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이 올 때마다 가족의 건강과 안부를 물어주는 오랜 친구가 있다. "부모님 건강하시지?" "형수님은?" 등등. 이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고마운 마음과 함께, 한 편으론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저렇게 전통적인 인사법을 편하게 구사하다니!' 막상 친구와 주변 가족의 안부를 먼저 묻지 못한 내가 머쓱해지기면서도, 매번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신입사원 때 영업 본부의 영업 일선에 6개월간 파견 근무를 나간 적이 있다. 그때 마주한 전형적인 영업직 선배들의 소셜 스킬은 어마어마했다. 늘 웃으며 인사하고, 감사와 사과는 정중하게 하며, 경조사는 최대한 빠짐없이 챙기려 노력하는. 어찌 보면 올드스쿨 스러운 그 모습에, 본능적으로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주말에 바쁘면 경조사는 좀 미루고 축의금(혹은 부조금)만 보내면 되지. 어떻게 늘 밝게 웃으며 다닌담. 등등
대학을 졸업한 지 만 6년이 지나가고, 어느덧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까운 가족의 장례식을 치르기도 했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무슨 대수랴 여겼던 올드스쿨 소셜 스킬이 눈에 밟히고 기억에 오롯이 새겨지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장례식과 결혼식에 직접 찾아와 준 사람들은 하나하나 잊을 수 없으니 말이다.
대학생 시절에는 그저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건 별로 중요치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20대 후반이 되어서였다. 사회 초년생 특유의 늦깎이 사춘기를 맞으며, 행복한 모둠살이를 위해서는 더듬이와 끈기를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민함을 바탕으로 배려심을 키우고, 오랫동안 끈기 있게 고민하는 태도를 함양하려 노력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이거면 충분할까. 좋은 어른이 되는 걸까. 또 다른 궁금함이 생긴 건 최근이다.
"나에게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라고 말해준 사람은
모두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박준' 시인의 <여름에 부르는 이름>을 읽다 위의 시구를 읽고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뭘까 이 문장. 이 정확한 포인트는 또 무어람.
정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지. 비록 올드스쿨 냄새가 짙게 깔리더라도, 주변에 따스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내가 충분하지 않다면, 그렇게 되려 노력이라도 해야지. 새로운 다짐을 하는 33살 늦봄이다.
어느 트위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