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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셋맘 Jul 16. 2022

긍정언어를 사용하면

Part5. 다시 나에게 친절해지는 시간

 초보 엄마 시절 아이가 아프면 땅이 꺼지는 듯했다. 고열로 밤새 끙끙 앓는 아이 대신 아파주고 싶었고, 코가 막혀 밤잠을 설치는 아이를 보면서 조금이라도 편히 잠들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 마음은 아이가 자는 주변에 썰어놓은 양파를 놓아두거나 코를 뚫어주는 오일을 옷가지에 발라주는 것으로 대신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아이의 꽉 막힌 작은 코를 시원하게 뚫어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침이 밝아 밤새 짜증으로 잠을 뒤척인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하필 평소 아이의 진료 봐주시던 의사는 휴진이었고, 할 수 없이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받게 되었다. 그 의사는 아이의 꽉 막힌 코를 보자마자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면서 나무라기 시작했다. ‘왜 코를 빼주지 않았냐’, ‘엄마가 돼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지할 수가 있냐’, ‘엄마 때문에 아이 상태가 더 심각해졌다’라는 등 초보 엄마에게 의사는 감당하기 어려운 모진 말을 쏟아냈다.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을 삼키며 ‘제가 잘 몰라서 그랬어요’라는 말로 의사에게 사과하듯 진료받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나는 괴로움에 밤잠을 설쳤다. 한동안 ‘너 때문에’, ‘너 같이 무지한 엄마 때문에 애를 잡는다’라는 말은 나를 계속해서 괴롭혔고, 부정적인 말은 나를 무기력에 빠트렸다.



 부정적인 말에 힘은 실로 대단했다. 한번 시작된 부정은 순식간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내 하지 않아도 될 생각까지 하면서 내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나는 무지한 엄마야’라는 말은 ‘나 때문에 애가 더 아픈 거야. 난 엄마 자격도 없는 사람이야.’로 결론을 내리기까지 했다. 시간이 주는 약으로 한참이 지나서야 그 굴레에서 벗어났지만, 이따금 의사가 한 말이 떠올라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런데 주변 엄마들을 통해 그 의사에 관해 우연히 알게 된 이야기는 놀라웠다. 그는 어느 엄마에게나 부정적인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으로 같은 진단을 내리더라도 다른 의사에 비해 늘 심각하게 말한다고 했다.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고, 다시는 그 의사를 찾지 않는 엄마들이 많다고 한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다신 그 의사를 찾지 않았지만, 그가 내 마음에 낸 생채기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았다.



 책 <프레임>에 긍정언어에 대한 연구 결구가 나온다. 1932년 미국에서 180명의 젊은 여성들이 수녀가 되었다고 한다. 그 감격스러운 순간에 자신의 삶을 소개하는 간증문을 쓰도록 했는데 180명의 수녀가 쓴 간증문은 70여 년이 지난 후에 학자들의 손에 넘겨졌다. 연구자들은 간증문에 쓰인 단어와 문장을 분석하여 각 간증문이 얼마나 긍정적인 정서가 표현되어 있는지를 측정한 결과, 어떤 수녀들은 ‘매우 행복한’ 또는 ‘정말 기쁜’과 같은 단어들을 자주 사용했지만, 또 다른 수녀들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지를 말로 잘 표현하지 않았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긍정적인 단어를 많이 사용한 상위 25%의 수녀들 가운데 90%가 넘는 이들이 85세까지 장수했고, 긍정적인 단어를 적게 사용한 하위 25%의 수녀 중에서는 겨우 34%만이 생존해 있었다. 나는 이 연구결과를 통해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언어가 삶에도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확신했다.





 나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긍정 DNA가 충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도 육아로 심신이 지쳐있던 내게 의사의 부정적인 말은 나를 서서히 부정으로 시커멓게 물들였다. 부정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좋은 생각을 하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책 프레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선 언어습관부터 바꿔보기로 했다. 부정적인 언어 대신 긍정적인 언어를 의도적으로 선택해 쓰기로 한 것이다. 가장 먼저 사랑하는 아이들을 짐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단어 ‘독박육아’는 내 마음을 늘 불편하게 했다. 나는 ‘독박육아’ 대신 ‘단독육아’로 바꿔 쓰기로 했다. 내가 닮고 싶은 선배엄마이자 꿈친구인 한혜진 작가의 책에서 처음 ‘단독육아’라는 표현을 봤을 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독박육아’처럼 함께 해야 할 일을 온전히 혼자 뒤집어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체적으로 육아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독육아’라는 표현은 쓸 때마다 참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편도 나도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알아주는 것 같다.



 남 탓을 하며 외부로 문제를 돌렸던 ‘때문에’라는 말도 ‘덕분에’로 바꿔 사용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 때문에 애가 더 아픈 거 같아’가 아니라 ‘내가 밤새 노력한 덕분에 아이가 이 정도로 아프고 지나가는 거 같아’로 바뀌니 더는 나 자신이 자격 미달 엄마처럼 생각되지 않았다. 육아에 자신감도 생겼다. 나는 이 긍정언어를 남편에게도 적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육아로 예민해진 우리는 가끔 서로에게 상처를 줬는데 몸과 마음이 지쳐 관계가 쉽게 회복되지 않았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매일 늦기 때문에 내가 힘들잖아’라는 말 대신 ‘당신이 늦게까지 일해준 덕분에 우리 식구가 잘살 수 있어’라고 용기 내서 말 한 날, 평소 툴툴대던 내게 한없이 뾰족하던 남편이 긍정의 말로 화답해왔다. 남편의 따뜻한 말을 듣자 나는 큰 위로를 받은 느낌이 들었다. 한번이 어려웠지 계속해서 긍정언어를 사용하자 입에서 편하게 나오는 날이 찾아왔고, 말을 넘어 생각마저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밝고, 따뜻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내 작은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들어 보자. 혹시 부정적인 말을 즐겨 하고 있다면 그 말속 부정적 단어를 긍정적인 단어로 바꿔 말해보자. 단어만 바꾸어도 부정문이 긍정문으로 바뀐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일상은 훨씬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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