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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글 Jul 02. 2024

양치 싸움

나의 PH 레코드

H. 올해로 10세 치와와. 사람이든 동물이든 나이가 들수록 특유의 성격이 더 잘 드러난다고 했던가.. H는 갈수록 예민하고 으르렁댄다.

특히 요즘은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데 바로 ‘양치’ 때문이다.

개도 앙치시켜?라고 묻는 분들도 있지만, 양치는 아주 중요하다. 수명과도 관련이 있을 만큼!

그걸 알면서도 솔직히 어릴 땐 그래, 아직 어리니까.. 하면서 슬쩍슬쩍 양치해 주는 걸 모른 척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보니 치석이…

속상했고, 이것 때문에 우리 H 수명이 줄면 어쩌지? 걱정과 죄책감 x10000000000

시간은 흐르기만 할 뿐 되돌리지 못한다는 걸 너무 쉽게 간과했다. 그래서 그걸 자각한 순간부터 양치를 열심히 시키고 있다. 잠들기 전 루틴..

H는 당연히 양치하는 걸 싫어하지만, 해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고, 얼마나 으르렁대는지 내 손을 막 물려고 한다.

나는 애원 같은 성질을 내면서 양치를 시킨다.

”H!!! 오래 살려면 양치해야 돼. 오래 안 살 거야? 으르렁대지 마. “

그러면 더 으르렁댄다. 쉽지 않은 강쥐다. 흡사 서로 이빨을 드러내며 맞짱 뜨는 것처럼 보인다. 오래 사는 것보다 당장의 양치가 싫은 게 더 크겠지. 그걸 알면서도, 평소엔 그렇게나 마음을 잘 알아주더니 왜 이렇게 마음을 몰라주나, 원망스럽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양치시키는 걸 알아서 밥을 먹고 나면 재빠르게 어딘가로 사라진다. 이불을 들춰 보면 똬리를 틀고 있는데, 그냥 손으로 들었다가는 손이 남아나질 않을 거다. 물론 아직 그 정도로 물려 본 적은 없다. 이빨에 붙은 치석을 내 손톱으로 떼어 내다가 물린 적은 있지만…

온 힘을 다해 으르렁대는 모습을 보면 양치가 오죽 싫으면..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포기할 수가 없다. 너는 노견이고, 나는 너를 오래 보고 싶으니까!

오늘도 어떡하면 양치를 시킬까, 보이지 않는 기싸움, 아니 보이는 싸움을 한다. 이불 밖으로 나오는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아니면 간식으로 유인하거나.. 마치 첩보 스릴러 작전을 방불케 한다.

양치를 꼬박꼬박 시킨 이후로 사이가 아주 안 좋아졌다. 사이가 좋아지려면 맛있는 걸 맘껏 주고, 양치는 안 시키고, 예뻐해 주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건 안 된다. 왜냐면 오래오래 살아야 하니까.

H보다 한 살 오빠인 말티즈 P는 양치할 시간이 되면 시키지 않아도 줄을 서 있다. P는 오래 살고 싶은 거다. 남은 이빨이 몇 개 없어서 지키고 싶은 거다. 그러니까 H, 오빠 보고 배워. 네가 아무리 으르렁 대도 나는 양치를 시킬 거야. 오래오래 같이 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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