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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글 Sep 08. 2019

소설_<희망의 불이 밝았습니다>

반은 실제, 반은 허구



집으로 가는 버스는 많다. 다만 최대한 사람이 없는 걸 타고 싶을 뿐이다. 영도에 왔다고 현에게 연락을 해볼까. 버스에 몸을 싣자마자 금세 지나버린 영도대교를 바라본다. 내가 모르는 대교다. 하마터면 현과 자주 걸었던 영도대교라 생각할 뻔했다. 내가 서울에 있는 동안 새로 지었다고 들었다. 뒤늦게 방금 지나온 다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고 생각한다. 이미 지나왔기에 하는 생각일지 모른다.

 도착한 집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다. 그제야 크게 숨을 쉰다. 마치 도둑이 된 기분이다. 4학년을 한 학기만 남겨둔 상황에서 왜 휴학을 하려느냐고 부모님은 반대하셨다. 4학년이 한 학기밖에 안 남았으니까 하려는 건데 너무 당연해서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메고 온 기타는 또 어떤 눈초리를 견뎌야 할까. 오랜만에 고향에 와서 하는 거라곤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는 것뿐이다. 가만 누워 손을 있는 힘껏 뻗어도 천장에는 닿지 않는다. 정말 있는 힘껏 해도 말이다. 이건 부모님도 당연하다고 하실까.

‘얼마만이야.’ 반가운 마음으로 마트에 도착했을 때 익숙한 곳이 낯선 이름을 매달고 서있었다. 에누리 장터. 원래는 탑마트였던 에누리 장터.

 빙빙- 사지 않을 것들을 거쳐 과자가 무더기로 쌓여 있는 곳 앞에 선다. 먹고 싶지가 않다. 분주히 장을 보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살 게 없다. 빈손이 허전해 대충 보이는 빵을 집어 든다. 아줌마들이 여기는 싸서 좋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탑마트가 한순간 에누리 장터가 되었다.

 그날도 현과 함께 빵을 사서 나오며 나는 현에게 아버지는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현은 말했었다.

“우리 아빠는 파업 안 해서 괜찮아.”

 “파업을 안 하다니?”

 나는 바보처럼 되물었다. 현은 약간 당황해하며 아빠는 평소처럼 계속 일한다고 했다. 말의 공백을 눈치채기 전에 그러냐고 얼른 대답했지만 아마 현은 알았을 것이다. 내가 모든 사람이 파업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파업을 하지 않는 건 일종의 배반 행위라고 생각했음을.

 간간히 들리던 노동자들의 해고 소식, 고공 크레인 농성, 그리고 희망버스.


 희망을 몰고 오겠다던 버스가 오던 날 전경들은 탑마트 입구에 쭈그려 앉아 빵을 먹고 있었다. 아빠와 내가 우리 집까지 가는 10분도 안 되는 거리를 지나는 동안 3번의 신분증 검사가 있었다. 아빠는 반복되는 검사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반복되는 일을 했다.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를 통제하고 희망버스와 경찰은 맞붙었다. 우리의 외출을 삼가 달라는 방송이 나올 때 나는 서울 소재지의 대학엘 가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했다. 바깥의 소리를 들으며 저기 현의 아버지 목소리는 없겠다고 생각하며. 문만 열면 두 눈으로 볼 수 있었지만 나는 가만 앉아 공부를 했다. 보지 않고 들리던 소식들, 어른들의 말들, 그리고 현의 아버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지면서 훗날 역사책에 오늘도 기록될까 궁금해하면서 그럼 현의 아버지는 반역자일까 생각하다 놀라며 지웠다.

 경찰이 물대포를 쐈고 그 속엔 약간의 최루액이 들어있었다고 그렇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들었다. 탑마트 앞에 포대자루처럼 놓여있던 전경들이 떠올랐다. 빵 먹던 힘으로 방패를 들고 시위를 막았으려나. 막던 방패를 던지고 집에 가고 싶었을까. 고작 지금의 내 나이였을 사람들.

 나에게 하얀색이던 희망버스와 검은색이던 전경들이 뒤섞인다. 변함없이 친하다고 생각했던 나와 현의 사이도 그렇게 뒤섞이다 희미해져 버린 느낌이다.


 이어지는 생각을 떨쳐내며 고개를 들자 눈앞에 커다란 획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얼마 전에 생긴 부산항대교다. 가슴이 턱 막힐 정도로 화려하다. 그 뒤로 불빛들이 있다. 불빛 하나, 둘, 셋, 가늠해보다 고공 크레인에 눈이 가 닿는다.

 화려한 대교 뒤로 고공 크레인의 빈 소리가 요란하다. 4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바뀐 것이 여럿이다. 내일 다시 에누리 장터에 가봐야겠다. 예전보다 얼마나 싼 걸까.

 곳곳에 희망이 피었다. 더 이상 희망버스가 오지 않아도 될 만큼. 그리고 현은, 현의 아버지는 아직 이 희망찬 곳에서 살고 있을까.


 겨울이 다와 가는 탓에 어둠이 짙다. 더욱더 짙었으면 한다. 저기 저 빛은 너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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