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의 소란
출근 때는 버스를 타고(무려 한 시간 사십 분 거의 다른 지역 가는 수준) 퇴근 때는 지하철(7호선-2호선-6호선)을 탄다. 이유는 하나. 막히니까. 나는 집에 빨리 가고 싶으니까. 퇴근길 지하철은 지옥철 그 자체이고, 그래서 그런지 싸움이 나는 것도 많이 봤다. 어깨만 부딪혀도 눈에서 불을 뿜는 사람들, 아무와도 부딪히지 않기 위해, 아무 분란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항상 움츠리며 나를 보호하느라 몸이 쪼그라든 느낌이다. 건드리면 폭발할 듯한 사람들, 숨겨왔던 불을 뿜어내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퇴근길 지하철에 오른다.
야근을 하고 평소보다 늦게 지하철에 올랐다. 자리가 꽤 있었다. 오. 재수. 운이 좋았다. 사실 운이 좋다기보다는 일을 더 해서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기 때문이겠지만 좋게 좋게 생각해야지. 환승하고 또 환승하고 6호선에 올랐다. 이제 6호선만 견디면 집에 갈 수 있다 싶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엄청 큰 소리로 뭐라 뭐라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가 나는 오른쪽을 봤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뭐라고 계속 큰 소리를 냈다.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어수선한 이 시국에 마스크를 코밑으로 쓰고 침을 어디까지 튀기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을 유쾌하게 볼 리 없었다.
“아 c바!!!!!!!”
그때 갑자기 더 큰 소리가 들렸다. 나는 너무 놀라서 몸을 들썩였고 들고 있던 폰을 떨어뜨릴 뻔 했다. 마주 보고 앉은 사람이랑 눈이 마주쳤는데 그 사람도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있었다. 아마 내 눈도 그랬겠지.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이번엔 왼쪽이었다. 사람들 가운데 앉아 있는 어떤 아저씨가 누구랑 통화를 하면서 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온갖 욕설을 하더니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승객들을 향해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전화통화를 하다가 욕설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나(그래도 너무 큰 소리였다) 싶었다. 죄송하다고 했으니 누가 더 뭐라고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모두들 시선을 뗐다. 그런데 갑자기 또 큰 소리로 욕을 했다. 다들 또 너무 놀랐다. 폭발 직전의 눈초리로 그 아저씨를 쳐다봤다.
“아이 c 바 개xx야 &!@&?::.?&@”
통화를 하면서 계속 심한 욕설을 했다. 취객인가 싶었다. 술에 취해서 술주정을 하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술에 취해 보이진 않았다. 너무 멀쩡한 얼굴이었다. 아저씬 그러다가 다시 또 승객들을 향해 사과를 했다.
“아 진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더니 통화하고 있는 사람한테, 자기가 지금 지하철이니 나중에 통화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상대방이 그 말을 안 믿었나 보다. (나 같아도 안 믿었을 듯. 지하철인데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한다고?! -이 심정)
“아 지하철이라고! 지하철 맞다고!!! 이 c 바 ㅈ 같은 놈 &@(;?$@(::$&”
그러더니 옆에 있는 아주머니한테 “여기 지하철 맞습니까 아닙니까? 맞습니까 아닙니까?” 해서 아주머니가 작게 “맞아요” 하니까, “더 크게! 더 크게” 이래서 당황한 아주머니가 그 말대로 더 크게 “지하철 맞아요!!!!!”하고 자리를 피했다.
뭔가 되게 열 받으면서도 웃기기도 하고 짜증 나면서도 뭐지 싶은 상황이었다. 마치 공연장에서 호응을 유도하는 래퍼 같은 모습이었다.
다른 나이 드신 승객 분이
“아 오늘 무슨 날인가. 이상한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 했고 다른 승객들도 내심 그 말에 다 동의한 눈치였다. 왜 하필 이 칸에, 평소보다 사람도 없어서 한가하고 조용한 이 와중에, 두 명이나...(그 와중에 처음에 시끄러웠던 오른쪽 아저씨 역시 계속 큰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왼쪽 아저씨는 욕설을 계속하고, 사과를 계속했다. 1인 2역처럼...
나를 포함한 승객들은 마스크를 낀 채 눈만 굴리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혼자 욕을 하고 혼자 사과하는 그 아저씨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무도 그 답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의문이 들었다.
저렇게 욕이 나올 정도로 기분이 안 좋으면 전화를 끊으면 되지, 왜 쌍욕을 하면서 계속 전화를 붙들고 있지? 쌍욕을 하고, 사과를 하고, 분노하고, 미안해하고.
어느새, 승객들은 각자 앞을 보고 있었지만 귀는 그 아저씨를 향해 열어 두고 있었다. 아저씨는 왜 자기만 엄마를 모시냐고, 왜 c바 xxxxxxx 자기만 그러냐고, 개ㅈ 같은 것들이라며 전화통에 대고 욕을 퍼부었다(사과도 잊지 않고 하면서). 그리고 마치 승객들에게 말을 하듯이, 자기는 분노 조절 장애가 있다고 했다.
전화통화를 하는 상대방이 아닌, 꼭 그 자리에 있는 승객들에게 하는 말 같았다.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의문을 품은 채 묻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걸 호소하듯이.
술에 취한 것 같지도 않았고, 사과를 한다는 건 자기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고(사과인 척일 수도 있겠지만 진심 같았다 그 순간엔), 지하철에서는 이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의 이유를 설명해 줄 병명이었다.
아저씨는 내려야 할 곳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내려야 할 때 전화를 껐다.
의문이 들었다.
내려서 통화하면 될 걸. 끊임없는 사과를 하면서까지 굳이 지하철 내에서 통화를 한 이유는 뭐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누가 들어주길 바란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신의 병을, 자신의 상황을, 자신의 삶이 ㅈ같음을.
마침내, 그 아저씨가 내릴 곳에 지하철이 다다랐고
아저씨는 내리기 전에 큰소리로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시끄러운 동행이 끝나나 보다, 승객들이 안도할 때
“아 c바 사는 게 ㅈ 같네!!!!!”
아저씨는 다시 한번 크게 소리를 지르고 내렸다.
아저씨는 내리고 지하철 문은 닫혔는데, 아저씨의 그 소리만이 메아리처럼 열차 안에 남았다.
남은 승객들과 함께.
서로를 모르는 승객들은 서로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각자, 자신의 ㅈ 같은 삶을 곱씹고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온했던 퇴근길의 소란,
아직 내리지 않은 오른쪽 아저씨는 여전히 궁시렁대고 있었다.
누군가는 지르고, 누군가는 궁시렁대고
모두가 ㅈ 같은 삶을 말하고 있었다.
사는 게 꽃 같고 사는 게 ㅈ 같은 건
한 글자 차이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