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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Mar 31. 2024

집짓기 21주 차

전기와 배관작업. 수정 없는 공사는 불가능

95일 차 2024년 3월 25일 월, 7도/15도, 비

1. 설계미팅 - 전기스위치/콘센트 설치 최종 확인
2. 설계감리 - 스위치/콘센트 입선 및 위치조정
3. 서울시 안전점검대비 시설물 확인

명일 : 설비. 서울시 안전점검

좌식용 샤워기 위치 조정
계단 센서등 위치잡기 / 스위치, 콘센트 위치 조정
3, 4층, 옥탑 안전 바 설치

전기 스위치와 콘센트 위치 잡는 건 참 어렵다. 시공 초반부터 위치를 고민해야 하고 내장작업 초기에 확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아직 무엇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쓸지가 다 정해지지 않았으니, 이곳 이곳 말을 하면서도 뭔가 불안하다. 큰 가전들은 애초에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고 위치를 잡아야 해서 대개 그냥 정해지지만, 문제는 침대 옆, 책상 옆 등 당연히 전기가 필요하거나, 필요할 '어떤 곳'들이다. 당연히 필요한 위치는 '어느 쪽이 좋지?...'로 생각을 시작하면 그것도 고민거리가 되어 노트북, 휴대폰 충전기, 스탠드, 아이패드 충전지 등등 책상 위에 올려질 모든 기기들을 두고 어디가 편할지 동선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본다. 3구는 되어야겠네, USB 타입 추가해야겠네... USB-C 타입은 안 나오나?! @#$?%&


아파트의 전기스위치와 콘센트를 쓸 때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공동주택이니 많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담아서 잘 불필요하 고민을 없애주기도 했지만, 비슷비슷한 레이아웃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걸 좀 바꿔볼라치면 멀티탭 한 꾸러미는 필요해지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또, 7년 전 지금 집을 리모델링한 후 가장 먼저 체감하고 후회한 일 역시 전기스위치와 콘센트를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것이었기에 이번엔 그 실패를 피하고 싶다.

문 옆에 스위치가 있는 것처럼 습관적으로 당연한 건 그나마 쉽지만, 창가의 플로어스탠드, 차를 끓여내기 위한 전기포트, 욕실 음악을 담당할 AI스피커 자리까지, 전기가 필요한 소형기구들이 한두 개가 아닌데 멀티탭을 피하려니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게다가 스위치와 콘센트는 기본적으로 벽이 필요하다 보니 내장작업에서 약간만 조정이 생겨도 “여기는 제 자리입니다!” 하고 제일 먼저 걸리는 녀석들이다. 그럼 옆으로 혹은 위로 콘센트 박스를 옮겨야 하고, 그러면 또 벽에 새로운 구멍을 뚫리고 원래 자리는 에폭시로 메워지고 나는 점점 내 살을 깎아낸 듯 미간이 좁아지고… 그러는 중이다.


하지만, 수정 없는 완벽한 계획과 작업은 불가능하므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히 고치는 게 맞다. 어쩌면 우리 집은, 도면에 충실한 골조가 만들어진 쪽이라 이런 디테일을 고민할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지하와 1층 벽선이 맞지 않고 틀어졌다던가, 도면의 큰 창이 화장실 창문처럼 작아지는 등, 지금까지 내가 보고 겪은 많은 스토리들에 비하면 행복한 고민이랄 밖에. (오늘도 이렇게 극복!)

4층 - 옥상 외부계단 수정 안 (건축사무소 나날)

옥외계단의 위치가 변경되면서 계단폭, 높이가 조정되었다. 기존 계단 면과 폭은 동일하지만, 일조권을 고려해서 겹치는 면이 늘어나면서 내려올 때 조심해야 할 수 있다고 함께 알려주셨다. 그래도 바뀐 위치가 낫다.


2024년 3월 26일 화, 3도/12도, 비 (작업취소)

1. 서울시 중대재해감시단 시설물 안전점검
2. 3층 거실창 하단 콘크리트 절단

명일 : 설비배관

창호가 오기 전 3층 콘크리트 면을 고르게 절단처리

비가 왜 이렇게 오는 걸까?...


96일 차 2024년 3월 27일 수, 4도/16도

1. 방수 - 4층 테라스 방수
2. 설비 - 코어작업
3. 노출보수 - 창+유리 노출 부분 선처리

명일 : 설비, 방수, 창호(우천 시 하루 지연)

4층 테라스 방수작업
창, 유리 노출면 보수 및 퍼티 미장
설비 배관을 위한 코어(벽체구멍) 작업 (대단!)

150mm가량의 콘크리트 벽이 저렇게 매끈하게 뚫리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커터의 모터도 대단하겠지만 드릴로 나사 구멍을 뚫어도 힘이 꽤 들어가는데, 만만치 않은 파워를 가진 분이 하실 듯.

바쁜 일정이 많아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출근하느라 나는 듣지는 못했는데 소음이 꽤 있었을 듯하다. 이웃분들이 괴로우셨을 듯;;


97일 차 2024년 3월 28일 목, 8도/12도, 비

1. 설비. 배관

명일 : 설비, 창호

배관 설비 작업. 천장으로 벽으로 이런 게 다녀야 살 수 있는 거 였다.
지하는 배수를 천장으로 올려서 처리.

사진을 보며 저 배관이 어떤 용도인지는 누가 다 기억하지? 전문가들은 보면 바로 알 수 있나? 도면에 상세히 그려져 있나? 이런 생각을 해봤다.

보이지 않는 전기, 설비가 모든 것이 실내에서 가능한 현대식 주거를 가능케 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이런저런 것들이 건물을 타고 흐르고 있다.


창호가 들어올 거라 예상했는데, 또 비.

새벽 5시 기차로 먼 남쪽 출장을 갔으므로 못 봤겠지만.

 

98일 차 2024년 3월 29일 금, 5도/12도, 비

1. 설비 배관작업
2. 창호 반입설치

명일 : 현장작업 없음. 설계감리 및 마감재 미팅

유리와 프레임색이 마음에 든다. 샴페인골드를 차분하게 톤다운한 컬러.
창틀 올리기. 비가 오니 아슬아슬. 매화가 활짝 핀 날 창문이 달린다.

이번 주는 비가 왜 이렇게 오는지... 수목금에 창호설치가 완료되는 주라 기대했으나 비로 인해 일정이 약간 밀렸다. 이런 날은 한결 정확해지는 듯한 일기예보 대로 아침부터 비가 꽤 온다. 황사비를 제대로 맞고 있는 자재가 걱정되어 누림 대표님에게 여쭤보니 다행히 괜찮다고 하신다. 층마다 자재를 옮겨놓고 4층부터 작업이 시작되었다. 창호를 벽에 고정하다 보니 드릴을 박는 소음이 꽤 나는 모양이다. 그래서 토요일은 휴무.

(3월 기성금도 은행과 함께 '무사히' 지급. 건축주의 가장 큰 미션!)


2024년 3월 30일 토, 3도/16도

현장 자재선정 미팅 (설계감리, 시공사, 건축주)

먼저 현장에 도착해서 내부를 둘러보았다. 마침 활짝 핀 매화가 2층에서 한눈에 들어온다. (흐뭇)

어떤 일상을 맞게 될지 하나씩 둘러보자.

봄이면 매화가 가장 먼저 보일 2층 뷰
나란히 잘 정리된 2층 배관
매일 새로운 풍경을 담아낼 3층 전경
배수구 위치를 조정한 3층 세탁실 / 보일러실 / 4층 복도
4층으로 올라가는 길 / 조적욕조가 있는 4층 욕실
4층 서재와 창, 그리고 테라스
옥탑에서 본 풍경 / 비가 찾아준 구배 조정 지점

시간이 지난 만큼 꽤나 진척이 있다. 실내에서 봐도 창호 프레임 컬러가 마음에 쏙 든다. 외장재와도 잘 어울릴 거 같고. 조소장님과 누림 박대표님이 자재를 준비해 오셨다. 좋은 샘플만 딱 추려서 가져오니 시간도 절약되고 좋다.


조소장님은 계단 손잡이 환봉 두께를 직접 비교할 수 있게 지름 40, 50, 60의 목재환봉 샘플을 가져와서 하나씩 잡아보기도 하고 실재 계단 위에 대보기도 하면서 골랐다. 환봉이라 작업이 간단치 않을 거 같은데 조소장님이 다른 사이트에서 적용해 본 적이 있어서 잘하실 거 같다. 환봉과 바닥, 가구와 문 등은 오크목재를 쓰기로 했다. 패턴이 예쁘기도 하고 컬러도 후보로 검토한 자작보다 밝지 않고 자연스러워서이다. 다만, 자재가격이 비싼 탓에 예산을 두고 최종 고민이 필요하겠다. 좋은 건 알겠는데 어디까지 좋아져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

계단 손잡이 환봉 사이즈 정하기 (Ø60 오크 vs. Ø50 애쉬 > Ø50 오크 승)

자작나무 합판은 지금 집에도 써보았는데 밝은 느낌은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랗게 바뀐다. 그런대로 나쁜 건 아닌데 새로 짓는 집에는 빛이 많이 드는 편이고 벽 마감도 화이트를 골라두어서 밝은 목재보다는 약간 톤다운된 내추럴 컬러가 잘 어울릴 것 같다. 마침, 누림건설 대표님이 Querkus라는 브랜드의 오크목재 샘플책자를 가져오셨는데 자연스러운 목재컬러와 패턴이 문으로 만들어지면 기분 좋은 인상을 만들 것 같다. 자작합판은 이미 머리에서 지워진 상태. 현장에서 의논하길 4층 천장에도 적용해도 좋을 거 같다고 하신다. 차분하고 포근한 다실에 빛이 드는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기분마저 좋아진다. 옹이가 슬쩍슬쩍 보이는 게 고목재 느낌도 나고 대문이나 욕실문으로도 멋있겠다. 숲으로 입장하는 것 같던 파크로쉬의 출입문이 떠오른다.

완전 개방된 외부계단실 상부 창은 큐블럭으로 하부는 큐블럭과 유리로 모두 막기로 결정

비나 눈이 들이치는 계단실을 걱정했는데 크게 뚫린 상부는 350mm 큐블럭으로 전체를 막고, 하부는 아래 한 줄 정도 큐블럭을 두고 유리로 전체를 막기로 했다. 너무 개방되어 걱정스럽던 보안문제도 해결하고 날씨의 영향도 한결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보니 풍경을 담은 큰 창이 모든 곳에 있을 필요는 없겠고 빛과 바람을 조절하면서 생기는 색다른 풍경과 느낌이 있을 것이다. 남쪽 햇살이 벽돌 사이사이를 지나 계단실 바닥에 길게 혹은 또렷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틈으로 바람도 불겠지. 어쩌면 활짝 열린 창보다 훨씬 매력적일 수 있겠다 싶다. 걱정거리가 사라지기도 했고 좀 더 완벽해진 것 같은 기분이다. 매일 오가는 계단에서 문득 오늘을 기억하며 잠깐 멈춰서는 때가 있으리라.

아직 싸늘한 공기로 옷깃이 여며야 했지만,
햇살은 따뜻해지기 시작했고
 공원에선 매화꽃이 만개하던 날,
지금 이 풍경을 함께 정했지... 라며.
가지런히 정리된 자재샘플 (누림건설 대표님의 성향이 드러나는 듯)

이번 주 토요일이 공사일 기준 '백일'이 되는 날이었으나 우천 등으로 담주로 밀렸다.

현장에 갈 때마다 크고 작은 일이 모두 정성스럽게 진행되고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작은 공간에 다녀간 훌륭한 기술을 가진 성실한 분들 역시 이곳을 좋은 집으로 기억하고 뿌듯한 결과로 여긴다면 더없이 좋겠다. 그 안에서 매일매일 좋은 날을 마주하며 느낄 고마움이 그렇게라도 전해지길 바라본다. 백일 떡이라도 해서 감사함을 전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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