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시간과 고해苦海에서 벗어난

- 담양 일원을 답사하고

by eduist 이길재


그 시간은 이 세상의 시간이 아니고
그 공간은 고해苦海를 벗어나 있다.
- 정현종, <산책> 중에서


아무것도 얽매이지도 않고 유유자적 노니는 즐거움을 만끽하려면 '담양(潭陽)'으로 가라. 잠시나마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지려면 '물이 깊고 맑으며 햇살이 잘 드는 따뜻한 곳, 담양(潭陽)'으로 가라.


3월 어느 날, 500여 년 전 선비들이 관직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찾기 위해 머물렀던 담양을 찾았다. 담양은 언제 가도 변함없이 어머니의 품과 같이 따뜻하게 맞아준다. 목적지는 소쇄원(瀟灑園), 관방제림(官防堤林), 메타세쿼이아길, 그리고 죽녹원이다. 부산에서 담양까지 먼 길이긴 하지만,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은 건 담양 가는 길 자체가 이미 답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담양 하면 떠 오르는 시가 있다. 시인 정현종의 <산책>이다. 시인은 산책을 두고 '세상의 시간도 아니고 공간은 고해에서 벗어나' 있다고 했다. 그 시를 읽을 때마다 그 정서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담양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을 걸으면 발걸음마다 나를 옥죄던 모든 무게는 사라지고, 자연의 일부가 된 내가 느껴진다. 나는 이미 현실 너머에 있다.


소쇄원(瀟灑園): 맑고 깨끗하여 속세의 기운이 없는 곳


첫 방문지는 소쇄원이다. 봄볕이 유난히 맑은 날, 입구 대밭이 기세 좋게 탐방객을 맞이한다. 만개한 매화와 산수유 사이로 햇살이 부서지고, 계곡의 맑은 물소리와 대나무 숲의 바람이 교차한다.


중종의 신뢰를 바탕으로 개혁정치를 펼쳤던 조광조가 하루아침에 유배를 당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사약을 받고 38세에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이를 바라본 17세의 양산보(梁山甫, 1503~1557)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15세에 조광조의 제자가 되어 도학(학문과 덕행)을 배웠고 그를 통해 개혁된 조선을 꿈꾸었던 양산보는 스승의 억울한 죽음을 보고 정치적 야망을 버리고 고향인 담양 지곡리로 내려와 소쇄원을 지어 은둔한다.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하여 속세의 기운(俗氣)이 없다’는 뜻이다. 벼슬을 나가지 않고 학문과 청빈한 삶을 지키고자 한 양산보는 인위적인 구조물을 최소화하고 계곡, 나무, 바위 등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려 '소쇄(瀟灑)'한 풍경을 완성한다. 소쇄원은 맑고 고결한 선비의 지조를 지킨 은둔의 공간이자 철학의 공간이다. '광풍각(光風閣)'과 '제월당(霽月堂)'은 스승의 인품을 찬양하는 '광풍제월(光風霽月)'에서 따온 이름이다. 비록 낙향하여 은둔하였으나 스승의 넋을 기리고 도학정치의 꿈을 자연 속의 소쇄원이라는 공간으로 승화시켰다.


여러 번 찾았지만 소쇄원은 언제나 변함없이 나에게 깨달음을 준다. 소쇄원의 담장은 경계를 짓되 자연을 가두지는 않는다. 담장 아래 '오곡문(五曲門)의 구멍으로 계곡물이 막힘없이 드나드는 모습은, 너와 나를 가르는 마음의 벽을 허물라는 포용의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인문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이다*. 한 인간이 세상에 나와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만남을 통해 인생을 그린다. 그는 오곡문을 통해 그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비 개인 하늘의 맑은 달' 제월당(霽月堂)은 주인이 거처하며 책을 읽던 건물이다. 제월당 툇마루에 앉아 계곡을 내려다보니 봄을 만끽하고자 이곳을 방문한 상춘객들의 웃음과 사진 찍는 소리가 여유롭다. 만개한 산수유는 햇살에 더욱 노란빛을 내고 주위는 매화향이 가득하다. 순간 나는 폭풍 같은 중앙정치의 풍파를 뒤로 하고 비가 갠 뒤의 달처럼 맑고 고요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자 했던 양산보가 되어 본다. 한 줌도 안 되는 권력 욕심에 서로를 상처 내는 세상의 모든 고뇌가 다 부질없어 보인다. 양산보는 이곳에서 평생을 두고 공부했던 책의 모든 내용이 이미 자연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 온 뒤 맑은 날 부는 시원한 바람, 광풍각(光風閣)은 계곡 옆에 자리 잡은 사랑채로 손님들을 맞이하던 공간이다. 사방의 문을 모두 들어 올릴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앉아 있으면 물소리와 대나무 숲의 바람소리가 그대로 몸을 통과하는 물아일체를 경험할 수 있다. 지금은 모두 문이 닫혀 있지만 사방의 문이 모두 열린 광풍각을 상상해 보았다. 사방으로 확 뜨인 공간에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살갗에 와닿는 바람, 햇살에 부유하는 먼지까지 나(我)와 자연이 따로 있지 않다.


만약 조광조의 개혁이 성공하였더라면 어떠했을까? 역사의 가정은 언제나 안타까움, 아쉬움 그리고 현재의 이상이 담겨있다. 조광조와 그의 제자 양산보의 이루지 못한 꿈이 서린 공간, 그래서 소쇄원은 더욱 답사객으로 하여금 성찰과 영감을 주는 지도 모르겠다.


관방제림(官防堤林): 공생의 지혜, 시간을 견딘 배려


두 번째 행선지는 관방제림(官防堤林)이다. 관방제림의 의미를 모르고 이곳을 걸으면 그저 아름드리나무가 있는 둑길에 불과하다. 하지만 관방제림은 소쇄원과 다른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과 공간이다. 소쇄원이 개인의 수양을 위한 공간이라면 관방제림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시간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조선 인조 26년(1648년) 당시 부사 성이성이 해마다 수해를 입는 백성을 위해 둑을 쌓고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이후 철종 5년(1854년) 황종림 부사가 다시 정비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관방제림이란 '관(官)에서 주도하여 수해를 방비(防)하기 위해 만든 제(堤)방의 숲(林)'이라는 뜻이다. 2km에 이르는 구간에 수령 200~300년이 넘는 노거수가 오랜 세월에도 굳건히 이곳을 지키고 있다.


마을을 지키는 배려의 숲은 당시 관료들이 백성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먼 미래를 내다보고 조성한 적극 행정의 표본이다. 정치나 행정이 차가운 법의 집행이 아니라 따뜻한 나무 심기로 나타날 때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 보여준다. 백성의 재난을 위해 둑을 쌓고 나무를 심었던 곳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휴식과 산책을 공간이 되었다. 이곳을 걸으며 같이 동행한 대학동기가 답사길 버스 안에서 낭송한 시가 생각이 났다.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중략)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 복효근, <버팀목에 대하여> 중에서


우리는 누군가 버팀목으로 빚을 진 채 살아가고 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모든 것이 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잊고 산다. 나무의 굵은 밑동과 거친 껍질을 보면 우리의 부모님, 우리 자신의 손마디와 같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견뎌온 시간은 결코 흉하지도 않고 이렇듯 숭고하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해
나는 싹 틔우고 꽃 피우며 살아가는 지도 모릅니다 - 복효근

메타세쿼이아길: 인공과 자연의 조화


세 번째 행선지는 메타세쿼이아길이다. 인공적인 길이지만 가장 주변과 조화를 이룬 길이다. 인공이 빚어낸 완벽한 질서 속에서 우리는 인간 본연의 무질서한 고독을 마주한다. 이곳을 걸을 땐 혼자는 아쉽다. 그래서인지 영화, 드라마, 광고 촬영 때는 언제나 연인과 함께이다. 이번에 일행과 떨어져 혼자 걸었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고독한 존재이다. 사람들은 혼자인 그 시간을 어려워하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때가 바로 '진정한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 사람, 물건, 자연 하나하나를 진정성 있게 바라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때론 여럿, 때론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메타세쿼이아길을 걸으며 나의 말과 행동이 소중한 사람을 상처 주지 않았는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메타세콰이어길을 걸으며 만난 가수 김정호. 그는 34세의 짧은 생을 마쳤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살랐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있다. 그의 노랫말이 어쩌면 메타세쿼이아길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김정호, <하얀 나비> 중에서


죽녹원: 절개와 유연함, 비움의 미학


마지막 여정지 죽녹원. 대나무는 속이 비어 유연하고 '마디'가 있어 성장을 잠시 멈추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이렇듯, '비움과 채움의 미학'을 몸소 체험하게 하는 최고의 장소가 죽녹원이다. 빽빽한 대나무 숲이 뿜어내는 청량한 공기와 그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단순히 산책을 넘어 치유의 시간이다. 부드럽지만 강인한, 대나무는 오랫동안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가끔은 '마디'가 필요하지 않을까? 앞만보고 달려오다 문득 거울 속의 내가 낯설게 느껴질 때, 멈춤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 2월 은퇴하신 선배얼굴에서 예전과는 다른 편안함을 보았다. 이제 그에게도 새로운 인생을 이어갈 튼튼한 마디가 하나 생긴 것이다.


담양의 시간과 공간은 곧 '산책'이었다. 나를 비우고 다시 채우는 시간이었다. 과거의 선비들에게 있어 은퇴는 끝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화려한 귀환'이었다. 양산보가 낙향하여 자신의 꿈과 이상을 자연에 새겼듯, 나도 이제 나만의 소쇄원을 만들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내가 만들 소쇄원이 어떤 무늬를 띠고 있을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세상의 시간이 아닌 때를
고해가 아닌 데를 걸어가느니
- 정현종, <산책>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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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석, <인간이 그리는 무늬>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