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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셋맘 Jul 07. 2022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는다는 건

Part5. 다시 나에게 친절해지는 시간

 하루 중 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아이의 하원 시간도 남편의 퇴근 시간도 아닌 택배가 도착하는 시간이다. 집마다 코로나로 인해 이동에 제약을 받으면서 온라인 구매가 늘어났는데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발발 이후 온라인 소비를 하는 국민이 두 배가량 늘어났다고 한다. 덩달아 택배량도 증가했는데 경제활동인구로만 한정하면 1인당 2.8일에 한 번꼴로 택배를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집이나 앞집을 봐도 매일 문 앞에 택배로 산을 이루고 있으니 2.8일에 한 번꼴로 이용한다는 게 거짓은 아닌 듯 보였다. 택배기사님이 문 앞에 택배를 놓고 가실 때면 나는 내 돈 주고 내가 구매한 물건이지만, 꼭 선물 받는 듯 기분이 들어 참 좋다. 가끔은 고된 육아 중에 이렇게라도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할 때가 있다. 도착한 택배는 주로 내가 정리하는데 생각하고 보면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것도 도착한 물건을 정리하는 것도 모두 내 몫이었다. 귀찮을 법도 하지만 내게 의사결정이 있는 그 일이 나는 몹시 즐거웠다.



 문제의 그 날은 도착할 택배가 며칠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아 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저녁준비가 한창일 때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오는 남편의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평소처럼 짧은 인사를 나눴고, 나는 다시 저녁준비에 몰두했다.


“여보~ 뭐 택배 올 거 있어?”


남편이 식탁 위에 묵직한 무언가를 올려놓으며 말하는 듯했지만, 저녁준비에 집중하느라 나는 남편의 말을 듣고도 바로 답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 무슨 카드가 있는데? 뭐라고 적혀 있네.”


카드라는 말에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뒤돌아봤더니 식탁에는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택배가 놓여 있었다. 지인이 육아로 고생하는 내게 선물을 보냈다고 하여 몇 날 며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토록 기다리던 선물이 도착했음에도 나는 식탁에 놓인 선물을 보자마자 잔뜩 화가 나서 남편에게 소리치고 말았다.


“여보! 왜 남의 선물을 말도 없이 뜯어?”


고운 포장지를 홀라당 벗은 채 민낯을 하고 있는 선물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거칠어진 내 말투에 남편은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아니. 정리해주려고 그랬지. 그런데 우리가 남이야?”


물론 남은 아니지만, 남편이 내 허락 없이 내 물건에 손을 댔다는 것에 나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딱 봐도 선물이잖아! 받는 사람도 내 이름이고! 그러면 내가 뜯을 수 있게 놔뒀어야지!”


남편은 선물 포장지 하나로 흥분하는 내가 어이가 없었는지 한 마디 내뱉고 방문 쾅 닫으며 들어가 버렸다.


“다음부터 택배 상자는 당신이 다 정리해!”



 이후 며칠 동안이나 나는 화가 풀리지 않아 남편을 볼 때마다 눈을 흘겼다. 도대체 그깟 선물 포장지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화가 난 것일까?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은 평소 내 생활 아니, 엄마들의 생활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엄마가 되고 원하든 원치 않든 내 시간과 물건은 물론 공간까지도 모조리 다 아이 그리고 남편과 공유하며 살아야 했다. 점차 내 것이 사라지면서 작은 물건 하나조차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때때로 우울감을 느꼈다. 그런 내게 선물은 단순한 물건 그 이상의 가치였고, 그것을 남편 마음대로 뜯었다는 것에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남편이 고의로 그런 게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내 이름으로 도착한 그것도 예쁘게 포장된 물건을 내 손으로 직접 뜯을 수 없었다는 것에 자유마저도 박탈당한 기분이 들어서 왠지 억울했다.



 내 소유의 물건 외에도 사라진 것이 있었으니 바로 내 시간과 공간이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참 좋아한다. 그 시간에 주로 책을 읽거나 평소 보고 싶었던 텔레비전프로그램을 보는데 아이가 태어나면서 내 시간이 싹 사라졌다. 아이가 낮잠이나 밤잠에 들지 않는 이상 시간 확보는 어려웠고, 겨우 낮잠이라도 재우고 책을 펼라치면 아이는 깨서 울었다. 그런데 이것도 행복한 수준이었다. 아이가 하나에서 둘, 셋으로 늘면서 아이의 낮잠 시간에 책을 펴는 대신 저녁에 먹을 반찬을 만들어야 했다. 남편 것과 아이 반찬 몇 개를 만들고,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아이는 어김없이 깨서 나를 찾았다. 잠깐의 휴식도 허락되지 않던 때,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공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옷 방 한쪽에 마련해놓은 책상에서 책을 읽고, 일했다. 그 공간은 아이가 태어나고 주인이 바뀌었는데 방 안 가득 아이의 물건으로 채워진 뒤 그 어디에도 내가 머무를 작은 틈조차 없어 보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식탁에서 해결했던 시점이 말이다. 책을 읽는 것도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것도 밥을 먹는 것까지도 모조리 다 식탁에서 해결했는데 온 사방으로 열린 구조인 그곳에서는 무엇을 하더라도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식사 때가 되면 식탁 위에 올려둔 물건을 치웠다, 펼치기를 반복하는 것도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는 별다른 수가 없었으니 식탁이라도 있는 것에 나는 그저 감사해야만 했다.





 아이가 자박자박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또 다른 공간에서 사생활 침해를 받게 되었다. 바로 화장실이다. 나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려는 아이는 내가 볼일을 볼 때도 기어이 화장실까지 비집고 들어와 까만 눈으로 나를 빤히 응시했다. 괄약근과 아랫배의 힘 조절이 중요한 순간 누군가와 한 공간에 있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사랑스러운 내 아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정말 혼자이고 싶었다. 아이를 문밖에 두고 볼일을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문을 두드리며 내가 나올 때까지 대성통곡하는 통에 생리현상에 집중할 수도 그렇다고 아이를 그대로 놔둘 수도 없는 상황이 나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누군가는 포기해야 했고, 그게 늘 내가 되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우리 집 화장실 문은 언젠가부터 항시 개방 상태가 되었고, 그 덕에 나는 임신 때도 없었던 변비를 얻었다.










내 시간과 공간을 사수하라



 엄마가 된 후로 내 이름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도 서글픈 일인데 내 시간과 공간마저 사라져 버린다면 정말이지 나도 없어질 것만 같았다.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내 마음의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정도면 딱 그 정도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내 것을 갖는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그런데도 나는 내 시간을 찾기로 했다. 단 몇 시간이라도. 단 몇 분만이라도.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내가 쓸 수 있는 숨은 시간을 떠올려봤다. 역시 아이들이 잠든 밤이 제격이었다.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커피 한잔에 책을 읽거나 맥주 한 캔에 드라마를 볼 때면 너무 좋아서 시간 가는 게 아까울 정도였다. 그런데 밤 시간을 즐기다 보면 취침시간이 점점 더 늦어진다는 게 문제였다. 머리로는 딱 한 시간만 보고 자야지 했지만, 몸은 두세 시간이 넘도록 그 자리에 옴짝달싹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런 일이 빈번해질수록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수면 부족에 시달리자 하루를 시작함과 동시에 ‘피곤하다’라는 말이 쉴 새 달고 살았고, 이대로 지속하다가는 내 시간을 즐기는 게 아니라 내 하루를 망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시간대를 물색해보기로 했다.



 내 하루 일과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다시금 비는 시간이 보였다. 바로 새벽 시간이었다. 완벽한 올빼미형 인간인 내가 새벽 기상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었지만, 내 시간이 간절했던 터라 단 며칠이라도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새벽 기상은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지고, 오후 내내 졸음이 쏟아지는 부작용을 낳았지만, 일주일을 넘기자 새벽 시간대에만 누릴 수 있는 상쾌함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 상쾌함을 맛보기 위해 나는 매일 아이들이 잠들 때 함께 잤고, 아이들이 깨기 전에 일어났다. 나는 이 시간을 ‘연결되지 않을 권리’의 시간이라 생각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란 업무시간 외에 업무와 관련된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노동자의 여가시간 보장과 사생활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프랑스가 세계 최초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제화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새벽 시간은 육아와 분리되어 다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나를 위해 쓰는 내 시간이었다. 아침을 일찍 시작한 덕분에 하루가 더 여유로워진 것도 새벽 기상의 최대 장점이었다. 하지만 이것에도 꾸준한 노력이 필요했다.



 나만의 공간도 만들었다. 식탁 위에서 책을 읽을 때면 식탁 한편에 몇 권의 책과 독서대, 스탠드까지 올려놓았다. 식사 때가 되면 올려둔 물건을 옮기면서 흐름도 함께 깨졌는데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고정적으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커졌다. 그때 내 눈에 띈 것은 식탁만큼 널찍한 안방 화장대였다. 화장대 위에는 화장품 대신 아이들 장난감 몇 개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나는 텅 빈 화장대를 보면서 여기가 나를 위한 공간이라는 것을 예감 아이들이 잠든 새벽 시간에는 다소 행동에 제약이 따를 수는 있는 곳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엄마가 머무르기에 아이들이 자다 깨더라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나는 화장대에 있던 아이들의 장난감을 치워버리고 책과 독서대, 스탠드, 그리고 필기구까지 나만의 방식으로 정렬해놓고 공간의 자기화를 실현했다.





 책 <카운터의 일기>에서 바리스타들은 최적의 동선을 파악해 공간을 자기화시킨다고 한다.


일하는 사람이 작업 공간을 자기화하는 것은 실용성 면에서 타당한 일이다. 특히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종류의 작업을 효율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루에도 백 번이 넘게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조금 과장하자면) 눈 감고도 저절로 손과 발이 움직여 음료를 만들어내고 계산을 하곤 하는데 이때 계산대의 높이가 5센티만 낮아져도, 에스프레소 머신의 각도가 10도만 틀어져도 움직임에 제동이 생기고 속도가 느려진다. 그렇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실용성을 넘어선 차원의 ‘자기화’이다. 한 사람이 서 있는 공간은 겨우 가로세로 30센티미터 남짓의 작은 공간이지만 그 작은 존재가 움직여 다니며 그보다 큰 공간에 자신의 인장을 찍어둔다.



 공간에 인장을 찍어둔다니! 이는 바리스타들의 세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기 공간을 갖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대목이었다. 나는 평소 습관대로 동선을 고려해 물건을 배열하고 내 공간에 인장을 찍은 후 더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한동안 내 물건으로 가득 찬 공간을 보면서 나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해방 타운>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 배우 유선이 출연한 적이 있다. <해방 타운>은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절실한 기혼 연예인을 출연시키고 그동안 잊고 지낸 결혼 전의 ‘나’로 돌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예능프로그램이다. 유선은 자신의 취향대로 꾸며진 집에 들어서자마자 집안 곳곳을 둘러보고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눈물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울컥하는 모습을 보인 유선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너무 좋다’였다. 눈물을 흘린 이유를 제작진이 묻자 그녀는 결혼 후 처음으로 ‘오직 나만을 위한 공간’에 들어선 것이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백번이고, 천 번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엄마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 엄마였다. 나는 미약하게나마 집 안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그곳에 머물렀고, 그 공간에서만큼은 자유롭게 내 생각과 꿈을 펼치게 되었다.



출처 topstarnews (JTBC 예능 '내가 나로 돌아가는 곳- 해방타운')



 작은 물건 하나조차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나는 조금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지만, 이것은 결코 이기적인 일이 아니었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결국 엄마도 살고 아이도 사는 길이었다. 엄마도 행복하고, 아이도 행복하게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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