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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글 Sep 04. 2019

뒷굽

이사를 하고 나서

이사를 하고 나니, 집에 가는 길이 더 멀어졌다.

분명히 어디에선가는 이곳도 가까운 곳일 텐데 어디에서나 멀게만 느껴진다.

오랜만에 조금 멀리 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환승하러 가는 구간에서 시 한 편을 읽었다.

‘뒷굽’이라는 제목이 좋아서 눈길이 갔다.

‘뒤’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슬픈 느낌과 결이 같아서 자꾸 뒤돌아보게 만드는 묵직함이 있다.

대부분 한쪽으로 닳아있는 뒷굽

땅과 내가 스친 흔적 같아 내 무게를 직감하며 안도감이 들다가도

기울어진 방향에 불안감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닳을 거면 공평히 닳지, 왜 한쪽만 닳아 없어질까.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이 문장과 함께 기다리던 지하철에 올랐다.

새 신발은 평평해서 아프고, 헌 신발은 기울면서 익숙해지는걸.

왜 꼭 좋은 건 좋은 게 아니고 싫은 건 싫은 게 아닌지

좋은데 싫고 싫은데 좋고, 기울면서 평평해지고 싶다면서 기울어지고만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내가 기울어지고 있는 방향은 어디일까?

문득 내 가장 낮은 곳이 내 물음과 닿아있다는 걸 알게 됨을 자각한다.


신은 신발의 뒷굽도 여전히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그렇게 나는 기운 채로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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