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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Mar 02. 2020

재택근무는 처음이라

회사생활 6년차에 첫 재택근무 후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COVID-19 때문에 지난주 목요일부터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연달아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도 있다고 들었지만, 내가 일하는 회사/부서는 2개 조로 나뉘어 격일마다 번갈아 가며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나를 예로 들자면, 지난주 목요일 재택근무 - 금요일 사무실 근무 - 오늘월요일 재택근무를 하는 식이다. 


인생 첫 재택근무였던 지난주 목요일은, 이래저래 우왕좌왕의 연속이었다. 서버가 수용 가능인원보다 많은 수의 임직원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사외 접속 속도가 무척이나 느려진 것도 이러한 우왕좌왕에 일조했다. 뒤늦게 IT 담당 부문에서는 서버를 확충하고 시스템을 정비해주었지만, 오전의 방황 덕인지 오후까지도 업무의 절뚝거림은 지속되었던 하루였다. 

재택근무는 처음이었다, 진짜


오늘도 업무를 절뚝거리기 버거웠기에 -개인적으로 업무상 바쁜 시즌이다- 지난주 금요일 사무실에서 업무를 하며 틈틈이 재택근무를 위한 준비를 해두었다. 덕분에 오늘은 만족스럽게 재택근무를 마무리한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향후에는 재택근무의 기회가 흔히 주어지기 힘들겠지만, 기록을 겸해 후기글을 남겨 본다.



생각나는 대로 장점부터 적어보자

첫째로 자투리 시간 활용도가 높아졌다. 아침 출근을 위한 이동시간을 절약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외출 준비를 위한 시간이 아무래도 매우 줄어든다. 사람마다 화장이나 면도 -장기화된다면 생에 최초로 수염을 길러볼까 싶다- 에 들이던 시간도 줄지 않을까 싶다. 점심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외식이 아닌 만큼 아무래도 요리와 설거지 등을 해야 하지만, 남는 시간에 밀린 가사를 할 수 있어 좋다. 나의 경우엔, 오늘 점심시간을 활용해 이불 빨래를 하고 부엌 손걸레질을 했다. 


업무 효율성이 꽤 높아진다. 업무의 성격에 따라 이는 천차만별이겠지만, 높은 수준의 협력이 필요치 않은 대다수의 업무는 효율이 크게 증가했다. 우선, 잡무가 현저하게 줄기 때문에 그렇다. 정보의 취합이나 일정의 관리와 같은 경상 업무, 조직 내 관리 업무 등에 대한 요청이 줄어들고, 상급자들이 실무자에게 비정기적으로 문의에 대한 검토도 상당히 격감한다. 평소에는 많은 집중을 요하는 보고서 작업을 해야 하면, 다른 사람들이 적은 이른 아침에 출근하거나 야근 시간을 활용해야 했다. 몰랐지만, 재택근무는 그런 집중도 있는 시간을 비약적으로 늘려 준다.


앞의 두 가지와 다르게 명료화하긴 어렵지만, 좋은 업무 환경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껏 나는 스스로가 업무환경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여겼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재택근무를 한 이틀은 큰 창문을 곁에 두고 일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해 준 계기가 아닐까 싶다. 돌이켜 보면 많은 회사 사무실에서 큰 창문 근처는 대개 임원이나 상급자들을 위한 자리인 경우가 허다하다. 모처럼 날씨도 좋았기에 -COVID-19로 인해 황사가 적은 3월이라고 한다- 더욱 행복한 하루였다. 더불어 개인용 포트에서 물 끓는 소리, LP에서 잔잔하게 틀어놓은 재즈 음악 등등 -재택 짱 좋아!- 만족스러웠다.

큰창문성애자였다 (Ilya Milstein illutsration)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게도- 마냥 좋은 점만 있지는 않았다. 우선 업무의 맺고 끊음이 사라진다. 원래는 집과 업무 공간(회사)은 분리되어 있었지만, 재택근무는 그렇지가 않다. 아무래도 집에서 업무를 하다 보니, 저녁식사 후에도 나도 모르게, 다시 자리에서 업무를 하게 된다. 사무실에서는 시간을 베이스로 업무를 추진한다는 개념이라면, 자율성이 높아진 재택근무 중에는 특정 업무task 베이스로 시간을 배분하는 느낌이 더 커진다. 


아무래도 높은 수준의 협력이 필요한 업무 영역에서는, 대면 접촉이 효율적이라는 걸 깨닫기도 했다. 작년에 읽은 책 <도시의 승리>에는 원격 근무를 위한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구성원들 사이에 직접 대면 접촉 필요성이 증대 -그는 이 두 가지를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 설명한다- 하는 역설을 소개한다. 현안을 공유하거나 해결책을 제안하는 일은 원격으로도 쉽게 가능하다. 하지만, 여러 현안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여러 부문별로 서로의 양보와 '주고받음'이 필요할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엔, 이메일이나 통화, 영상회의로는 좋은 숙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좋은 아이디어와 협력의 방향은 아무래도 대면회의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이 이야기는 향후에 글감으로 다시 다루어볼 생각이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저 <도시의 승리>



효율적인 재택근무를 위해

재택근무는 구성원 간의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는 열심히 일하는데, 누군가는 집에서 탱자탱자 놀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상급자로 하여금 손아랫사람을 마이크로-매니지micro-manage 하게 만든다. 그건 재택근무의 장점도 해치면서, 단점을 늘리게 만드는 최악의 수다. 아직 자연스레 정착이 되지 않은 재택근무이기에, 혹여나 있을 무임승차에 대한 의심을 완화하는 측면에서 스스로의 하루 업무를 명료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덕분일지는 모르겠지만, 재택근무를 하면서 스스로의 하루 업무 내용들을 단위 화하여 구성해 볼 수 있었다. 이건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모르겠다.


더불어,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번갈아 하게 되다 보니 자연스레 스스로가 하는 업무 영역을 협업도에 따라 분류해 볼 수 있었다. 협업도가 적은 업무는 재택근무로 배정하고, 사무실에서는 협업도가 높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하였다. 아마도 일의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높은 수준의 협업이 필요한 업무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이 척도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도 다음 기회로 미루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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