잣대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순간도 이스탄불의 작은 상점에서 들리는 한국어가 가득한 그 노래가 가치 있게 소비되기 위해, 튀르키예어로 번역되어 출간 몇 쇄를 자랑하는 한국 소설이 계속되어 이어지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다시 살펴야 한다. 모두가 창작자인 우리는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아주 사적인 밤'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엄격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시간이다.
즉, 내 음악, 내 글, 내 책, 내가 쓰는 이 이미지가 누군가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가를 고려하는 가장 엄정한 밤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하나의 멜로디와 한 구절은 '저작권'이라는 하나의 개인의 권리와 법률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을 기억하는 가장 소중한 증명이다.
달빛을 향해 인사를 하던 순간의 음악, 고속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곤 되뇌던 소설 속 한 문장의 강렬함, 그것은 내 청춘을 가득 채우던 가장 순수했던 시간의 아름다움이며 가장 설레며 가슴 뛰던 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존재였다. 음악의 한 소절, 책의 한 구절은 저작권이라는 법적인 용어를 넘어서, 우리 모두를 그 어떤 궐기 없이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래서 그들은 청춘이었던 내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나는 오롯이, 이스탄불 창가에 앉아 다시금 새로울 '아주 사적인 밤'을 여전히 기다린다.
*참고문헌
1. 나무위키. (2025.05.09. 09:11:40) 유희열 표절 논란.
2. 나무위키.(2025.04.29. 14:01:59) 3. 한국의 저작권법 현황, 3.4. 친고죄.
3. 나무위키.(2025.05.21. 07:25:15) 표절.
4. 서형석.(2025.03.26. 08:10).'표절 논란' 유희열 '배철수의 음악캠프'로 3년 만에 방송 복귀. 연합뉴스 TV.
5. 나무위키.(2025.02.24.13:32:40) 신경숙 표절 사건.
https://youtu.be/J0DcAtx7nN8?si=_9lpk-cRvZeMLTRy
저와 같이 FM음악도시를 기억하는 모든 청춘을 위해서 이 글을 씁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동영상은 FM 음악도시의 시그널 음악, Blonker의 'travelling'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