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오늘 저녁 M과 우리 동네에서 치맥을 하기로 했다. 집에서 잠깐 쉬다가 해가 질 무렵 운동을 하러 나가려고 하는데 엄마가 카페로 나오라는 연락을 했다. 감기 몸살로 몸이 아프다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군말 없이 갔겠지만, 오늘따라 엄마의 부탁을 따르기가 너무나도 싫었다. M을 오늘 못 본다는 게 싫었고, 엄마가 자기만의 높은 기준 때문에 알바 없이 혼자 고된 노동을 하고 그러다 몸이 아파서 힘들어질 때면 나를 부른다는 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엄마가 고생하는 것, 그 고생을 본인이 자꾸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이용해 나의 부채감을 자극하며 본인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싫었다.
결국 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약속을 미뤘다. 그는 나를 다독이며 괜찮다고 말해줬지만, 나는 단지 오늘의 일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삶에서 내가 얼마나 엄마에게 이런 식으로 인생을 좌우당하게 될까, 라는 생각이 스치며 몹시 불편해졌다. 엄마를 족쇄라고 생각한 적은 지금껏 한번도 없었다. 이후로도 결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나는 엄마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둘 사이의 줄을 끊지 못하는 것이다. 엄마의 상황도 나와 마찬가지다. 사랑이 너무 커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이건 좋은 사랑이 아니다. 나는 오늘 엄마가 미웠고, 나 자신도 너무 미웠다.
카페에 가보니 엄마는 목도리를 두른 채 생강을 손질하고 있었다. 감기 기운이 가시질 않는다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이 비죽 나와서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러다 엄마는 이번 주말에도 내가 카페에 나와 일을 도와줬으면 한다는 말을 했고, 나는 정말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하며 약간의 언쟁을 했다. 엄마는 왜 못 하냐며 따졌는데, 나는 그 질문에 구구절절 이유를 말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할 말이 없기도 했다. 내가 주말에 뭔가 대단하고 중요한 걸 계획했기 때문에 엄마의 요구를 완강히 거절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나는 나의 일상이, 삶이 엄마의 뜻대로 흐르는 것이 무척이나 싫은 것이었다. 전역 후, 엄마와 같이 살며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이런 피해의식이 더더욱 커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스스로 원하는 길을 가려고 시도하는 중인데 그게 바라는 대로 잘 되지 않는 것 같고, 그런 와중에 나는 엄마에게 경제적으로 여전히 의존적인 상태이고, 엄마는 그런 나의 상황을 파고들며 내 뜻을 지지해주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회유를 하고...
결국 나는 설거지를 하다 화가 나서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
“의지하지 마!”
엄마가 내 말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엄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 말이 물소리에 묻혀 온전히 전달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혹은 그 말이 엄마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를 건드리면서 너무 많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바람에 더 이상 어떤 말을 보태거나 대꾸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나는 그 말을 내뱉은 동시에 후회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무척이나 후회했고, 그 후회를 또 속으로 삼켰다.
올해 목표를 독립하기라고 말한 적 있다. 그 생각은 아직 변함이 없다. 나는 엄마를 떠나야 한다. 그것이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는 게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엄마에게도 행복일 거라는 확신은 아직 없지만. 내일 엄마는 연말에 받은 정기검진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는데, 나는 한낱 중국어 학원 때문에 같이 가지 못한다. 아주 사소하게 의심스러운 것이 몸 안에 보여서 MRI와 PET-CT를 찍었다는데,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엄마도 그렇겠지. 우리가 삶이라는 걸 대강이라도 인식하며 살 수 있도록 그 형체를 잡아주는 어떤 막이 있는데, 그게 너무나 얇은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너무 팍팍하고 각박해서, 행복이 곧잘 그 얇은 거죽을 찢고 새어나가버리는 삶. 나는 엄마와 내가 부디 그런 이유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 2018년 1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