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시의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보다는 한적한 곳, 바쁘게 움직이는 곳보다는 골목길을 더 좋아한다. 편리함이 가득한 큰 도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보다는 아이들이 정겹게 뛰어노는 골목길, 대화가 이어지는 삶의 자리를 좋아한다.
처음 가본 필리핀은 상상 속에서 그리던 것보다 더 정겨운 곳이다.
사람들이 순박하고 낯선 사람에 대해 금방 웃어주며, 낮선 카메라 앞에서 수줍게 등돌리는... 좋은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다.
낯선 사람이 들이대는 카메라 앞에서 아이들은 수줍어 등을 돌린다.
그리고 얼굴을 감싼 손 뒤로 수줍게 응시한다.
마치 내 어릴적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름을 묻고, 나이를 묻고 대화가 시작되자 아이들이 수줍어 하는 것을 버리고 이내 친근한 얼굴로 돌아선다.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되바라진 아이들이나 혹은 경계심에 잔뜩 긴장하는 얼굴들이 아니다.
곧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고 이내 얼굴에 환한 미소와 더불어 카메라 앞에 환한 미소로 응답한다.
순수한 어린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곳은 그다지 넉너한 곳도 아니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도 녹록치 않다.
조금만 어르막길을 올라가도 숨이 턱까지 차고 내려가는 길에는 체중이 하체로 몰려 발목과 무릎이 부담스러운 곳에서 아이들은 용수철을 발다닥에 달아놓은 것처럼 급격한 경사를 뛰어다닌다.
아이들은 너무도 순박해서 곧바로 친해진다.
서로의 이름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말하고 곧바로 친해진다. 이들은 곧 낯선 이방인 앞에서도 마치 친근한 가족, 아빠나 엄마, 삼촌 앞에서 재롱을 부리듯이 까불고 대화하며 서로의 친근감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저 산 아래 동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정신없이 경쟁 속에서 살아가지만, 산 동네에는 순박한 아이들이 골목마다 자신들의 꿈을 키우며 자라간다.
경쟁이 이루어지는 곳과는 다른 쉼의 장소가 산동네 골목길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의 목적을 위해서 경쟁하는 산 아래보다는 소박하고 순박한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키우고, 우정을 만들고, 밝게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삶의 자리인 골목길이 더욱 좋다.
바기오는 그런 골목길로 구성된 곳이다.
그래서 바기오가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