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여름의 싱그런 바람이 좋다
뒤 뜰에 조성된 연못은 여느 정원의 연못이 아니다. 가로세로 7~8m로 반듯한 사각형 모양의 공간, 둘레도 대리석인 듯한 반듯한 모양의 돌이다. 바닥은 가로세로 30cm 정도의 정사각형 모양의 반듯한 회흑색 돌이 깔려 있고 깊이는 그저 한 뼘 정도 될까, 물고기 한 마리로 살지 않는 연못이다. 물이 흘러 들어오는 곳과 흘러나가는 곳이 있으련만 딱히 눈에 띄지 않고 그 흐름도 보이지 않아 수면은 수평 그대로인 듯 평온하다.
주위로 정원이 조성되어 있어 초여름 수국이 저쪽 가장자리에 피어 마치 나르시스가 연못에 제 얼굴을 들여다보듯 자신의 푸른 꽃송이, 보라색 꽃송이, 진분홍 꽃송이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 수면에 비치는 나무 그림자 사이로 높은 하늘이 얕은 수면에 깊이 잠겨있다. 저 작은 물이 그 위의 삼라만상을 다 담고 있다. 그 무한한 깊이까지 담고 있으니 물의 포용성은 무한을 담고 있다고나 할까.
이따금 바람이 분다. 바람 따라 수면이 흔들린다. 이따금 물 위를 나는 제비 한 쌍이 비스듬히 수면으로 내려 날다가 순간적으로 물을 채며 박차 오른다. 물 튕기는 소리와 함께 물결이 퍼져나간다. 수면 위에 어린 하늘이 흔들린다. 아니 수면에 비친 나무 그림자가 흔들리고 수국의 그림자가 흔들리며 하늘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늘과 나무와 수국은 그대로인데, 물에 비치는 하늘과 나무와 수국은 흔들리고 그 모습이 비치는 눈동자에서도 흔들린다.
풍경이 셋이다. 반영되기 전의 본모습의 풍경 하나, 물에 비친 풍경 둘, 내 마음의 풍경 셋. 이 셋은 다르지 않되 다르게 인지되니 모든 것의 이치가 이러하지 않을까? 객체는 굴절되고 걸러진 모습으로 인식된다. 흔들리지 않는 풍경은 물 위에서 흔들리고 내 마음에 기쁨으로 지각된다.
얕은 연못과 나지막한 물소리와 한 줄기 희미한 바람이 초 여름 오후를 만들어 낸다.