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시립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독서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독서 마라톤대회’는 참가자가 코스를 선택하여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규칙적으로 독서기록을 하는 대회다. 독서를 마라톤화 시킨 이 대회는 코스마다 정해진 길이가 있다. 1쪽을 2m로 계산하여 책 6권 분량(3,500m)의 산책코스, 9권 분량(5,000m)의 걷기코스, 17권 분량(10,000m)의 단축코스, 35권 분량(21,100m)의 하프코스, 70권 분량(42,195m)의 풀코스까지 총 5개의 코스가 있으며 본인이 도전할 코스를 직접 정하여 3월부터 11월까지 자유롭게 독서 서평을 올리면 된다.
하프코스를 선택한 나는 9개월간 35권이라는 책을 읽고 독서기록을 남겨야 했는데 이는 참 호기로운 도전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일단 일을 저지르고 보는 나로선 이 정도의 도전쯤이야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계속해서 책을 읽었고, 독서기록 틈틈이 해왔으니 용기를 내봄 직했다. 그런데도 내가 호기롭다고 표현한 것은 그해 1월에 막내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두 아이와 신생아인 막내까지 돌보면서 과연 내가 책을 읽고 독서기록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포기하기에도 그렇다고 신청하기에도 고민스러웠지만, 내 안에 끓고 있던 도전에 대한 갈망이 다른 극의 자석에 미친 듯이 끌리듯 독서 마라톤대회를 끌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결과보다는 참여하는데 더 큰 무게를 둔 채 나는 호기롭게 독서 마라톤대회에 참가신청서를 내밀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책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책을 읽다가도 아이가 깨면 수유를 해야 했고, 기저귀를 갈아야 했다.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가 없으니 흐름이 끊어질 때마다 앞의 내용이 기억이 안 나 다시 돌아가 읽기를 여러 번 반복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책 읽기보다 더 어려운 일은 독서기록을 남기는 것이었다. 한 번에 줄줄이 써지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읽은 내용을 정리하고 요약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그래야만 보다 짜임새 있는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기간에 딱 맞춰 35권의 책을 읽었고, 35개의 독서기록을 남겼다.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지만,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만들어내자 나는 그 달콤함에 취하고 말았다. 그리고 또 다른 것에 도전할 용기와 힘을 얻었다.
어떻게 내가 신생아를 포함해 세 아이를 키우면서 9개월 만에 35권의 책을 읽고, 독서기록을 남길 수 있었을까? 다독가의 입장에서 봤을 땐, ‘한 달에 고작 4권 정도만 읽으면 되는 걸 가지고 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그것도 신생아 돌봄에 영혼을 갈아 넣어본 사람이라면 책은커녕 제대로 된 일상생활도 어렵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나는 한 달에 4권의 책을 읽었고, 독서기록도 남겼다. 그렇다고 평소 책 읽기 속도가 빠른 것도 아니다. 나는 거의 느림보 거북이 수준으로 책을 읽는다. 정독한다는 핑계로 꼭꼭 씹어 읽는데 앞의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는 습관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몰입해서 읽지 않는다면 나는 한 권의 책을 읽는데 꼬박 일주일을 투자해야 한다.
지금부터 내가 세 아이를 키우면서 9개월간 35권의 책을 읽은 비결을 소개하려고 한다. 책을 읽고 싶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면 말이다.
첫 번째 책을 잘 고르자. 나는 책을 잘 고르는 것부터가 책 읽기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흥미 있는 주제의 책을 선택해야 한다. 흥미 있는 책이란 ‘이 책이라면 끝까지 읽을 수 있겠다’라는 마음이 드는 책이다. 책 <공부머리 독서법>의 최승필 저자는 한 채널에서 독서초보자들을 위한 책 고르는 방법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도서관에서 대출 한도를 꽉 채워서 책을 빌려온 뒤, 그중 가장 끌리는 책을 딱 3페이지만 읽는다는 마음으로 독서를 시작하라고 했다. 읽다가 나와 맞지 않는다면 접고, 또 다른 책을 읽으면 되는 것이고, 내게 잘 맞는 책을 만나면 그 책을 계속해서 읽어나가면 된다고 한다. 책도 적금처럼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와 속도가 복리 이자처럼 불어난다. 그래서 독서를 시작할 때는 흥미 있는 책을 찾아 읽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 얇은 책을 고르자. 책 읽기에도 약간의 전략이 필요한데 특히 기한을 정해서 읽으려면 더욱 그렇다. 평균 250~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계속해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진도가 안 나가고 지칠 때가 온다. 독서가들은 이를 책 읽기의 권태기 ‘책태기’라고도 부르는데 이때 200페이지 안팎의 얇은 책을 읽으면 책장도 잘 넘어가고, 책 읽는 분위기도 환기가 된다. 책장이 잘 넘어간다고 해서 책 내용도 가볍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책의 두께를 떠나 책마다 주는 여운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글밥이 적은 책을 고르는 것도 하나의 팁이다. 예를 들자면 <100 인생 그림책>과 같이 그림과 글이 함께 실린 책은 뇌리에 더 선명하게 남는다. 그렇다고 35권 모두 얇은 책을 고르는 것은 곤란하다.
세 번째는 매일 읽자. 하루 10분이라도 매일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독서는 습관 들이는 것이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서가들의 집을 보면 집안 곳곳에 책을 두고 외출을 할 때도 가방에 꼭 책 한 권을 넣어 다닌다. 매일 읽었기에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이다. 나도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잠깐이라도 책 읽을 여유가 없는 날에는 화장실에 숨어 볼일을 보는 동안 그곳에 놓인 책을 읽었다. 10분간 책 읽는 것이 익숙해진 다음에는 20분, 30분, 1시간으로 점차 늘려가면 된다. 이를 습관화하면 어느 순간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목표한 것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서습관을 기르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마지막은 내가 하프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던데 가장 큰 도움이 된 방법이다. 종이책과 전자도서를 함께 읽는 것이다. 나는 이 방법으로 정말 많은 책을 읽었다. 막내가 신생아였을 때 대부분을 재우거나 수유하면서 보냈다. 그때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SNS를 들락날락하는 대신 전자도서를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신기하게도 허기진 내면이 채워지는 경험을 했고, 아이가 잘 때 틈틈이 종이책으로 읽은 것을 전자도서로 이어서 읽으니 책 읽는 속도도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탄력받은 날이면 새벽 수유 시간에 전자도서를 읽으면서 그야말로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끝나는 하루를 보냈다.
전자도서의 장점은 언제 어디서든 내가 읽고 싶을 때 여러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두운 곳에서 오랜 시간 보고 있으면 시력이 나빠지거나 눈이 시큰거리는 단점이 있어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book 리더기를 구매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편이 해외파병을 떠나기 전 내게 선물해줬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잘 활용하고 있다. 또 하나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은 전자도서관이다. 유료로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일 거라 생각하겠지만, 시마다 운영하는 시립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전자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도서대출증을 만들면서 가입하면 전자도서관에 있는 책을 모조리 다 무료로 이용할 수가 있다. 무료라고 해서 책이 별로 없거나 오래된 책만 있을 거라는 고정관념은 갖지 않아도 된다. 최신도서부터 인기도서까지 입맛대로 골라 읽을 수가 있으니 말이다. 나는 전자도서관을 알게 된 후, 유료로 더는 전자도서를 사서 읽지 않게 되었다.
위 네 가지 방법으로 나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 ‘독서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하프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꾸준히 책을 읽게 되었다. 내게 넘치는 시간이 있었던 것도 그렇다고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 것도 아니었지만, 나만의 방법으로 목표한 바를 이루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실 나는 20대까지만 해도 일을 위해 책을 가끔 읽을 뿐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책은 육아로 고립된 나를 다른 세상으로 연결해 주었다. 방 안에 앉아 70대 박막례 할머니의 부침개처럼 뒤집힌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나도 무언가 하기에 늦지 않았구나! 하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고, 임종을 3일 앞둔 시점까지 글을 써 내려간 故 김진영 철학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찾아보게 되었다. 책은 무엇보다 내가 품고 있던 오랜 꿈을 다시 꺼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잊고 있던 나의 꿈에 불을 밝히자 나만의 작은 세계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