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족이니까
아침부터 가족 단체 메시지 방에 언니가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따로 언니 얘기를 들어보니 전날 엄마와 전화로 다퉜다고 했다. 엄마와 거의 싸우지 않는 나와 달리, 언니는 엄마와 참 지겹도록 싸웠다. 이번엔 상황이 꽤 심각했던 모양이다. 엄마가 눈물까지 보이며 “자식 다 필요 없다”라고 했단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었다. 우리가 어릴 때, 외할머니가 집에 오시면 엄마와 자주 싸웠는데 그럴 때마다 외할머니는 “자식 다 필요 없다”라고 하셨다. 나는 할머니한테 모질게 구는 엄마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어느새 엄마는 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그 말을 하고 있었다.
1970년생인 엄마와 1991년생인 언니는 친구처럼 지낸다. 언니는 평소에도 시시콜콜 자기가 겪은 일을 엄마에게 잘 말하는 편이다. 이번에는 해결이 끝난 회사에서의 실수담을 말했는데 웃자고 한 말에 엄마는, “세상이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너그럽지 않다”라며 잘 마무리된 일을 다시 부풀리고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며 걱정했다. 언니는 서른 살이 넘은 딸을 바보로 아느냐고 엄마에게 화를 냈다. 그 전에도 엄마의 지나친 걱정은 자주 싸움의 원인이 되곤 했다.
생각보다 화가 많이 났는지 엄마는 언니의 사과 메시지를 받고도 하루가 다 가도록 조용했다. 그러다 한밤중에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의 짐작과는 달리, 엄마가 눈물을 흘렸던 이유는 할머니가 생각나서였다. 엄마는 할머니와 싸우고 나서 절대 먼저 사과하지 않았다고, 특히나 나이가 들면서는 미안하다는 말이 더 안 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할머니에게 그때의 일을 사과할 수도 없다며,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해 준 큰딸이 고맙다고 했다.
할머니와 엄마의 싸움이 줄어들기 시작한 건, 할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으신 이후부터였다. 다시 말해, 할머니의 기억력이 감퇴하면서, 점점 더 어린아이가 되어가며 자식에 대한 걱정이 줄면서였다. 1940년대생 할머니는 자식들보다도 뛰어난 기억력을 자랑했는데, 이제는 엄마가 과거의 일을 사과하려 해도 할머니는 그게 무슨 일인지 기억도 못 하실 것이다.
한 살씩 나이를 먹으며 우리는 많은 면에서 둔하고 무감각해져 가는 반면 섭섭함은 더 예민하게 느끼는 것 같다. 별말 아닌 말 한마디를 넘겨짚어 거기에 더 크게 의미를 부여한다. 나는 부모님께 괜한 걱정을 끼치기 싫다는, 혹은 싸우기 싫다는 이유로 말을 아껴왔다. 그래서인지 엄마와 싸우는 언니를 보며 나만큼은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고맙다”라는 엄마의 문자는 예상 밖이었다. 엄마와 자주 싸우는 언니보다, 싸울까 봐 말을 아끼던, 표현에 인색하던 내가 오히려 더 불효자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90대 노인이 70대 자식을 “아가”라고 부르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자식은 수염이 허예도 첫걸음마 떼던 어린애 같다”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건 아닌가 보다. 비슷한 북한 속담도 있다. “자식이 여든 살이라도 세 살 적 버릇만 생각난다.” 1940년대생 부모와 1970년대생 자식, 1970년대생 부모와 1990년대생 자식. ‘00년대생’ 자식과 부모는 자식이기 때문에 그리고 부모이기 때문에 어쩌면 남과는 다른 이유로 평생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냥 좀 더 다퉈보는 건 어떨까. 사과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오늘 싸워도 내일 또 전화하는 뻔뻔함, 싸워도 금세 또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언니의 용기가 내심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