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일산.
최근 씨리얼 C-Real에 업로드된 두 개의 영상을 보았다. '왕따였던 어른들의 이야기'.
영상 속에는 중고등학생 시절 집단 따돌림 혹은 괴롭힘을 당했던, 지금의 어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먹먹했다. 어릴 적 나를 괴롭히던 덩치 크고 잔인하던 아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2001년, 일산에서의 일이다.
꽤나 많은 그룹은 어울리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특히나 의무적인 그룹일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초중고, 군대, 회사, 혹은 가족이 그러할 것이다. 강제성이 덜한, 동아리와 같은 그룹이었다면 수틀리면 탈퇴하면 그만일 테니 말이다. 의무적으로 뭉쳐진 사람들끼리 늘 따사롭게 지낼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결이 맞지 않는 상대와는 다툼이 있을 수도 있다. 집단 따돌림, 교내 괴롭힘, 학교 폭력 등등이 잔인한 건 서로 주고받는 감정과 상흔의 환율이 뒤틀려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에게 그때의 경험은 상흔이 되어 남는다. 채 아물기도 전에 계속해서 생채기가 더해지기에 그들의 삶에 어떤 방향으로든 큰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반면에, 가해자들에게는 가벼운 즐거움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처를 내는 행동의 주도권은 가해자에게 있음에도 그들에겐 가볍고, 피해자들에겐 무겁다는 건 무척이나 잔인하다. 차라리 그들의 쾌락이 과했다면 덜 잔인했을까. 모르겠다.
어느새 학교에서 멀어져 성인이 된 우리는, 집단 따돌림에서 멀어졌다고 안심할 수 있을까. 별 숙고 없이 여전히 비슷한 종류의 폭력은 벌어진다. 가해자는 늘 알량한 권력을 무기로, 피해자를 인격체 이하로 취급하는 폭력을 자행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남편의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리다 이혼했노라고 덤덤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있지도 않은 동영상을 빌미로 협박하는 상대방 때문에 무너질 것 같던 친구도 있다. 사회생활을 하며 자살의 유혹이 강해진다며 심리 상담을 알아보던 친구가 있었다. 타인을 일종의 도구로 취급하기에 벌어지는 폭력은 지금도 만연하다. 일생에 거쳐 힘겨워하는 그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자신의 여흥이 저지를 수 있는 심각함에 경각심을 가질 수만 있다면.
재작년 여름,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그때의 덩치 크고 잔인하던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에 자살했다는 이야기였다. 듣고 다시 전달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그때 느낀 감정만은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통쾌하지도, 후련하지도, 안타깝지도 않았다. 그저 씁쓸한 잔향만이 가득했다. 씨리얼 동영상 속의 인터뷰 중에, 가해자들이 너무도 잘 살아가고 있다며 아연해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랬다면, 내 감정은 보다 선명했을까. 그 아이는 무엇이 그리도 힘들었을까. 더듬이의 끝은 멀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