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스탄불 에틸레르에 살아요.' 1화
튀르키예 이스탄불 베식타쉬 에틸레르 제이틴요루 사르코낙나르.
알람이 울렸다. 그녀와 그녀의 아들이 누운 안방의 검은색 커튼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녀는 집주인이 걸어둔 철에 맞지 않은, 두껍고 오래된 커튼을 살짝 들어 안방에 바로 맞닿은 옆집 창문 난간에 앉은 고양이를 바라봤다. 앙칼진 울음의 녀석은 제 몸보다 더 작은 무엇을 낳았다.
그녀가 한참을 바라본 탓일까, 더욱 앙칼진 울음을 내었다. 그녀가 녀석을 바라볼수록 녀석은 더 크게 울테니, 그녀는 애써 햇살을 가렸다.
그녀는 화장실 다녀와 아들을 한번 바라봤다. 아이는 곤히 자고있었다. 그리곤 아이와 집 밖으로 나갈 때 입을 외투 호주머니에 집 열쇠를 넣었다.
"엄마."
"어, 연후야."
그녀의 아들이 일어났다.
그녀는 자신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집 문 앞에 그녀가 집을 나서기 전 입을 옷을 미리 놓아두었다. 그녀보다 먼저 집 밖으로 나갈 듯한 그녀의 옅은 갈색빛 바람막이 재킷은 어쩌면 그녀보다 먼저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집만큼 오래되고 투박한 열쇠에 어디에 놓아도 잘 보일 노랑 곰돌이도 같이 바닥에 누웠다. 제법 때가 탄 동글한 몸집의 녀석이 호주머니 속에서 그녀를 살며시 바라봤다. 오래된 문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뻑뻑한 열쇠 구멍에 기름칠을 하며 애써 열쇠를 쑤셔 넣던 어제를 생각하니, 그녀는 벌써 손목이 시끈 했다.
어느새 3년 차. 아들을 깨우기 전, 부엌에서 바쁘게 딸기를 씻다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꼭꼭 꼭. 버튼만 눌리던 도어록 소리가 익숙하던 그녀에게, 또 다른 여인이 말했다.
"연후엄마, 여기선 열쇠가 제일 중요해. 내가 아까 우리 재은이가 머리 마음에 안 든다고 징징대서 다시 묶다가, 급해서 열쇠도 못 챙기고 문을 닫았잖아. 아, 정말. 정말. 이 멍청이, 이 멍청이. 속상해. 에휴."
마치 비밀스러운 의식을 진행하듯, 그녀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시떼의 기술자 아저씨들의 쉼터로 갔다. 둘은 이 동네 가장 비싼 집 주차장, 그 아래의 가장 어두운 장소로 천천히 들어갔다. 쓰레기가 가득 찬 분리수거장을 지나, 거대한 보일러의 굉음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울린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비싼 동네의 고급 빌라, 이스탄불 에틸레르 사르코낙 나르.
오래되었지만 잘 정돈된 공구함들과 거대한 회색빛 파이프가 줄지어 보인다. 커다란 쇠문을 밀어 살며시 인사를 건넸다.
"Merhaba?"
이 회색빛 배경의 거대한 술탄*들은 갈색빛 차이를 옆에 두곤 모여 앉아 있었다.
머뭇거리던 그녀들은 번역기를 들어 더듬거리며 말을 했다.
"문 좀 열어주세요. 제발."
집 아래에 이런 공간이 여기에 있었다니, 생각지도 못한 공간에 눈이 휘둥그레진 그녀는, 자신의 집 아래 주차장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가 사는 고슴도치처럼 웅크린 채, 그동안 학원에서 배운 어설픈 튀르키예어를 사용했다.
화장실에서 아들의 소리가 들린다. 딴생각을 하다 고개를 들어 아이를 바라봤다. 연후가 처음 학교를 들어설 때, 영어와 한국어 모두를 떠듬거리던 그때가 생각이 났다. 어느새 그녀에게 영어 발음을 지적할 만큼 아들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여느 아침 시간처럼, 아들의 바지 끝이 어느새 짤막해졌다.
그 시절 마치 어두운 밤 속을 조심스레 더듬어 들어가듯, 주차장 가장 깊은 곳의 보일러실에서 한껏 웅크린 채, 그녀와 함께 집의 문을 열어달라고 말을 하던 또 다른 그녀도 본래의 자리인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제 모든 게 익숙해진 이스탄불, 여느 때처럼 그녀의 집 앞엔 고양이들이 앉아있었다. 느긋한 고양이들과 달리 그녀의 눈썹엔 오늘도 날개가 붙어 내달린다.
"스쿨버스 놓쳐. 얼른 뛰자. 연후야."
제 마음과 다른 누군가를 끌고 가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일까. 그녀는 버스를 놓칠 것 같아 부리나케 계단들을 뛰어넘었다. 아들의 등을 밀어 다시 또 뛰어간다.
"늦어서 죄송해요."
그녀가 정신없이 자신을 내려놓은 순간은 아마 그때였나 보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연후를 태운 버스의 뒤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오늘도 이스탄불의 도로는 공사 중이었다. 버스가 일으킨 노란 흙먼지가 먹구름처럼 피어올라 제이틴 거리를 가득 메운다.
뿌연 먼지 속에서 유모차를 태운 아들과 단둘이 서서 바라보던 그때의 로더가 팔을 들어 연후를 배웅했다. 그녀 대신 아주 천천히 손을 흔드는 공사장 친구 덕분에, 그녀의 손은 일찍이 호주머니행이었다.
돌아서 집으로 가는 길, 먼저 이곳을 떠난 그녀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지금 무얼 하면 좋을까. 그녀는 또다시 조바심이 들었다.
그리곤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열쇠가 없다."
그녀는 너무 놀라 큰소리로 혼잣말이 나왔다. 한참을 눈으로 바닥을 하나씩 훑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곱씹었다.
얼마나 바닥만 보고 걸었을까. 그녀 발 앞에 다른 발이 보인다.
"이거 찾는 거지?"
그녀 집 아래에 사는 할머니였다. 하얀 머리를 곱게 빗어 올린 그녀는 노랑 곰돌이가 달린 그 열쇠를 들고 서 계셨다. 몸이 살짝 기운 듯한 그녀는 열쇠를 든 채, 수줍은 듯 웃어 보였다. 그녀는 제법 익숙해진 튀르키예어로 그녀의 아랫집 할머니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할머니에게 그녀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열쇠를 받아 든 그녀는 아랫집 할머니 앞에서 왈칵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열쇠가 아닌 엄마를 잃었다 다시 찾은 아이처럼, 손에 쥐어준 열쇠를 들고선 울기 시작했다.
다행히 에틸레르 사르코낙 나르 정원의 나무는 그녀의 마음과 달리 반듯하게 자라고 있었다. 시떼의 정원사 아저씨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이 나무의 가지들을 계속해서 솎아내고 있었다. 그가 만들어내는 기계음 소리에, 그녀는 더 크게 울 수 있었다.
여느 때처럼, 이스탄불의 고양이들은 그녀와 아랫집 할머니의 발목에 다가와 몸을 연신 비벼댔다. 녀석들의 하얀 털이 보스포루스 해협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나부껴 뭉쳐지고 있었다. 하얗게 뭉쳐진 털 뭉치가 그녀 옆을 구른다. 몽글몽글하다.
한참 동안 우는 그녀를 쓰다듬으며, 나이 든 그녀는 또 다른 그녀를 향해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Benim adım Sabiha. Sabiha Gökçen Havalimanı'nı biliyor musunuz? Sabiha."
"Evet. Sabiha biliyorum."
"Sarı sever misiniz?"
"Evet.Evet."
"내 이름은 사비하, 사비하 괵첸 공항* 알지? 그 사비하야."
"네, 알아요. 사비하."
"너는 노란색 좋아하는구나?"
"네, 네."
너무 울었던 탓일까. 그녀 손에 쥐어진 노랑 곰돌이 열쇠고리를 보는 그녀는 도무지 '아니요'가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그날부터 그녀는 그저 아랫집에 사는 할머니였던 그녀에게 사르코낙(노란 집)*에 같이 사는 노란색을 무척 좋아하는 한국인이 되었다.
그렇게 그녀들은 그렇게 처음으로 제 이름을 서로에게 말했다.
"내 이름은 사비하야."
"제 이름은 민혜에요."
*사비하 괵첸 국제공항(영어: Sabiha Gökçen International Airport, 튀르키예어: Atatürk Havalimanı, IATA: SAW, ICAO: LTFJ)
*술탄
https://namu.wiki/w/%EC%88%A0%ED%83%84
*사르코낙(Sarıkonak)
튀르키예어로 노란 집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