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한글 Sep 04. 2019

씨앗 같은 이빨처럼

변해가는 걸 붙잡을 순 없겠지?


나는 누군가의 앞에서 우는 게 정말 싫었다.

초등학교 때는 눈물이 나려고 하면 냅다 화장실로 뛰어갔다. 문을 잠그고 아무도 모르게 울었다. 소리 없이 우는데도 왠지 모르게 울음을 들킬 것 같아 괜히 기침하는 척도 했다. 가족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남 앞에서보다 더 눈물을 보이기 싫었다.

요즘 들어 눈물이 더 많아졌다. 울지 말아야지, 꾹 참으면 그게 마치 눈물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눈물이 쭈욱 난다. 물론 여전히 가족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지만. 이러다간 눈물샘이 그냥 터지고 말까 봐 무섭기까지 하다.


야근하고 집 가는 길에, 폰을 뒤적이다가 내가 지금껏 찍었던 풍경 사진들을 봤다.

사진을 보다 보니 그때의 감정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올리고 보니 어느새 피드가 훅 늘었다. 그 피드를 보고 있자니 내가 이런 걸 찍는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나는 어쩌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게 되었을까, 왜 나는 그 풍경을 박제해두고 싶었던 걸까.

오늘도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사진을 보고, 사진을 올렸다. 눈이 정말 피곤했지만, 그 사진들로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지나온 시간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나 보다. 사진을 보고 내가 나를 알게 된 기분이었다.

카메라를 사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아는 건 하나도 없다. 괜히 사려니까 금액이 걱정되기도 하고... 그래도 멀지 않은 시기에 카메라 하나 장만하고 싶다.


우리 강아지들도 자꾸 나이를 먹으니까, 많이 많이 사진을 찍어줘야지. 오늘 내 방에 무슨 씨앗 같은 게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일이의 이빨이었다. 앞니가 빠져 버린 것이다. 나보고 왜 늦게 왔냐며 여전히 잘 짖는데 변한 게 없어 보이는데도 시간이 흐르고 또 변한다.


내가 요즘 들어 눈물을 참지 못하는 것처럼, 언제부턴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또 무엇이 변할까

일이의 이빨은 더 좋아지지는 않겠지. 씨앗 같은 이빨을 다시 잇몸에 심어주고 싶다. 그럼 시간이 흐르면 자라나면 좋을 텐데. 지금의 모습을 많이 담아줘야지.


그리고 우울한 퇴근길에는 사진을 봐야지.

잠시, 잠깐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 시간을 발견한 것 같아 다행스럽다.

오늘도 우울했으므로 사진을 만땅 올렸다.


우울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중이다.

실제로 극복은 못하더라도 우울을 잠깐 잊을 순 있는 것 같아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존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