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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선 May 11. 2024

요즘 책을 안 읽는 남편에게 | 간지 추구형 독서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문학동네, 2008

  오빠는 알지. 내가 얼마나 간지에 죽고 못 사는지. 그리고 간지에 얼마나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 책을 읽는다는 게 멋져 보이지 않았다면 난 지금만큼 책을 읽지는 않았을 거야. 똑같은 문화생활인데도 점심시간에 애니메이션을 트는 사람과 책을 펼치는 사람은 다르게 느껴지잖아. 나도 문득 출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내 모습에 취하곤 해. 독서에는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허영의 맛이 있지.


*참고 : 글쓴이가 간지 여부를 평가하는 네 가지 주관적인 항목.

첫째, 덤덤간지
: 쉽게 흥분하지 않으며 호들갑을 떨지 않을 것. 목소리의 데시벨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으며 마지못해 꼭 필요한 말만 할 것. ‘정말’, ‘진짜’, ‘엄청’과 같은 과잉 표현을 아껴 쓸 것. 굳이 써야 한다면 ‘퍽’, ‘무척’, ‘꽤’와 같은 말로 대체할 것. 【예문】 정말 예쁘네요 (X), 무척 아름답네요(O)

둘째, 어수룩간지
: 글은 작살나게 쓰되 말은 유창하지 못하며 낯을 가릴 것. 말하면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고 말하므로 말의 속도가 빠르지 않을 것. 답답할 망정 섣부르지 않을 것. 욕이나 비속어 쓰지 않으며 특히 강조표현 ‘개’, ‘겁나’, ‘존나’ 류의 어휘를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

셋째, 무심간지
: 사람이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아닌 아이돌 신곡, 연예계 열애설, 틱톡 챌린지, 유행하는 밈과 같은 트렌디한 미디어에 대하여 무관심할 것. SNS에 인증샷을 업로드하지 않으며 본인 계정에 달리는 댓글과 좋아요에 대하여 연연해하지 않을 것.

넷째, 겸손간지
: 모든 간지 위의 간지로서 반드시 예의상의 겸손한 척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겸손일 것. 나이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나보다 나은 사람으로 여길 것. 【예시】많이 알고 똑똑한 사람 : 저는 잘 몰라요 / 칭찬받아 마땅한 사람 : 저는 부끄럽습니다


  같이 살기 시작하자마자 출장이 잦아지면서 오빠가 혼자 있을 때 읽을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었잖아. 한국형 SF 유행의 장을 연 단편 소설집, 한 번에 읽어나가기는 어렵지만 한 문장 한 문장에 진한 맛이 나는 문장의 정수가 담긴 장편 소설, 읽으면 새삼 오늘은 산다는 게 귀해지는 산문, 이렇게 책이 웃길 수도 있구나 싶은 기행록…. 여러 유형의 책을 추천해 줬지만 오빠는 이 책 재밌게 읽을 거야,라는 예상은 대부분 적중하지 못했어. 그래서 오늘은 추천의 기준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어. 이 책은 오빠를 간지 나게 할 거야. 간지보증수표 같은 책이지.


  먼저 이 책의 작가인  문학평론가 신형철 선생님을 소개하자면, 간지의 화신 같은 분이야. 올해 국제도서전 사인회에서 선생님을 잠시 뵈었던 기억이 떠오르네. 나의 열렬한 동경에 비해 우리 사이의 대화는 간략했지만.


유희선 : 작가님책다가지고있어요정말감사합니다.......

신형철 : 아, 네 감사합니다.


나는 아마 작가님께 저렇게 말한 이만 삼천 번째 독자 중에 하나겠지.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시에 그의 책을 추천한 이만 삼천 번째 독자가 될 거고. 소개하고 싶은 책은 그의 첫 번째 평론집이야. 제목부터 범상치 않지.


『몰락의 에티카』.


  몰락이라니. 또 에티카라니. 제목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 일단 느껴봐…. 비범한 두 단어의 결합에서 오는 장중함을…. 외형에서 오는 장엄함을. 분량은 721쪽. 손가락 한 마디 반 정도. 되게 두꺼운 책 읽으시네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두껍지만 무게는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야. 펼쳐보면 여백이 거의 없고 글밥도 많지. 게다가 책 등에 쓰인 카피는 무려 "문학은 몰락 이후의 첫 번째 표정이다" 라니. 이 평론집의 서문은 바로 이 몰락과 에티카가 제목에 쓰인 이유를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해. 도저히 못 참겠어서 몇 문장만 옮길게.



  나는 늘 몰락한 자들에게 매료되곤 했다. (…) 그들은 그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만 그들이 지키려 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면서 이긴다. 성공을 찬미하는 세계는 그들의 몰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덕분에 세계는 잠시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몰락하면서 이 세계의 완강한 일각을 더불어 침몰시킨다. 그 순간 우리의 생이 잠시 흔들리고 가치들의 좌표가 바뀐다. 그리고 질문하게 한다. 어떤 삶이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인가. (…) 문학이란 무엇인가. 몰락의 에티카다. 온 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5-6쪽.



  책을 잠깐 덮자. 눈을 감자. 그리고 생각해. ‘이게 인문이다 …. ’ 이 책의 어느 부분을 인용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문단 전체를 모조리 타이핑해버리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두 번째, 어디를 생략할지 눈물을 머금고 선택해야만 해. 나는 좋았던 페이지의 끝을 접고 접고 접다가 책 모서리가 너무 뚱뚱해질 것 같아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색인을 사서 붙여놨어. 소설이나 시와 같은 창작의 장르가 아니어도 미문(美文) 일 수 있다는 걸 나는 신형철 선생님의 평론으로 배웠어. 그의 문장의 아름다움은 예쁜 단어의 배열이 아닌 관찰하는 대상에 대한 정교함과 적확함에 있지. 이를테면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해.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먹는다. 이를테면 거울이 아니라 위장(胃臟)이다. (…)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충실히 보여주는 위장이 좋은 위장이 아닌 것처럼, 당대적 현실의 세목들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소설이 꼭 좋은 소설인 것은 아니다. (…) 좋은 소설은 늘 현실보다 더 과잉이거나 결핍이고 더 느리거나 빠르다. 좋은 소설에는 ‘현실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의 긴장’이 있다.

- 같은 책, 23쪽



  소설의 역할이 현실의 재연이라면 굳이 소설을 쓸 필요가 없잖아. 그 분야는 뉴스 혹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몫이니까. 하지만 소설이 소설로서 어떻게 소설 될 수 있는지를 그는 이렇게 신선하고 또 명료하게 설명해 내. 그리고 자신이 세운 기준으로 작품들을 비평해 내는데, 이 비평의 과정에서 소설은 작가의 것인 동시에 작가만의 것은 아니게 돼. 어쩌면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인식을 작품 속에서 캐내거든. 그의 비평을 읽는다는 건 이미 완성된 한 권의 책이 새롭게 다시 쓰이는 과정을 보는 것과 같아.


  그는 작가의 감추어진 의도를 해석하는 데 절절매지 않아. 이 소설이 잘 쓴 소설인지 못 쓴 소설인지 판단하는 것에도 크게 관심이 없지. 한 인터뷰에서 그에게 비평이란 “아주 작고 사소하더라도 그 작품에만 존재하는 가치 있는 인식을 개념화·논리화하는 것”이니까. 그가 되고 싶은 건 “정확하게 칭찬하는 비평가”야.

*[대학신문] 사랑으로 가득한 정확성의 아름다움, 정연우 기자와 인터뷰, 2022.12.04.


  그는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 혹은 다른 작가의 비슷하거나 완전히 다른 작품에 나란히 세워 비교하기도 하고, 철학, 역사, 심지어는 오늘날의 정치를 갈고리처럼 사용해 이 작품만의 “가치 있는 인식”이 가장 돋보일 수 있을만한 방향으로 독자를 끌고 가지. 그의 촘촘한 해석을 보고 있으면 비평하는 대상에 대한 열렬함이 느껴져. 마치 아이돌의 팬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앵글별로, 음방별로, 의상별로 영상을 보고 가장 잘 나온 부분을 캡처해 SNS에 올리는 것처럼. 이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관찰하고 쓰는지 나는 이 대목을 읽고 짐작해 봐.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즐겨 마시는 커피의 종류를 알고, 네가 하루에 몇 시간을 자야 개운함을 느끼는지 알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와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인가? 나는 네가 커피 향을 맡을 때 너를 천천히 물들이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네가 일곱 시간을 자고 눈을 떴을 때 네 몸을 감싸는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너를 어떤 느낌으로 적시는지를 모른다. (…) 어쩌면 너의 전부일지 모를 그 느낌을 내가 모른다면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 사랑이란 무엇인가. (…)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랑은 능력이다.

- 같은 책, 347-348쪽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너와 함께 사랑하고 싶은 마음. 어딘가에 있을 독자와 같은 느낌으로 묶이고 싶은 마음으로 이 사람은 비평을 하는 게 아닐까. 이 글이 수록된 소단원의 제목은 ‘느낌의 공동체’야. 3년 후에 내는 그의 두 번째 책의 제목이기도 하지. 그로부터 다시 3년 후에 출간되는 책의 제목이 ‘정확한 사랑의 실험’인 것은 당연한 흐름일지도 몰라. 너는 내가 된 적이 없고 나는 네가 된 적이 없는 우리가 같은 느낌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그게 어떻게 즐거웠고 어떻게 슬펐으며 어떻게 놀라웠는지 정확하게 말해야만 할 테니까. 이것이야말로 유능한 사랑이니까.


  간지에 대해 말하다가 사랑까지 와 버렸네. 문학을 이미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황홀하게 읽히는 책이겠지만, 나는 아직 문학의 어떤 점이 사랑스러운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단순히 있어 보이는 용도로라도 읽혔으면 좋겠어. 기타리스트들이 기타를 치기 시작하는 동기가 대부분 ‘멋있어 보여서’인 것처럼 간지란 낯선 무언가를 시작할 때 가장 열기 쉬운 입구잖아. 겉멋으로 읽히면 어때. 그래야 멋져 보이는 책도, 정말 멋진 책도 계속해서 세상에 나올 수 있을 거고, 그래서 읽는 내 모습에 취하다가도 나를 잊어버리고 책의 목소리에 빠져드는 멋진 경험을 계속할 수 있을 테니까. 독서는 있어 보이는 일인 동시에 정말 멋진 뭔가가 있는 일이야.


  벤자민 레 교수가 좋은 연애와 결혼을 위해 중요한 요소를 알아내기 위해 33년간 137개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내린 결론인데, 가장 행복하게 오래 만날 수 있는 커플은 서로에게 헌신하는 커플도 아니고, 서로가 편안한 커플도 아니고, 콩깍지가 단단히 씐 커플이래. 사랑하는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서로에 대한 ‘긍정적 환상’이라는 거지. 신혼의 행복을 오래 유지하는 비결은 어쩌면 서로의 간지를 갱신하는 데 있지 않을까. 언젠가의 저녁에 오빠가 소파에서 이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을 기대할게.



(20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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